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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나비 Dec 22. 2024

웹소설 작가의 계단

우리는 모두 어느 계단 어디쯤 있다

경주에 골굴사라는 절이 있다. 남편이 꼭 가고 싶대서 갔다가 골골대며 돌아왔다. 절은 계단과 계단과 계단이 이어진 끝도 없는 오르막길 끝에 있었다. 후에 어느 방송에서, 그 계단을 이용해서 출연자들이 수행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긴 사람이 갈 곳이 아니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웹소설 작가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나는 어떤 일정 단계에 오르면 더는 걱정도 근심도 없는 때가 오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웹소설 작가도 꼭 골굴사의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계단과 계단을 올라도 끝도 없는 계단의 어디메쯤 있는 존재였다. 마치 반에서 1등을 하면 전교에서 1등을 해야 하고, 전교에서 1등을 하면 지역에서 1등을 해야 하고, 지역에서 1등을 하면 전국 수석을 해야 하는 것처럼, 무언가 성취하면 그 성취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오르막길의 끝도 없는 계단을 보게 되는 것이 바로 웹소설 작가의 삶이다.


보통 처음 웹소설 작가에 입문을 하면 무료 연재를 한다. 내가 처음 활동을 하던 7-8년 전에는 네이버 웹소설에 무료연재하는 곳이 가장 활성화되어 있었다. 나 역시 그곳을 통해 데뷔를 했기 때문에 네이버 웹소설 기준으로 한 번 설명을 해 보려고 한다. 네이버 웹소설 무료연재를 하는 곳을 '챌린지리그'라고 한다. 그곳에는 아무나 글을 올릴 수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달에 한 번(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이라고 들었으나 예전에는 한 달이었다) 네이버 편집팀이 작품을 검수하여 그 다음 리그인 베스트리그로 올린다. 베스트리그는 그러므로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챌린지리그에서 한 번 검증된, 편집팀의 선택을 받은 작품만이 베스트리그로 갈 수 있다. 그리고 베스트리그에서 한 번 더 승격이 되면 '오늘의 웹소설'에 오를 수 있는데 이것은 정말로 그 구멍이 바늘 구멍이라고 할 만큼 승격되기가 힘들다.


'오늘의 웹소설'로 승격이 되면 예전에는 네이버에서 월급이 나오고, 또 따로 매출에서 수수료를 제외한 돈도 나왔다. 베스트리그까지는 개인적으로 유료 연재를 할 수 있지만 별로 돈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네이버 연재를 하는 작가들은 '오늘의 웹소설'로 승격되기를 매우 원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오늘의 웹소설'은 커녕 몇 작품을 써도 베스트리그로 올라가지도 않았다. 남들은 두어 작품만에 베스트리그로 승격이 잘 되는데, 나만 승격이 되지 않는 것 같아서 속상했다.


하지만 꼭 웹소설을 연재하는 길이 그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웹소설'이 되지 않아도, 따로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네이버를 비롯한 여러 플랫폼에 연재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플랫폼은 네이버 시리즈, 카카오 페이지, 그리고 리디북스이다. 오늘의 웹소설은 네이버 시리즈에서 연재가 되는데, 네이버 시리즈에는 그외에도 출판사와 따로 계약을 맺어서 연재하는 작품들도 무수히 많다. 


나는 처음에는 베스트리그로 가는 것만 목표였다. 결국 그 목표를 이루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베스트리그로 올라가고 보니, 여기 오른다고 내가 굉장한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출간을 하면 베스트리그로 갔다고 꼭 매출이 잘 나오는 것이 아니요, 챌린지리그라고 매출이 적게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무료 연재는 하지 않는다. 보통 계약한 출판사에서 차기작을 달라고 하거나, 내가 출간한 작품을 보고 모르는 출판사에서 연락을 주어서 차기작 계약을 하자고 한다. 심사를 할 원고 1-5화와(보통 한 화 4000자 기준이다) 시놉시스를 보내면, 출판사에서 계약을 할 지 말 지를 정하고 그것을 플랫폼에 심사를 넣는다. 네이버 시리즈, 카카오 페이지, 리디북스 등의 플랫폼에서는 작품을 보고 심사에 통과하게 하거나 떨어뜨린다. 유료연재는 심사에 통과한 작품만 할 수 있다. 나는 심사 통과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 편이다. 대부분 잘 되는 편인데, 문제는 그 후이다. 심사에 통과한다고 꼭 매출이 잘 나오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네이버 시리즈에서는 가장 매출이 잘 나는 작가들에게 주는 프로모션, 그리고 그 다음 프로모션, 이런 식으로 작품에 따라 차등적으로 프로모션을 준다. 프로모션이라는 것은 그 작품을 얼마나 어떻게 노출시키는가에 관한 것이다. 한 마디로 작품을 얼마나 플랫폼에서 광고를 해 주느냐를 결정해 주는 것이다. 나는 최상위 프로모션은 받지 못한다. 어느 날은, 도대체 어떻게 하면 최상위 프로모션을 받을까 고민을 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내 모습이 챌린지리그에서 베스트리그로 가고 싶었던 과거의 내 모습과 매우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최상위 프로모션을 받는 작가들은 그러면 행복하고 모든 것을 이룬 것 같을까. 내가 아는 작가 중에서도 최상위 프로모션을 받는 작가들이 몇 있지만, 그들 역시 불안에서 온전히 헤어나오지는 못한다. 까닭은, 그러한 좋은 프로모션을 받아서 통과한 작품의 매출로 그 다음 프로모션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만약 매출이 좋지 않으면, 그 작가는 다음 작품에서 최상위 프로모션을 받지 못한다. 작가가 오로지 매출에 헌신하게 하기 위해 만든 함정인 셈이다.


한 작가가 최상위 프로모션을 통과하여 작품을 론칭하게 되었다고 해 보자. 그런데 만약 그 작품의 매출이 생각보다 저조하여 다음 작품은 동일한 프로모션을 받지 못 하게 되었을 때, 문제는 매출이 아니라 작가의 자존심이 된다. 내가 그래도 이만큼 인정을 받았는데, 그 인정을 한순간에 앗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매 순간 긴장을 할 수밖에 없다. 


실은 계단이라는 것은, 웹소설 작가를 상업적으로 길들이려는 플랫폼의 농간일 뿐이다. 처음부터 계단 같은 것은 없으며, 프로모션이 작가나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눈앞에 오로지 높이 올라갈 계단만 보이면 작가는 속을 수밖에 없다. 저곳을 기어이 걸어가야 할 것 같고, 걸어가서 그 끝을 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게 끝없는 안개 속을 걸어나가다 보면 처음 글을 쓰게 된 이유나 동기, 목적 등은 다 사라지고 그저 불안에 떨고 있는 제 자신만 남게 된다. 거기에 각종 정신병과 오래 앉아 있음으로 인한 디스크 등등의 질병은 덤이다.


그러므로 나는, 웹소설 작가의 목표를 '얼마를 벌겠다'가 아닌, '얼마를 벌어도 행복한 작가가 되겠다'로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렇다고 작가로서의 기본기를 닦지 않으라는 말이 아니다. 상업적인 글을 안 쓰겠다고 소설의 기본조차 없는 그런 이상한 글을 쓰라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노력들은 끊임없이 하되, 끝도 없는 계단을 바라보면서 나를 죽이는 짓은 하지 말자는 것이다. 실상 계단만 바라보면 내가 처음에 쓰고 싶어 했던 이유도 잃어버리게 되고, 그저 상업성만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글 쓰는 재미조차 사라져서 추락해 버리는 순간이 온다. 그런 결과를 맞지 않게 노력하자는 것이다. 나 자신을 상황에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체가 되어 이 상황의 의미를 해석하고, 계단을 오르기 보다 그 계단 사이를 뚫고 나만의 길을 가자는 것이다.


실은 어느 직업을 선택해도 이와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변호사로 살면서 돈을 많이 버는 변호사가 무조건 좋은 변호사라고 생각하고 계단을 달려 올라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요, 자신이 변호사가 된 의미를 반추하며 남들이 오르는 계단이 아닌 다른 곳으로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나만의 이야기 아니요, 세상을 사는 이야기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수많은 웹소설 작가들이 있다. 그리고 세상에는 나만이 쓸 수 있는 작품들이 있다. 계단을 오르는 것 대신에 내가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 행복한 웹소설 작가들의 과제가 아닐까 싶다. 만약에 내일이 죽는 날이라도,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을 때에 작가는 행복하게 세상의 종말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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