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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목 Dec 11. 2023

아픔이 단절이 아니길,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포스터. ⓒ넷플릭스


요즘 아내와 드라마 정주행하는 게 낙이다. 나이 들수록 아내랑 같이 뭘 하면 참 좋아진다. 이번에는 내가 관심 있던 드라마를 골랐다. 요즘 복지계에 핫이슈이기도 한 정신질환을 다룬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다.


제목에서 온다는 아침 '은'이 아니라 '이'라는 조사가 눈에 띄었다. '이'는 알다시피 주격 조사다. 뜨기만 하면 누구나 어디에나 공평하게 세상 구석구석 밝히는 아침, 그래서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모두에게 다 찾아 온다는 의미로 해석하게 되는 드라마였다. 의학적으로 정신질환을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근무하는 복지관에도 정신장애 이용자가 늘어나는 추세여서 남다르다.


의학 드라마라고 하기엔 좀 의학적 긴장감은 좀 덜하지만 슬의생만큼 따뜻하다. 첫 회부터 인상적이게도 여환(장률)은 "다리가 부러지면 정형외과, 마음이, 정신이 아프면 정신과에서 치료받으면 돼"라고 한다. 시선을 질병이나 질환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사람에 머물게 한다. 간호사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이야기다.


3화까지 보면서 가족과 직장 동료와의 관계에서 질식하고 결국 무너지는 일들이 스스로의 예민함이나 부족함에서 오는 게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우리가 아픈 건 내 탓이 아니라 네 탓이라고 명확히 한다. 어릴 때부터 미사 시간에 세 번이나 두드리며 읊조리는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로소이다'는 틀렸을지도.


특히 1화의 오리나가 나체로 춤을 추는 장면에서 느끼는 자유의 희열이 엄마가 만든 세상에서 엄마가 하라는 대로 살면 모든 게 잘 될 줄 알았다는 말이 틀렸음을 깨닫는 것이어서 마음이 뜨끔했다.


이 장면을 보기 얼마 전 딸애가 그동안 모르는 사람들과 방을 같이 쓰는 게 불편했노라며 남은 반항기만이라도 자취를 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한데 반학기여도 한 학기 임대료는 다 내야하고, 다음 학기에 다른 이에게 넘기면 된다고 하면서 꼭 하게 해달라고 졸랐다.


세상 흉흉하고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한 학기 임대료를 다 내면서까지 꼭 그래야겠냐며 안 된다는 엄마의 걱정에 이런저런 안전장치가 있다며 안심시키며 여태껏 엄마 아빠가 하라는 대로 다 해오지 않았냐며 앙칼지게 대답하는 딸을 보면서 흉흉한 세상에 혼자 지낼 딸이 걱정된 것인지, 반항기 살 걸 한 학기 임대료를 다 지불하는 것 때문이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딸이 아닌 아닌 부모의 결정이었으니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민폐를 끔찍하게 여길 정도로 소심한 다은(박보영)을 통해 과도한 엄마의 애정을 뿌리치지 못하고, 동료가 모여 웅성대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닐까 걱정하는 등 관계에서 오는 심리를 사회불안장애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일이 누구나 겪는 보통의 일로 그려낸다. 그리고 여환의 집요한 구애를 뿌리치려고 툭 던진 들레(이이담)의 귀신을 본다는 말 한마디는 여환의 일상에 불안이 퍼지는 모습 또한 불안은 사람이면 누구나 갖는 심리정서적인 것으로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든 나타날 수 있고, 어떻게 생각하는냐에 따라 그 크기가 남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유찬(장동윤)이나 성식(조달환)을 통해 순식간에 물이 차올라 10초 후면 죽을 것 같은 느낌을 시시각각으로 느껴야 하는 것이나, 서완(노재원)과 하람(권한솔)을 통해 가장 절실한 것이 상실과 좌절이 될 때 인간은 허구가 현실이 되는 무서운 현실도 보여준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 사람, 왜 이래'라는 눈빛이나 말이 얼마나 비수가 될지, 혹은 괜찮냐며 건네는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겪어보지 않은 일들을 다 이해하는 것처럼 위로를 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알아챌 수 있다면 그냥 손이라도 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더 이상 깊이 빠지지 않거나 뛰어내릴 곳밖에 없는 지경이라면 같이 견뎌 줄 수 있는 내가 있다고 말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다은은 마음을 나눈 환자들과의 관계에서 아프고 상실을 경험한다. 그러면서 서완의 자살로 다은이 우울의 늪으로 빠져드는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데 가슴이 뻐근해졌다. 특별히 예민해서가 아니라 버티기 힘든 일들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이 드라마는 어쩌면 정신질환이 특별한 것으로 인식되지 않게 만들어준다.


다은이 약을 먹는 순간 진짜 정신병자가 되는 것이라는 독백과 자신이 정신병동에 입원한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는 것에 분노하는 장면의 연결 선상에 결국 정신병동에 입원한 것이 조금만 표정이 어두워도 우울한 건 아닐까 위험한 일을 저지르는 건 아닐까 걱정하고 의심하는 눈빛을 견뎌야 하는 현실이 있는데, 이는 결국 정신병자라는 낙인이 찍혀 현실로 내몰리는 끔찍한 일이라는 것을 간호사인 다은을 통해 우리는 확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매일 약복용을 잘하면 드러나지 않은 것들이 '혹시'라는 의심으로 위험한 사람을 치부해 버리는 병동 보호자들을 보면서 많이 답답했다. 감기에 걸리면 쉬고 싶어도 감기약을 먹고 쉬고 회사를 나가야 하는 게 현실이라면 정신질환자 역시 약을 먹고 자신의 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아픈 사람은 약을 먹고 나으면 되는 일이라는 그 간단한 일을 우리는 편견에 휩싸여 너무 어려운 일로 만드는 건 아닌지.


아무튼 정주행으로 눈알에 핏발이 서고 엉덩이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앉은 자리에서 몰입하게 만든 이 드라마는 정신질환이 자신의 의지나 뭔가 부족한 특정한 누군가가 걸리는 게 아니라 누구라도 그럴 수 있다고 적확하게 알려준다.


정신질환을 이해하는데 한 뼘은 가깝게 느껴져 참 좋았다. 놓치지 말아야 할 드라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포스터.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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