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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 7

사랑의 비대칭성

by 나무나비

“내가 메시아라고, 야고보.”

야고보는 빠르게 눈을 깜박거렸다. 눈 앞의 예수는 제 형이 맞았다. 자신과 함께 세포리스를 오가던, 아침부터 함께 작업을 하던, 그보다 어릴 때는 함께 회당 학교에 다니던, 장난치다가 어머니께 같이 혼나던 그 형이 맞았다.

“지, 지금 뭐라는 거야.”

이건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문제만이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면, 신성모독의 문제였다. 로마군만이 아니라 유대인들도 예수의 적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는 육신이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게 될지도 몰랐다. 그 사실을 인지하자 야고보의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그는 의자 옆으로 쓰러져 그만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예수가 놀란 듯 일어서서 야고보에게 다가왔다. 손을 잡아 일으키려 했으나 야고보가 그 손을 뿌리쳤다.

“됐어. 이제 보니까 귀신에 씌인 거구나.”

밀려드는 절망감에 야고보는 그렇게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저 착하고 신실했던 형이, 정말로 이렇게 될지는 몰랐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좋았을까, 아니면 집을 떠나 자유를 얻게 된 것이 좋았을까. 무엇이 그를 악으로 이끌었을까. 야고보는 속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야고보의 마음도 모르는지, 예수는 다시 굳어진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얘기하지 마. 성령을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해.”

야고보는 이제 화가 나다 못해 슬퍼졌다. 그는 태도와 말씨, 얼굴은 사랑하는 제 형이지만 그 안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는 존재를 바라보았다. 예전에는 눈빛만 봐도 그 마음까지 다 알 것 같았던 형은, 이제 그와는 아주 먼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야고보는 제 팔 하나가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아팠다. 다른 사람은 그래도, 형은 그러지 않았어야 했다. 꼭 돌아오겠다고 두 번씩이나 약속을 하고서는 이렇게 변해버리면 안 되는 거였다. 야고보는 두어 번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았다. 그러고 나서 천천히 제 몸을 일으켜 예수 앞에 섰다.

“왜 이렇게 된 거야, 대체 왜.”

야고보는 안타까움에 소리치면서 눈을 내리깔았다. 그의 눈에 예수의 손이 보였다. 조금 전에 뿌리친 그 손은 여전히 따뜻해 보였다.

“우리, 같이 행복했잖아. 비록 가난하고, 먹을 것도 없고, 핍박 당하면서 살았어도 나는 형이 있어서 좋았어.”

야고보의 손이 조금 전 뿌리친 예수의 손 위에 얹어졌다. 그 딱딱한 손이 야고보의 손에 느껴지자 다시 눈물이 왈칵 날 것 같았다.

“우리는 정말 형을 걱정하고 있어. 그래서 여기까지 왔잖아. 오늘 일당도 포기하고 하룻길을 걸어서. 그게 뭘 의미하는지 형도 알잖아!”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그들이, 그 하루를 온전히 포기하고 예수를 구하려고 왔다. 온 가족이 한 마음으로 예수를 위해서 이곳에 있다. 그 진심을 왜 예수는 끝까지 외면하려고만 할까. 야고보는 예수의 손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예수는 고개를 숙여 제 잡힌 손을 보고는 천천히 다른 손으로 야고보의 그 손을 잡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들어 야고보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언뜻 물기가 어린 것이 보였다.

“나를 사랑하면, 걱정하지 말고 내 말을 믿어. 나는 틀린 것이 아니야.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는 거야.”

야고보의 동공이 흔들렸다. 해일 같은 절망이 그를 휩쌌다. 어떤 말로도 그를 움직일 수 없음을 알자 야고보는 그만 이성을 잃고 말았다. 그는 예수의 손을 뿌리치고 대신에 그의 양팔을 붙잡고 소리쳤다.

“온다고 했잖아! 돌아온다고 분명히 말했잖아!”

예수는 야고보가 흔드는 대로 서 있다가 슬픈 얼굴로 답했다.

“지금 가겠다는 것이 아니야.”

“지금 가지 않으면, 더는 내 형이 아니야.”

야고보는 예수의 몸에서 손을 떼었다. 돌아오지 않아도 좋았었다. 예수가 그의 마음을 알아주었을 때는. 그 약속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그런 예수가 지금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야고보의 사랑은 예수에게 더는 닿지 않았고, 예수는 야고보의 마음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이제는 팔이 아니라 전신이 난도질을 당하는 기분으로 야고보는 겨우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당신은 알까, 당신이 한때 나의 일부였다는 것을. 때로 관계는 안으로 파고들어 또다른 자신이 된다는 것을. 예수는 야고보의 말에 침묵했다. 그것은 들리지 않는 그의 대답이기도 했다.

“안 가겠다는 거구나.”

야고보는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예수는 길게 심호흡을 했다. 그러고 나서 말했다.

“너와,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할게.”

그 말에 야고보의 얼굴에 비웃음이 어렸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무슨, 가족은 형의 말을 듣는 그 사람들이라며. 그럼 그 사람들 위해서 살아. 나는 더는 가족도 무엇도 이제 아니니까.”

야고보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나서 예수와의 마지막 끈마저 잘라내듯이 몸을 돌렸다. 그는 집을 나섰으나 예수는 그를 따라 나오지 않았다. 그 말은, 예수 역시 야고보를 버렸다는 의미였다. 적어도 야고보에게는 그렇게 해석되었다. 눈두덩이가 뜨거워지면서 숨이 턱 막혀 왔다. 이제 형은 죽었다. 떠났지만 제 마음 안에 살던 형, 제가 그 건강과 안위를 위해 기도하던 그 형은 없다. 그것을 깨닫자 앞이 캄캄해졌다. 스스로를 믿지 못할 때마다, 너를 사랑하고 믿고 있다는 예수의 말을 기억하며 힘을 냈었다. 너는 좋은 점이 많고,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고 했던 그 진심으로 야고보는 이제껏 힘든 가장의 일을 예수 대신 해낼 수 있었다. 그 모든 기초가, 그의 마음 안에 있던 반석이 완전히 부서져 버렸다. 야고보는 제가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했다. 하염없이 걸으며 그는 제 존재가 흘러내리는 눈물에 모조리 지워져 버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돌아갔습니까?”

예수는 집안에 앉아 고요히 눈을 감고 있었다. 요한의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예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손가락 하나 들 힘이 없었으나 그렇다고 자리에 누울 수도 없었다. 누우면 계속 야고보의 목소리가 귀에 들릴 것 같아서였다.

“아무래도 염려가 되어서 왔습니다.”

야고보와 예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요한은 편히 돌아갈 수 없었던 듯했다. 이곳에는 예수 말고도 여러 제자들의 집이 있었고 요한의 집도 있어서, 그는 그곳에 유하고 있었다.

“그래, 고맙구나.”

예수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고개를 숙였다. 요한은 안타까움이 어린 눈으로 예수를 보았다. 망설이는 듯 몇 번이고 눈만 깜박거리다가 그는 입을 열었다.

“많이, 속상하십니까?”

예수는 답 없이 쓸쓸한 미소만 지었다. 가족들 전부를 사랑하지만, 야고보는 예수가 가장 친밀하다고 느꼈던 동생이었다. 일을 같이 한 적이 많았고, 이런저런 일도 겪었다. 열심히 일하고 나서 제대로 값을 받지 못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럴 때에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해서 어려움을 이겨냈다. 그래서일까. 야고보에게는 더 많이 마음이 갔다. 집을 떠날 때도, 따라 나온 야고보를 보고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었다. 결국 이렇게 될 것을 알면서도.

“나를 이해하기 힘들겠지.”

적어도 이 지상에서 활동하는 동안에는 가족들의 지지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머니 역시 가장이 없는 집을 저 때문에 등지고 나올 수가 없는 처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외로웠다. 제자들이 곁에 있지만, 태어나서 함께 자란 가족과는 또 다른 느낌이기에.

“저는 솔직히 동생분도 선생님도 다 이해가 갑니다. 저희 아버지도 처음에는 반대하셨었잖아요. 지금은 아니지만요. 선생님의 가족들도, 결국은 돌아올 겁니다. 선생님은 진리이시니까요.”

요한은 친절하고 사교성이 좋아서 심지어 몇몇 제사장들과도 친밀하게 지냈다. 예수에게도 늘 먼저 애정을 표현하곤 했지만 단점은 지나치게 말이 많다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선생님이 일으키신 이적들만 봐도 마음이 바뀔 텐데요. 저라도 가서 선생님이 얼마나 놀라운 일을 많이 하셨는지 말씀을 드려 볼까요? 아니면 좀 더 이곳에 있으라고 권해 볼까요?”

예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 이적들을 봐도, 야고보를 비롯한 가족들은 마음을 열지 않을 것이다. 예수를 한갓 마술사로 여길 테니까. 그는 가족과 함께 지낼 때에는 늘 조용히 제 할 일만 감당했었다. 그런 그가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지내는 것을 가족들은 용납하기 힘들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아는 모습으로만 타인을 기억하고 싶어한다. 그것이 가족이라면 더.

“지금은 아니다.”

예수는 그렇게 말하고 요한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두면 요한은 밤새 떠들다가 내일 늦게까지 못 일어날 것이다.

“그만 돌아가 자거라. 나도 잠자리에 들어야 겠다.”

“네, 그러시겠습니까? 그러면 제가 잠자리를 좀 봐 드리겠습니다.”

그것을 구실로 또 입을 열 기회를 찾는 요한에게 예수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조금 있다가 잘 거라서. 먼저 돌아가 있거라.”

예수는 요한을 내보내고는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넓은 통창으로 하늘이 보였다. 문득 야고보와 밤에 자주 함께 하늘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마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다시는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없을 것이다.

“주여, 저들을 위로하소서.”

예수는 그 어두운 하늘을 향해 기도했다. 오늘 그에게 마음이 상해서 떠난 가족들, 특히 야고보의 마음에 위로를 주시기를. 내가 함께 머물 수 없는 곳에 친히 그분이 함께하시기를. 그리고, 나의 잔혹한 마지막을 그들은 부디 보지 않기를.


길고 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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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올지 안 올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올려야 할 내용은 수정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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