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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경 Aug 15. 2022

그 해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2022)

滄海遺珠(창해유주)

부제 - 滄海遺珠(창해유주)  

  넓고 큰 바닷속에 캐어지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진주


< 이번 글은 3주간 작성한 주문진 바다 이야기, 일기처럼 쓰인    좋아하는 구절을 스크랩  기록물입니다. >



p.1 - 설렜다. 이번 년엔 바다를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일주일도  되게 급하게 즉흥적으로 잡힌 약속이었지만 정말 너무 좋아서 바로 간다고 했다. 바다를 보러 간다는데   이유가 없다.


p.1 - 내일 제발 비가 안 오게 해주세요. 폭우가 와도 바다를 잠깐이라도 잠시라도 보게만 해주세요. 비 오는 바다도 좋지만 맑은 바다도 한번 담고 싶습니다. 바다를 담을 눈동자를 빛나게 해주세요. 파도에 몸을 맡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바다를 내게 보여주세요. 바다에 들어가 녹아버리고 싶을 만큼 한 줌의 모래가 되고 싶을 만큼 아스러지게 사랑하게 되는 바다를 보여주세요. 바다는 바다로서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워요. 바다를 보여주세요. 제가 갈게요. 바다로 갈게요. 마주하기만 해주세요.


p.2 - 뒤에서 부르는 대경아. 참. 이름 불러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게 좋다. 다들 이름을 부르겠지만 다른 이름이다. 같아도 다른 이름. 온도가 느껴지는 이름들. 같은 이름 사이에서도 너라고 지칭하는 그런 이름. 인물이 그려지는데 그게 나인 이름. 형상이 이름이 되어 그림자가 이름이 되어 글자로 그려지고 곧아지는데 그게 바로 나인. 내가 이름으로 태어난. 태어나서 이름이 정해진 것이 아닌 이름으로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운명.


p.2 - 받아들이고 흘려보내기로 했기에 두려움과 무서움이 생겨도 이젠 소화가 된다.


p.2 - 사랑에도 역시 거리가 필요하다. 사무치게 사랑해도 나를 위해선 조금 덜 사랑해야 한다.



p.3 - 처음 접한 2022년의 바다는 에메랄드빛이었다. 고급스러운 파란색과 초록색의 조화. 아름답고 고귀하게 느껴져서 함부로 발을 담그면 안 될 것 같은. 지켜줘야 할 어린 빛이다. 때 묻지 않은 파랗고도 파란. 하늘보다 맑고 푸른. 원석 같아. 원석처럼 빛나. 빛이 나다 못해 반사된 햇빛에 눈을 감게 돼. 경이롭게 눈을 자연스레 감게 되면서 공손해져. 지켜줘야만 할 것 같아. 어린아이 빛이야. 널 보고 모든 사람이 미소를 지어. 눈을 못 뜨지만 너를 보려 해. 보고 싶어서 그늘을 찾아. 멀리서라도 널 자세히 더 깊이 보려고. 다가가면 청량하고도 밝은 빛에 주춤거리게 되지만 다 네가 경이로워서 그런 거야. 손을 건네면 네가 확 하고 잡아서 나를 끌고 갈 것 같아. 그러길 바라고 있어 사실. 나는 너와 동일시되길 원해. 푸르고도 청량해. 한국이 맞나 싶어. 다른 곳에 있는 너를 마주하는 느낌이야. 사랑이야. 사랑일 거야. 너무 보고 싶었어. 파도치는 생생한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p.3 - 항상 매번 여유로운 사람이다. 여유가 느껴진다. 어디서 나오는 여유일까. 사람을 보며 배울 점이 많다고 느껴지는 가장 큰 점은 내게 여유이다. 여유로움, 마음의 여유로움이 외부로 드러나 여유가 흘러 내게 비치는 사람들. 그런 부분에서 내게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p.4 - 한껏 진지해진다. 신기하다. 나와는 다른 사람들. 결이 다르지만 신기하고 배우고 싶게 만드는 사람들. 놓을 필요가 있고 이 놓음이 나에게 좋은 영향으로 돌아온다는 걸 느끼게 만들어 준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크게 얻어 가는 것 중의 하나가 아닐까.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 그리고 믿음을 사이에 두고 나를 향한 약간의 놓아버림. 놓는다는 거 다 나와 우리와 지금 생기는 이 행복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 어쩌면 본래 태생. 시초. 시발점. 여행은 팽팽함 사이에 놓아버림.


p.4 - 짐을 풀고 바로 바다로 향했다. 집에서 바다로 가는 기분. 집 앞에 바로 바다가 펼쳐져 있어 우리 바다 보러 가자고. 여기 바로 앞이 바다라고. 발걸음을 떼자고 마음만 먹으면 저기 바다가 있다고. 우리 함께 바다 보러 가자고.



p.5 - 발을 디뎌볼 뿐. 느리게 더욱 느리게. 무언가에 쫓긴다는 느낌 하나 없이.

 

p.5 - 우리가 가는 길이 바닷길이라고 믿으면서 천천히. 대신 멈추지 않기. 닿는 대로 바람이 불어오는 대로. 안쪽 골목을 말씀하셔서 뒤돌아 안쪽 골목으로 향했고, 하나의 조그마한 독채 민박집을 지나 아스팔트 도로에 빨간 화살표. 바닷길.이라는 문구. 귀여워. 동네 주민들의 조그마한 안내 같았다. 배웅 받는 기분. 이쪽으로 가면 바닷길입니다. 방향을 헤매지 마시고 저를 잘 따라오세요. 하고 같이 가자고 하는 느낌. 바닥에 화살표가 그려져 있음에 아무 말 없는 동네 주민분들. 그걸 발판 삼아 잘 따라가고 있는 우리. 바닥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길을 잃어버려도 웃으면서 다시 찾을 우리지만 알려주는 길에 감사하며 그 옳은 방향으로 나가 바다를 마주하고 싶어서. 주문진에 바다를 끌어안고 싶어서. 화살표가 끝나갈 때쯤 집과 집 사이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숨 막히는 광경.


p.5 -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기 좋은 바다다. 표정을 내다보고 행복을 공유하며 온전히 바다와 내 앞에 사람에 추적 거림을 사랑할 수 있게 하는 바다. 평화롭게 흘러간다. 바다의 움직임에 동화되어 너도나도 웃고 행복을 즐기며, 하염없이 바다의 향을 마신다. 한없이 차분하고 평온하다. 미동은 살랑거린다. 옥색의 하얀 바다. 옥색 빛. 하얀 옥색 빛 바다. 갈고닦고 한참을 껴안고 나온 옥색 빛깔.



p.6 - 매번 바라만 봤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이 밀려와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매번 마주한바다는 겨울이거나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알려왔다. 이번 바다는 나를 허락했다. 받아들였다. 조개껍데기가 되어 이리저리 나뒹굴어도 바다에 닿았다며 나도 바다 일부분이고 바다와 함께 동일시되는 참된 존재라며 나를 바다에 일군다. 하나하나 나를 심어둔다. 내 발을 움푹 넣어가고 찍어가며 내가 왔다고 바다에게 알리면 바다는 내게로 쓸려와 내가 있던 자리를 무로 만들어버린다. 너라는 존재는 원래 이렇게 왔다 사라지는 거라고. 자연스러운 일 중 하나라고. 발바닥이 사라지면 나의 자리도 곧 사라진다. 쓸려간다. 위로를 해주는 듯하다가도 이내 숨 멎을 순간을 만들어버린다. 바지까지 젖었다.


p.6 - 하얀 바다에 힘껏 내 자취를 남기려 한다. 펄럭이는 원피스와 무릎 위까지 올라간 내 남색 바지. 그림 같다. 너무 행복하다. 바다에 발 담그는 거 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한데 몸 전체를 담그면 어떨까. 휩쓸려가고 싶으려나. 잃어버리고 싶으려나 나를. 행복해서 계속 웃음이 나왔다. 미소가 떠나가지를 않았다. 찰랑거림에 몸 맡기듯이 모든 걸 앗아가도 내 평생 기억에 남을 행복이었다. 행복. 행복하다. 행복했다. 바다가 이렇게 나에게 좋은지 새삼 깨달았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여서 그런 건가. 뭘 더 자꾸 함께하고 싶어지는걸.


p.6 - 아. 행복해.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다. 시곗바늘이 고장 난 벽 시계처럼 멍하니 그 자리를 지키고 싶다. 초침 소리가 안 들리게 아무도 모르게. 벽에 걸려있는 것도 다는 사람도 알지 못하게. 투명 시계. 아니. 벽에 멈춰서 바라만 보는 시계. 한 곳만 지긋이. 바다만 보다가 시간이 지나가면 시간을 붙잡고 시간을 얼리고 시간에게 부탁하고. 날 이대로 모래 더미에 묻히게 만들어. 이내 몸이 깨지면 모래알로 돌아가리. 내가 있어야 할 곳.



p.7 - 황망한 바다 위에 모든 걸 던지고 올 나일 줄 알았는데 얻고 줍고 사랑을 말하고 세참 속에 여유를 배워간다. 완연하게 스치고 향하고 줍는다. 나 내가 이렇게 바다를 갈망하고 있는지 몰랐다. 연 하늘 빛에 하얀 하늘 옥색 빛 바다에 하얀 파도. 하늘 위에도 바다가 있다면 같은 시공간처럼 같은 촉감 같은 향기 같은 마소와 행복감. 바다가 허락해 주는 한 하염없는 행복. 떠내려감을 붙잡고 흘러 흘러 나에게로 오라. 내 무릎을 내어줄 테니 그저 밀려오라. 파도의 거품처럼 이내 사라질지라도 다시 난 재생하여 돌아갈 테니. 게워내고 다시 게워내고. 본래 바닷속 진주였던 사람처럼. 사람이 아니라 생물이었던 것처럼.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 나가는 게 아니라 자연 어느 한 부분을 적어 나가고 있는 지금의 나처럼.


p.7 - 자연과 사람 그 사이에 무언가. 생태 생 연의 모습 초래한 모습 시발점. 한참을 바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p.7 - 흘러가는 대로 두고 보고 같이 가는 것에 대해 파도에 몸을 맡긴 사람처럼 심지어 안정감까지 들기 시작했다. 안정감. 그래. 안정감.


p.8 - 계속 부서지고 깨지기를 반복한다. 멈추지 않는다. 철썩철썩.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바위를 각지게 만들었다. 동그란 바위가 하나 없다. 다 부딪치고 깨지지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언제 사라질지 몰라도. 여기가 내 본 자리고 절대 나는 이 자리를 이탈하지 않을 거라는 묵직함. 우직함. 사랑을 힘차게 받아내고 있다. 아주 힘차게. 벅차올라 와도 이내 안는다. 모든 걸 사랑이라 여기며 잃어버리고 내색조차 없이 담담하다. 바라본다. 멍하니 깊고도 푸른 바다 빛을 바라만 본다.



p.9 -  결이 다르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좋아함이 커 온전히 받아들인다. 스스럼없는 사이. 스스럼없다는 단어와 말 너무 좋다. 온기가 느껴진다. 따뜻함이 배가 되어 주변을 다 녹여버리는 느낌. 함께해서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나까지 동일한 감정을 느끼게 해 주니까. 전달되어 하나가 되는 기분. 마음이 풀어지는 지금.


p.10 - 좋았다는 말 말고 어떤 거로 더 표현할 수 있을까 표현에 강도가 있다면 숫자로 표현해야 할까. 몇 퍼센트 좋았어. 아니, 숫자로 정의하기에도 좋아함은 부족하다. 시간아, 멈춰라. 어두워지지 말아라. 이렇게 내리는 비처럼 내가 내리니. 순간은 영원하길. 차에 타고 집으로 돌아가려니 폭우가 내린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제야 비가 내리네. 우리 하루의 스케줄을 꽉 채우니 이제야 비가 내린다. 행복이 가득하게 채워지길 기다렸다는 듯이.


p. 11 - 청춘이다. 조용한 주문진 바다의 한마을에 청춘의 한 페이지를 남기면서 이렇게 도장을 꾹 누르고 있다. 남기고 가야지 우리의 흔적을. 친절하게 쓰여있는 바닷길처럼 우리의 흔적을 남겨야지. 우리의 하나의 페이지를 엮자. 아침부터 새벽까지의 하루를 엮고 엮어서 매듭을 짓고 리본을 만들어 사랑을 표하자. 색은 파란색과 빨간색이야. 깊고도 푸르른 파란색과 붉고도 진한 빨간색. 우리의 청춘과 사랑을 남겨. 남겨야 우리야. 우리를 들고 소중하게 간직하자.



p.12 - 뒤에서 밀려오는 파도의 내음과 앞에서 일렁이는 녹지의 내음을 만지고 기억하며 잠자리에 들어보자. 설레서 잠이 안 와. 역시나 행복의 설렘에 잠이 안 온다. 오늘 너무 좋았지? 너무 좋았어. 안 왔으면 어쩔 뻔했어. 끌림에 이끌려 왔던 이 순간이 파도처럼 행복이 밀려와 잠수하고 싶어. 지나가지 마라. 지나가지 마라. 멈춰라. 멈춰라. 내일 일어나면 다시 오늘 아침이 되어 있어라. 간절히 바라다 잠에 들었다.


p. - 13 그들의 아침은 빠르고 느리다. 일찍이지만 천천히 걷는다. 쫓기는 거 하나 없이. 천천히 걷는다. 걷는다기보다는 거닌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듯이. 빠른 걸음으로 발을 내딛다 속도를 조절했다. 천천히. 동네 주민처럼. 주문진에 있는 하나의 동네 주민처럼. 느리게 느리게 더 느리게



p.14 - 한번 걸어볼까. 아무도 없는 바다로. 파라솔도 없는 바다. 높은 너울거림에 서로가 부닥치는 소리. 빛이 부서지고 빛이 생성되고, 빛이 부서지고, 빛이 생성되고. 빛난다. 자리에서.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없다. 바다가 하늘이고 하늘이 바다다.


p.14 - 하늘이랑 맞닿아 있는 바다 좋다. 하늘에서 헤엄치는 기분. 바다가 확장되어 있고 하늘이 확장되어 두 세계가 만난 지금. 보고 있는데 좋다. 이대로 좋다는 거 큰 표현이 없어도 좋다는 거.


p.15 - 나도 내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야지. 내 전부를 사랑해야지. 아껴주고 또 아껴주다가 잠시 쉬어가라며 다독이기도 하고, 내가 가장 큰 내 편이 되어 사랑해야지. 사랑. 사랑이라는 걸 해야지.


p.15 - 다 같은 말을 했다. 아 더 있고 싶다. 하루만 더. 일주일만 더. 조금만 더 있고 싶다.



ps. 당신은 제 기록물 중 어떤 문장이 가장 마음에 드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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