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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엄마곰 May 10. 2022

오늘은 7살이 아니면 좋겠어

누구에게나 내려놓고 싶은 하루는 있다. 

엄마 오늘은 내가 7살이 아니면 좋겠어.

그럼 몇 살이었으면 좋겠어?

한 두 살이나 세 살쯤. 아무튼 아기띠 할 수 있는 나이면 좋겠어.

이리 와봐 엄마가 안아줄게.

진짜? 엄마 나 번쩍 들 수 있겠어? 엄마 근데, 엄마는 디스 크니까, 그냥 안아주기만 해도 나는 충분해.





아침부터 아이의 손이 따끈따끈하더니, 오후에는 살짝 미열이 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덜컥하는 마음에,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던 엄마 집에 가지 않고 체온계와 키트를 꺼냈다. 체온계는 파란불. 두려움으로 키트를 열어 검사를 하니, 분명한 음성이다. 일단은 무거운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죽과 약을 먹였다. 가만히 앉아 종이인형을 신나게 자르던 아이는 내게 다가와 오늘은 7살이 아니면 좋겠다고 말을 한다. 아이고 오늘이 버거운 하루였구나. 안쓰러운 마음에 가만히 아이를 안아주니, 이제 '충전'되었다는 대답을 한다. 


어릴 때부터 마음이 힘들 때면 내게 안겨 충전을 한다고 표현하던 아이. 스마일 러그 위에 앉아 행복을 충전한다고 하는 아이. 그럴 때면 나도 마음이, 행복이 충전이 되는 것 같아 덩달아 "충전~"을 외치며 아이를 안아주던 터라 별다를 것도 없는 일이지만 아이의 마음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아기띠에 매달리고 싶은 날이구나, 싶어 져서. 아이를 번쩍 들어 안아준 것이 언제였더라. 족히 반년은 된 듯하다. 아이는 또래보다 살짝 통통하고 나는 디스크 환자 인터라 아이를 번쩍 안아줄 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나 숙여 팔을 들어 올리는 동작을 못하는 터라, 혹여나 아이를 떨어뜨리거나, 균형을 잃어 동시에 넘어지기라도 할까 겁부터 났던 것. 그래도 한 번을 투정하지 않던 아이가 오늘은 아기띠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고 싶다니 눈물이 날 것 같다. 할 수만 있다면 아기띠에 너를 어떻게든 안아 번쩍 들어 올려주고 싶다.


왜 아이도 그런 날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주지 못한 것일까. 어른들도 종종 다 내려놓고 아이처럼 엉엉 울고 싶은 날이 있으면서, 왜 아이들도 더 어린 날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으리라고 예상도 하지 않은 걸까. 말로만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고 노력하고, 진짜는 그래 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함이 든다. 아쉬운 대로 무릎 위에 앉혀 어릴 때처럼 바라보고 있자니, 우리 아이가 정말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는 무릎을 한 껏 높여야 아이와 눈높이가 맞았는데, 이제는 아이를 무릎에 앉히니 다리를 높이지 않아도 눈높이가 맞는구나. 내년이면 무릎에 앉힌 아이 눈높이가 더 높을 수도 있겠구나, 후 내년이면 내 무릎에 앉지도 않겠구나 생각하니 안아줄 수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안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간이 아쉬워지지 않도록 충분히 안아주어야지 싶어 진다. 


아이가 다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아이에게 가만히 이야기를 해주었다. 살다 보면 지치는 날들이 종종 있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싶은 날도 분명 온다고. 엄마도 그런 날이 있었고, 엄마도 그럴 때 두 살이나 세 살쯤이 되어 엉엉 울고 싶었노라고. 그런데 그런 날마다 돌아보니 뒤에는 엄마가 있었다고, 할머니는 한 번도 엄마를 혼자 두지 않으셨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나 역시 아이에게 그런 엄마가 되어주리라고, 엄마가 늘 뒤에 있음을 잊지 말고 살으라는 말도 덧붙였다. 아마 오늘은 아이가 내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하리라. 울고 싶은 날 주저앉아 우는 것조차 망설이는 게 어른임을 아이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사실은, 우리 아이가 어른이 되어도 울고 싶어도 망설이는 어른을 이해하지 못하면 좋겠다. 울고 싶은 날은 내게로 돌아와 엉엉 울었으면 좋겠다. 실컷 울고 나서 배가 고프니 떡볶이든 맥주든, 좀 사달라고 투정을 부리는 어른이 되면 좋겠다. 다른 곳에서는 센 척, 담담한 척 다 하더라도 내 앞에서만큼은 지금 같은 아이가 되어 속앳것을 들어내면 좋겠다. 이른 저녁을 먹고 잠든 아이를 보며 혼잣말을 해본다. 엄마에게만큼은 매일 네 나이로 살지 않아도 된다고, 늘 두 살이나 세 살의 마음으로 투정하고 울어도 된다고. 


문득 생각해본다. 내가 그래도 여전히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순수를 지켜준 여유 있는 엄마 덕분이었다. 꽤 강단 있는 아이로 살 수 있게 이끌어준 단단한 아빠 덕분이었다. 우리 아이도 살며 몇 번이고 주저앉고 싶은 날이 오겠지. 나이를 내려놓고 싶은 날도 있을 것이고, 이름 자체를 벗어버리고 싶은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 그래도 혼자 소주는 마시지 않기를. 그래도 누군가 소주라도 따라줄 사람이 곁에 있기를- 그도 아니면 그런 순간, 밥 좀 달라며 찾을 내가 오래오래 아이 곁에 있을 수 있기를. 


훗날의 내 아이에게 미리 격려의 마음을 보내본다. 미리 응원의 마음을 보내본다. 괜찮다고, 무엇을 했든, 무엇을 하지 못했든 너는 그대로의 너라고, 이렇게 온 마음으로 너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있음을 잊지 말라고- 훗날의 내 아이에게 따뜻한 포옹을 보내본다. 또 훗날의 나에게, 지금 이 마음을 잊지 말고 일단은 그저 안아주라는 말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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