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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든지 Oct 28. 2020

오늘을 버텨내는 데 때로 한 문장이면 충분하니까

사담이지만 2019년 딱 이맘때 카카오 브런치에서 주최했던 '크리에이터스 데이 2019'에서 그가 글쓰기 강연자로 등장했다. 이때 그를 처음 봤다. 물론 난 방청객이었고. 뒤쪽에 앉아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두툼한 눈두덩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강연 내용은 당시 무릎을 칠만큼 기막힌 원 포인트 레슨이었다. 특히 "독자는 궁예도, 영구도 아니"라는 말과 "일기는 블로그가 아닌 일기장에 쓰라"는 말은 두고두고 뼈 때리는 중이다. 은근 나도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어필이다.


보약도 아닌 회사를 체질 탓하며 때려치운 그의 전작은 사실 그대도 지금도 읽지는 못했다. 언젠가 나도 체질 개선이 좀 돼서 회사를 체질 탓으로 돌릴 수 있을 때 읽을지도 모르겠지만(지금 무척 많이 체질이 개선(?) 되는 중이라 조만간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저 그의 브런치에서 에피소드 몇 개만 읽고서 나와는 차원이 다른 내공이 너무 확연히 비교 군이 돼버려 더 이상 읽지 않았다. 그래놓고 이 책은 또 왜 집어 들었는고 하면 어떻게든 버텨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그가 충분하다 모아놓은 문장을 슬쩍 공감이 될까 해서다. 내가 요즘 많이 힘들다. 몸도 마음도.


첫 장! 눈 알의 조리개가 쫙 모아질 정도로 종이 바닥은 검은 활자로 빼곡히 덮여 있다. 여백의 미도 모르나 싶다가 디자인도 아니니 여백의 미는 과한가 싶기도 하고 또 그가 그만큼 할 얘기가 많은가 싶어 천천히 텍스트를 따라가 본다.

타인이 느꼈을 감정을 고스란히 같이 느낀다는 것은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일일 수 있겠지만 운동신경이라곤 1도 없는 그가 끝이 보이지 않을 거리를 앞서 뛰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묵묵히 홀로 뛰어야 하는 마라토너의 길에서 인생 문장을 건져 올렸다니 뭔가 덩달아 울컥했다.


정해지지 않지 인생이 불안했던 건 마찬가지겠지만 20대 초반 갑작스럽게 장애인이 된 후 겪는 불안함이야 말해야 무엇하랴. 어쨌든 이런 나여서일까. 불안함 속에서도 달리는 그를 보며 내 인생 트랙을 넋 놓고 보게 된다.


그렇다면 영화 마션을 한 번 더 보는 것이 내 인생의 선택지가 될 수 있으려나? 다시 보면 그때는 알지 못했던 아득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의 나는 마크 와트니처럼 절박한 거 같고(심적으로는 분명히 그렇다) 게다가 앞은 보이지 않는 불안한 암흑인데 "일단 가보자"라는 그의 말에 가슴이 벌렁대고 뜨거워지니 말이다. 확 그냥 자리를 박차고 내가 가고 싶은 길로 일단 가볼까?


"그 순간 나는 그가 진정으로 멋지다고 생각했다. 특별해서가 아니라 분명해서 멋졌다. 세상에 지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p79
"이게 뭐 하는 거지? 내가 잘 하고 있는 걸까? 난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사는 거지? 겉보기엔 무탈하기 그지없는 조직생활을 했지만 속으로는 늘 견디기 힘든 부담과 혼란을 느꼈다." p84


그중 한국인의 행복 비결인 눈치에 관한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행복하다는데 이야기는 슬펐다. 이 나이에도 그러고 산다니 나도 참 거시기하다. 삶을 비굴모드로 살지 않기를 바라지만 먹고사는 일에 목구멍을 걸어야 하는 직장인이라면 아니 소상공 업주들도 그럴 테지만 자칫 비굴해지다가 '나'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었으면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진다. 에이C 또 슬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한 구절에서 잠깐이지만 '내가 가진 게 있을까?'라는 생각이 번갯불에 콩 볶이듯 팍 하고 튀겨졌다. 물론 '있기는 개뿔'이라는 결론으로 황급히 생각을 닫아 버렸지만 그래도 로또가 아닌 집을 팔아 한적한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겠지?


"취미 생활은 그 누구의 평가도 지적도 받지 않는 나만의 온전한 방공호여야 한다." p211


변변한 취미랄 것도 없는 주제에 딱히 이 문장을 왜 길어 올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몇 번을 반복해서 읽다 보니 지친 몸으로 퇴근하고 밥 한 숟갈 떠 넣고 책을 펼쳐드는 그 순간이 아닐까 싶다. 글쓴이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나 비전 혹은 삶의 여정들을 추적하듯 따라 읽으면서 공감하는 일이야말로 '온전한 방공호' 같아야 한다. 그리고 덩달아 마음이 동해 글이라도 끄적거리면 평가나 지적에 마음이 다치지 않는 그런 진공의 방공호처럼.


나도 그동안 책을 읽으면서 밑줄 친 문장이 얼마나 많으랴 싶지만 그런 문장에 '인생'을 덧 씌울 만큼 곱씹고 마음이 흔들렸었나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이제부터라도 인생의 문장을 길어봐야겠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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