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나비 Dec 24. 2024

<냉장고를 부탁해> 무엇이 문제인가

아쉬워라

처음 이 프로그램을 봤을 때의 충격을 기억한다. 쿡방 전성시대를 열었던, 이 프로그램은 오로지 타인의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15분 동안 요리를 만들어 대결을 하는 프로그램인데, 당시 여러가지로 파격적이었다는 기억이 있다.      


첫째, 예능이 아닌 요리 전문가인 ‘셰프’를 존중하기보다 예능인으로 만들었다는 것. 15분 동안 요리를 하면서, 사회자를 비롯한 다른 셰프들은 요리하는 셰프를 끊임없이 깎아내리고 놀려댔다. 마치 예능인에게 하듯이. 15분 요리를 하는 것도 힘든데 다른 셰프들의 공격까지 감당해야 하는 셰프들은 진땀을 흘렸다. 그것이 그대로 방송의 재미가 되었다. 둘째, 고급 재료를 가져오는 것이 아닌, 타인의 냉장고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한계를 주었다. 때로 냉장고에 아무것도 없어서 셰프들은 난감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번번이 놀라운 음식을 만들어 내는 재미가 있었다. 셋째, 15분이라는 짧은 시간이라 셰프들이 요리를 하면서 허둥지둥하는 모습이 그대로 카메라에 담겨 그것 역시 재미가 되었다.     


<냉장고를 부탁해>로 쿡방의 시대가 열려서, 셰프들은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쿡방은 식상해졌고 그것은 <냉장고를 부탁해>도 마찬가지였다. 종종 냉장고 재료들이 화려해져서 재미가 없어졌다는 동영상 댓글을 보았으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저 위의 세 가지 요건으로 인해 있었던 재미가 회차가 반복될수록 식상해졌던 것이다. 나 역시 처음에는 챙겨 보다가 나중에는 언제 방송이 하는지도 모르게 되었고 <냉장고를 부탁해>는 시청률의 저조 때문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런 <냉장고를 부탁해>가 시즌2를 맞이하여 다시 방송되기 시작했다. 최근에 큰 인기를 끈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의 인기에 힘입어, 흑백요리사 셰프들도 영입되었다. <흑백요리사>는 요리사들을 인지도 등에 따라 흑수저와 백수저 팀으로 나눈 후에 요리 대결을 펼친 예능으로 전세계적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유명한 요리사가 어이 없게 탈락을 하기도 하고, 아무도 몰랐던 요리사가 제 실력을 드러내며 모두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나 역시 <흑백요리사>를 마지막화까지 재미있게 보았다.     


나는 나름 새롭게 시작될 <냉장고를 부탁해>를 기대했다. 내가 좋아하는 <흑백요리사> 출신 에드워드 리, 최강록 셰프가 나온다니 더 그랬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고 나서 나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예전의 방식 그대로였다. 이미 식상해진 대결 방식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었다. 거기에 출연하는 셰프들만 <흑백요리사>에서 영입한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예전에 막을 내릴 때도, 시청률이 떨어졌던 것은 셰프들이 요리를 못 해서가 아니라 이미 그 방식이 진부해졌기 때문이었다. 허둥대는 셰프들, 그것을 즐기는 다른 셰프들, 셰프들을 놀려 먹는 진행자들이 그대로 매주 반복되는데 굳이 다음 화를 찾아서 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 바뀐 것은 있다. 새로 영입된 흑백요리사 출신 셰프들이 1분 베네핏을 갖는 것이다. 기존에 출연했던 셰프와 대결하는 흑백요리사 출신 셰프들은, 상대보다 1분 더 오래 요리를 할 수 있다. 상대에게 ‘멈춤’을 명령하거나 앞과 뒤에 더 이어서 쓸 수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무리수라고 여겼던 것이 흑백요리사 출신 셰프들도 셰프인데, 정정당당한 대결이 아닌 1분 베네핏을 가져가는 것은 직업적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최강록과 에드워드 리 셰프는 이 1분 베네핏을 쓰지 않았다. 아니, 에드워드 리는 쓰긴 썼지만 조금 독특한 방식으로 썼다.     


에드워드 리 셰프는 대결을 벌인 최현석 셰프에게 ‘1분 멈춤’을 지시한 후 갑자기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피부에 붙이는 팩이었다. 최현석 셰프가 쉬니까 자신도 1분 쉰다는 것이었다. 녹화장은 웃기다며 뒤집어졌으나 나는 어쩐지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에 작은 미소조차 지을 수가 없었다. 에드워드 리 셰프는 어떻게든 예능 콘셉트를 가지고 가기 위해서 그런 무리수를 둔 것 같지만, 나는 그의 요리하는 모습이 좋아서 기대를 했었다. 특히 <흑백요리사>에서 그는 무한 두부 요리로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었다. 그런 셰프가 얼굴에 붙이는 팩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이 나는 굉장히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1화 시청률이 5퍼센트 대로 꽤나 순조로운 출발을 했으나 2화 시청률은 3퍼센트 대로 떨어졌다. 시국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나는 <냉장고를 부탁해> 자체적인 문제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흑백요리사>의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서 너무 성급하게 방송을 시작한 것이 아닐까. <흑백요리사>가 인기를 끌었을 때는 쿡방이 인기를 끌지 않았을 때였다. 독보적인 콘셉트로 인기 몰이를 한 <흑백요리사>처럼, <냉장고를 부탁해>도 조금 더 고민을 거쳐서 내년 즈음에 시작했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셰프들만 바뀌었을 뿐, 마치 예전 방송의 재방송을 보는 듯한 이런 방송을, 굳이 시간 지켜서 찾아볼 사람이 있을까 싶다. 예전 방송의 애청자이자 <흑백요리사> 역시 재밌게 본 시청자의 아쉬운 의견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