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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나비 Oct 28. 2024

지쳐버린 날

남편을 언제까지 용납할 수 있을까

남편은 뭐든 제가 책임지려는 사람이다. 집에서도 설거지, 화장실 청소, 분리수거 등의 일을 대부분 하고 있고 요즘은 식사 준비도 한다. 내가 원고 마감이 가까워 오고 불면증이 도지면서 생활이 거의 안 되는 지경에 이르자 남편은 자발적으로 이 모든 것을 맡아서 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남편의 이러한 헌신에 고마워하며 연신 엄지를 치켜들었다. 남편은 힘든 와중에도 내게 인정받는 것을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남편은 정말 어린아이하고 비슷한 면이 있다. 어떨 때는 굉장히 성숙해 보이는데, 어떨 때는 어린아이와 비슷하다. 남을 잘 챙기고 제가 할 몫을 해내는 것은 어른 같은데, 작은 인정에 좋아한다거나 혹은 부정적인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은 어린아이 같다. 아마도 그것은 남편의 성장 과정 역시 나처럼 감정적인 돌봄이 없었기 때문에 공백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어린 시절 양육자와의 관계 속에서 감정을 잘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하다 보니 자라서도 그러는 것이다.


오늘도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 오늘은 교회에 가는 날이었고, 남편은 일찍 준비하고 나가지 않으면 굉장히 스스로 힘들어하는 스타일이어서 먼저 교회로 출발한다. 그러고 나서 내가 아이와 함께 교회로 간다. 남편은 가기 전에 아이의 옷을 준비하고 특히 넥워머를 꼭 채우라고 했다. 날이 추워지고 아이가 기침을 하니 그러라는 것이었다. 두 번 세 번 신신당부를 하고 떠났고, 이럴 경우 넥워머를 채우지 않으면 남편이 난리가 나기에 나는 챙겨서 채워준 것 같다. 내가 같다, 라고 한 것은 예기치 않았던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내가 해준 토스트를 먹던 아이가 갑자기 이가 흔들린다며 아프다고 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냥 먹으라 했으나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자 심각한 것임을 깨닫고 이를 살폈다. 아이의 아랫니에서 피가 나면서 흔들리고 있었다. 이가 빠질 때가 되긴 했는데, 그래서 흔들리는 것인지 아니면 어디 다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멀쩡한 아이가 물렁물렁한 프랜치 토스트를 먹다가 그랬으니 아무래도 이가 빠질 때가 된 것 같았다.


처음에는 흔들어서 내가 빼줄까 싶었다. 그러나 나도 처음이고, 아이도 겁을 내서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더니 치과에 가자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난 월요일에 동네 치과에 가서 빼면 되겠다 싶었으나 당장에 아이는 이가 흔들려서 아프다고 울고 있는데 이걸 월요일까지 방치하는 것이 맞는가 싶었다. 나는 일요일에 진료를 하는 치과를 찾았고, 다행히 집에서 아주 멀지 않은 곳에 한 치과가 진료를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일단 1부 예배 마치고 그 치과에 갈 것이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치과에 예약을 했다. 11시 30분 예약이고 11시에는 교회에서 출발해야 했다. 내 머릿속에 이미 '워머'는 없었다. 그래서 채웠는지 안 채웠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 것이다.


치과는 잘 다녀왔고, 아이는 이를 뽑았다. 엑스레이에 찍힌 아이의 턱에는 큼지막한 새 이가 막 나려고 흔들리는 이의 뿌리 쪽에 대기 중이었다. 집에 돌아온 아이는 이를 뽑은 것이 신기한 듯했다. 나는 아침에 긴장한 것부터 해서 진이 다 빠져버렸다. 어제, 어린이집에서 중요한 행사를 하나 끝내기도 했고 오늘 오전부터 이런 일이 있으니 피곤이 미친듯이 밀려왔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남편은 자야겠다며 먼저 곯아 떨어졌고 나는 아이가 인형이랑 같이 유도를 하는 영상을 찍어주고 그것을 보여주며 시간을 보냈다. 남편이 잠에서 깨어나자 나는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쓰러졌다. 


내가 일어난 것은 저녁이었다. 남편은 생선을 굽고 국을 끓여서 아이에게 밥을 주고 있었다. 나도 밥을 먹고, 일주일 후에 떠나는 아이의 졸업여행 짐을 함께 쌌다. 졸업여행을 기차로 가기 때문에 짐을 많이 들고 갈 수가 없어서, 아이의 옷짐 같은 것은 미리 숙소에 택배로 붙이기로 했고 그것이 내일이었다. 그래서 짐을 싸는 와중에 남편이 갑자기 "넥워머 어디 갔냐!"고 말했다. 나는 남편이 오늘 교회에 꼭 하고 오라고 해서 하고 보냈다고 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그럼 교회 끝나고 나서 했는지 확인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때는 치과가느라 정신이 없어서 못 했다고 했더니 "그래도 확인을 했어야지. 맨날 정신이 없다."고 하면서 교회에 가서 찾아본다고 하고 떠났다. 나는 아이에게 넥워머를 어디 두었는지 물었다. 어물대던 아이는, "교회에 가서 그냥 벗어버렸어."라고 대답했다. 가방에 넣어두지도 않고 그냥 바닥에 두었단다. 잠시 후에 남편이 돌아왔다. 교회에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편은 "그걸 왜 확인을 안 했냐"고 계속 구시렁거렸다. "맨날 정신이 없다고 하잖아, 맨날." 내가 좀 덜렁거리긴 하지만 오늘은 정말 억울했다. 치과는 남편도 같이 갔고, 내가 잊어버렸으면 남편이 확인을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아까는 치과에 늦지 않게 가느라 둘 다 정신이 없지 않았나.


나는 너무 억울하고 분했다. "치과 가느라 둘 다 정신이 없지 않았나, 그런 당신은 왜 확인을 안 했는데. 아침에 그렇게 하고 오라고 했으면 했는지 안 했는지 당신이 확인을 했어야 하지 않았나"라고 말하자 남편은 그제야 "너한테 뭐라고 하는 거 아니야. 그냥 짜증이 나서 그래."라면서 어물어물 말을 바꾸었다. 나와 남편이 말싸움을 하는 동안 아이는 바로 곁에 있었고, 손으로 귀를 막는 시늉까지 하고 있었다. 나는 "애가 이러고 있지 않느냐. 왜 아이 앞에서 이렇게까지 말을 해야 하느냐."고 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그냥 이런 상황이 짜증이 나는 거다"라고 하면서 "그런 너는 왜 맨날 정신 없다고 제대로 안 챙기냐"고 또 내 탓을 했다.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맨날 정신이 없다고 한다며 내 탓을 하고, 당신도 잘못이라고 하면 그냥 짜증이 나는 것이라고 하고.


나는 결국 울면서 방에 들어가 버렸다. 욕실에 들어가서 크게 울면서, 나는 또 그의 '공격'이 내 죄책감을 콕콕 찌르는 것을 느꼈다. 그가 어린아이 같아서 그래, 그 사람은 너에게 죄책감을 줄 자격도 없는 사람이야, 내 마음이 내게 중얼거렸다. 알고 있다. 내가 지금 슬픈 것은, 그의 공격으로부터 촉발된 기억 때문인 것을.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에, 내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라는 그 근원적인 죄책감과 수치심이 고개를 든 것이라는 사실을. 그것을 아는 까닭에 평소와 같은 자살 충동까지 들지는 않았다. 그저 슬펐다. 왜 슬픈 줄도 모르고 슬펐다. 한참 슬퍼하고 난 후, 나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 사람처럼, 아이가 되어 제 감정 하나 못 다스리고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말없이 수건을 개고 있었다. "미안해." 나는 입을 열었다. "이제 잘 챙길게." 앞으로 잘 챙기겠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그냥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내가 뭐라고 한 게 아니야." 남편은 다시 변명을 했다. 맨날 정신 없다고 하지 않느냐고 하는 말은 뭐라고 하는 말이 아니었나 보다. "그래도 짜증은 내지 마." 나는 당부의 말까지 했다. 이제 할 말은 끝났다. 남편은 알았다고 한 것 같다, 아니 아무 말을 하지 않았어도 들리긴 했을 것이니까. 나는 돌아섰다. "우리가 다 잘못했어. 나는 워머를 교회에 그냥 던지고 와서 잘못했고, 엄마랑 아빠는 싸웠잖아." 옆에서 아이가 종알거렸다. 저 아이는 우리의 다툼에서 상처를 받은 것일까, 아니면 그저 즐기고 있는 것인가. 내내 괴로웠던 마음이 아주 약간 나아졌다.


방에 돌아왔다. 남편에게서 더는 연락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사람이니까. 그저 무미건조한 사람이라, 사과했으니 끝났다고 생각할 것이다. 내일이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내야 하겠지. 그런데 놀랍게도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맘 아프지 말아라, 서로 최선을 다했으니 누구의 잘못도 없다. 카톡은 그런 내용이었다. 내 걱정을 해주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끝끝내 오만함은 느껴졌다. 잘못이 있지 왜 없어. 워머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 후 당신의 대처가 엉망이었잖아. 나는 뭐라고 한 마디를 할까 하다가 그냥 응, 이라고 대답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참을 수가 없어졌다.


어린아이처럼 화 내지 말아라, 서로 잘못이 없다면 화를 낼 이유도 없지 않냐, 화를 내서 얻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그저 제 마음을 못 다스리는 것이다. 나는 결국 이런 내용의 카톡을 보냈다. 괜히 보냈나 싶다가도 그래, 그래도 그 상황에 짜증과 화를 낸 건 잘못했잖아. 나한테 맨날 정신 없다고 한다고 해 놓고 또 뭐라고 한 건 아니라고 말 바꾸는 게 웃기잖아. 그래놓고 사과 한 마디 안 했잖아. 어른 답게 굴자고 한 건 어디가고 또 쪼잔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남편은 그 사이 잠들었는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전에 이렇게 내가 밤에 남긴 카톡 때문에 오전까지 카톡으로 다툰 적이 있었다. 내일 아침도 그러지 않을까 싶어 불안하기도 한데, 어차피 벌어진 거 뭐 그런 상황이 오면 오는 거지 싶기도 했다. 오늘에 이어 내일 하루도 엉망이 되겠지. 그렇다고 인생이 엉망이 되지는 않을 거니까. 하려던 말 참으면 나중에 또 폭발할 거야. 이렇게 할 말은 하고 풀어야 나중에 앙금이 남지 않으니까, 잘한 거야, 그래 잘한 거야. 나는 억지로 나를 달랬다. 


고요한 밤, 나는 홀로 슬픔에 젖어 있다. 이 슬픈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여전히 알 수가 없다. 남편에게 들은 말 때문인지, 아니면 숙명처럼 나를 따라 다니는 수치심과 죄책감 때문인지, 나의 행동에 대한 자책 때문인지, 아이에게 또 상처를 주었다는 실패감 때문인지, 이런 결혼은 왜 했을까 하는 깊은 후회 때문인지. 그저 내 존재가 마음 깊은 곳에서 홀로 울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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