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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든지 Oct 17. 2020

[교양] 다큐 하는 마음

왠지 재밌기도 하고 호기심도 생기는 제목이다. 어떻게 느끼면 따뜻하기도 하다. 다큐를 '찍는'것도 아니고 '한다'니. 또 '본다'가 아니라 역동이 느껴지는 동사가 주는 생경함이 좋았다. 드라마보다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아내 덕에 관심 밖에 것들을 관심을 담는 또 다른 세상이 좋아하게 됐다. 아마 이젠 아내보다 내가 더 좋아하지 싶다.


좋아하는 것과 아는 것이 다르긴 하겠지만 서문에 표현되는 다큐는 말 그대로 감각적이다. 아니 신비롭달까? 보여주기 보다 같이 있어 주기 위한 작업. 그래서 자연스럽게 연대가 되는 일. 멋지다. 게다가 끝까지 놓치고 싶지 않은 얘기를 할 수 있는 힘이 부럽기까지 하다.

  

"어쩌면 시인과 가장 달아 있는 이들이 바로 '다큐 하는 사람들'이다." p7


다큐멘터리의 힘은 '몰랐지만 이제는 알았고 그래서 함께하겠다는 마음'에 있다고 힘주어 말하는 그의 말에 자연스레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것 역시 같은 힘일지도 모르겠다. 미누, 어렴풋이 알 듯한 그가 명을 다했다니 말문이 막혔다.

  

"기록된 이야기들은 기억될 것이다. 많은 이가 기억하는 한역사는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p16


이 책은 사랑이 뚝뚝 묻어나는 그의 다큐 애정의 연장선에서 다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삶을 다룬 인터뷰를 모은 것이다. 그동안 미처 다큐의 생명력과 확장력을 알지도 못하면서 상업적인 것이 아닌 뭔가 고상한 것을 탐닉하는 사람처럼 나는 "다큐를 좋아한다"라고 뱉었던 말들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현장은 더욱 진취적으로 변해야 한다. 변하지 않으면 속이는 것이다." p39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와 구조적 문제도 거침없이 쏟아내며 다큐 '판'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힘 빠지고 화가 난다"라는 그의 이야기에서 오히려 다큐 판의 미래를 본다. 그리고 강유가람 감독의 인터뷰 속 '여성'이라는 화자가 '장애인'으로 읽히며 뭔지 모를 감정이 훅 하고 빨려 들었다.

"여성으로 살다 보니 불편한 것, 억울한 것, 더 잘 보이는 것, 더 뼈저린 것..." p57


어쩌면 그건 그가 "세밀하고 섬세한 언어들을 찾아내 나를 증명했던 시간(p79)"과 궤를 같이 하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재구성한다는 그의 다큐에 대한 철학이 너무 멋지지 않은가.


이 책은 다큐멘터리의 처음과 끝을 기록한다. 어쩌면 인터뷰어들의 이야기는 자신들의 일이 왜 다큐여야 하는지, 때론 여전히 놓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탐구하는 이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다큐의 화두가 대체로 '삶'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들의 철학이 확고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덩달아 철학의 'ㅊ'쯤 더듬게 되는 듯해서 뿌듯함도 생긴다. 또 인터뷰어들의 인생 추천작들도 볼 수 있어 다큐의 넓은 세상을 간접 체험하게 된다. 봤던 영화를 발견하게 되는 일은 왠지 감독과 가까운 마음까지 든다.

"그야말로 만주벌판을 달리는 독립운동가의 마음으로 영화를 알리지 않았을까." p197


조계영 홍보 마케터의 마음을 적확하게 표현 말이 아닐까. 잘 만들어진 영화가 저 혼자 세상을 흔드는 경우도 있겠지만 아무리 용써도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인 현실에서 세상 관심 밖에 있거나 그 너머의 의미를 담은 영화를 관객들의 눈앞에 끌어다 놓는 일이 쉽지 않으리라는 걸 너무 쉽게 짐작할 수 있어 그의 노고가 그만큼 놀랍다. 국내 영화관 70%를 단 두 영화 체인이 독과점을 하고 있고 또 그들의 횡포 앞에서 다큐를 발로하는 그들이 감사하다.


나는 다큐를 하지는 못하겠지만 이제부터라도 좀 더 잘 볼 수 있도록 애써봐야겠다는 생각. 보이는 것 너머의 그 무엇을 이야기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하는 매력적인 책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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