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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목 Mar 08. 2024

[인문] 수치심은 혁명적 감정이다

수치심에 대한 탐사


놀라운 표지 그림에 한참 머문다. 프레데리크 그로, 프랑스 파리 12대학 정치철학 교수이자 철학자 그리고 미셀 푸코 연구자. 푸코가 그토록 사유했던 광기와 성(性)이 표지에 겹쳐진다. 그래서 흥미롭다.


"수치심은 우리 시대의 주된 정서고, 새로운 투쟁의 기표다. 이제 사람들은 불의에, 전횡에, 불평등에 고함치지 않는다. 다만 수치심에 울부짖는다." 11쪽, 서문


문득 어떻게 정의되는 감정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수치 羞恥 [명사]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 또는 그런 일. 표준국어대사전


저자가 피력한 루소가 느꼈다던 숨이 막히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그런 수치를 느낀 적이 아니 알아챈 적이 있던가, 생각한다.  그가 죄책감과는 다르다고 극구 부인한 데에 왠지 감사함을 느낀다.


그는 더 이상 수치심이 개인의 부정적 감정이 아닌 사회정치적 변화를 이끌어 낼 혁명적 감각들이라 주장하면서 수치심의 역사를 관통해 현대에 작동하는 궤적을 마치 탐사 보도처럼 세밀하고 시사성 높은 논의를 하게 한다.


집안 혹은 가문으로 불리는 집단적 수치심은 불명예를 동반하고 이를 통해 많은 부분을 잃는다. 즉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가문이 구설수에 오르는 순간 그들의 평판은 바닥을 칠 것이고 여기에 동반되는 수치심은 말 그대로 정상적인 가문에서 제외됨을 의미한다.


이 설명은 종갓집으로 대변되는 양반가의 봉건주의 관습이 여전히 연결되는 한국 사회의 단면이기도 하다. 그렇게 집안 망신을 시킨다는 존재에 대한 의미를 담은 설명은 눈에 쏙들어 온다.


읽으면서 더 침묵하게 된다. 미처 생각지 못하고 무심코 내뱉은 말 중에 어느 지점은 누군가에게 모욕적이거나 멸시처럼 느껴졌을지 모르고 그로 인해 그 누군가는 수치심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라는 걸 확인하니 확 수치스럽다.


예를 들면 복지관을 찾은 누군가의 남루한 옷차림을 생각하지 않고 "어디서 퀴퀴한 냄새 나지 않아?"라고 했을 때처럼 말이다. 이 말을 들은 당사자는 본인에게서 나는 것이든 그렇지 않든 관계없이 분명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다. 사실은 용변을 가리지 못한 누군가가 지나친 직후였다. 저자는 이런 사회적 수치심은 결코 순수하게 받아 들여지지 않음을 지적한다.


54쪽, 사회적 멸시


이어 가난을 '가벼워지고, 무중력을 더 얻는 것'이라는 디오게네스의 말은 부자들의 탐욕스러운 소유욕에 대한 한탄이고 혐오다. 그러면서 "스스로 가난을 가치 지향적으로 여기는데 누가 수치스러워 하겠냐"라는 디오게네스의 자신감은 몇 세기 지나면서 가난은 수치심을 동반한다.


"모욕적인 수직 체계에서 닥치는 대로 부당한 이유만 찾는다." 63쪽, 사회적 멸시


타인의 멸시가 자기 멸시로 바뀌는 데에 대한 이야기에 수치심을 생각한다. 애써 준비한 일이 시작하기도 전에 뒤틀렸다. 담당인 나와는 상의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처리해 버렸다. 모욕감이 있지만 어쩌겠는가. 관리자의 결정에 어쩔 수 없이 무기력하게 수긍해야 하는 처지임을 자각하는 수밖에. 자로 잰듯한 수직 체계에서 난 숨길 야심도 없다.


111쪽, 사회적 사실: 근친상간, 강간(외상성 수치심)


어느 시대에서나 존재할 법한 강간이나 근친상간에 대한 억압적 폭력에 대한 설명은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이해하기는 힘들면서도 현재에도 비일비재하게 주위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긴 어렵다. 그 힘의 논리의 배경에는 남성우월주의적 장치를 통한 사회적 합의나, 어쩌면 수치심에 휩쓸린 가족의 침묵 속에서 확대되는 만행이 근친상간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공자가 신중함이라는 용어로 말한 것은 플라톤에게서 두려움이라는 말로 다시 연주된다. 화법은 두 가지이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여전히 수치심이다." 158쪽, 아이도스


줄곧 서양의 철학적 관점을 주로 다루다 보니 동양의 윤리적 관습에서 빚어지는 수치심과는 결이 다를 수 있을 수 있는 부분을 공자의 사상을 끌어와 자신의 견해를 보완한다.


이 책은 수치심이 개인이 느껴야 하는 부정적인 감정에서 사회정치적 판단이 함축된 감정임을 강조한다. 여기에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철학과 신학, 그리고 다양한 문학 작품을 소개하면서 사회적 약자 특히 여성이 당해야 했던 부당함을 치밀하고 신랄하게 파고 든다. 어렵지만 많은 수치심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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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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