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덕적 혼란이 가득한 시대, 내가 세우는 강력한 기준
'세상 모든 사람을 철학자로 만들어 줄 세 가지 기둥'이라는 문장이 눈에 띄었다. 굳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철학자가 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세상을 사는데 자기만의 '기준'이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는 걸 모르지는 않아서 저자가 말하는 세 가지 기둥이라는 사회의 정의, 개인의 자유, 타인과의 사랑에 대한 의미가 궁금했다.
저자 히라오 마사히로는 일본 유수의 대학에서 윤리 철학을 가르치며 '나다운' 삶에 대한 화두로 신드롬을 일으켰고, <인생은 게임인가?>, <철학, 할래?>, <사랑이라든지 정의이라든지> 등을 썼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학창 시절엔 '국민윤리'라는 과목이 있었다. 더 어린 시절엔 아마 도덕이었고. 어쨌든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데 상호 윤리가 얼마나 중요하면 과목 이름을 국민(의) 윤리라고 했을까.
그런데 대통령이나 지도층은 지들이 국민이라고 생각이나 했겠나 싶지만 어쨌든 공동체에서 이 윤리는 중요하다는 의미다. 당최 기억이 나질 않지만 인간이 사회화를 경험하면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지녀야 할 덕목 같은 걸 다뤘던 것 같다. 그랬을 거란 짐작이다. 확신하지 못하겠다.
한데 이 책이 그런 윤리철학을 기반으로 썼다니 생각해 보는데, 인간은 굳이 학문으로 윤리를 배워야 할 만큼 인간은 비도덕적인가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나는 그래도 성악설보다는 성선설을 선호하는 편이라서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윤리학을 다루겠다는 저자의 포부가 담긴 이 책이 뭐라도 궁금증에 대한 해답이 담겨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좀 있다.
저자는 윤리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2, 4. 어쩌면 부러 당연하지 않은 생각을 한다. 발주를 하지 않았으므로 뇌물은 아니다. 발주를 할 것이라는 믿음은 '뇌물'을 준 사람의 생각일 뿐이 아닐까. 만약 받은 사람은 그 돈은 꿀꺽하지 않고 공익에 사용했다면?
그리고 다음 질문, 커피 한잔 하면서 고민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치료비가 많이 들지만 완치가 될 수 있는지 혹은 장애가 남더라도 살아는 있을 수 있는지 또 내가 그 모든 걸 감당할 만큼 사랑을 하고 있는지. 결혼과 사랑은 분명하게 이퀄은 아니니까. 시작부터 흥미진진해서 도파민이 막 솟는다.
저자는 윤리가 도덕이자 '잘 사는 것'에 대한 삶의 방식이며 선악의 기준이라고 제시한다. 즉 인간, 행위와 삶의 방식, 가치, 규범의 4가지 포인트로 저자는 설명하는데 이해가 쏙쏙 된다. 내용을 정리해 보자면, 인간의 행동에서 만들어지는 선악과 관련된 규범 그리고 규범의 가치와 판단에 따른 선택이 윤리라고 하는 건 아닐까.
솔직히 요즘 뉴스를 보면(실제로는 보기 싫지만) 하도 변명과 거짓과 상식을 벗어난 일들을 저지르는 사람들 때문에 혈압이 극에 달하지만 어쨌든 선악의 기준과 가치관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윤리학이 꼭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이 확 와닿았다.
특히 사고실험 설명을 통해 '누르고 싶은지'와 '눌러도 되는지'의 질문이 심리와 윤리의 문제로 보면 결과가 달라진다는 이야기에 설득 당하는 기분이 들어서 내심 놀랍다.
저자는 이어진 정의와 관련된 설명에서 <데스노트>의 야가미의 살인이 정의인가를 묻는다. 그러면서 디케(유스티티아)가 들고 있는 저울처럼 정의는 균형이라고 설명하는데, 정의는 판단의 문제이고 그 판단은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며, 개인이 신념을 정의로 내세우면 폭주하게 된다면서 그건 테러리스트와 다를 게 없다고 지적하는데 완전히 공감하고 말았다.
한데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읽다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떠올랐다. 그는 첫 머리에서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를 사람들 향해 질주할 때 친밀한 소수와 다수의 타인 중 살리기 위해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를 묻는다.
저자의 정의에 대한 '균형'과 마이클 샌델 교수의 질문과 연결 지어 보면, 그 찰나의 순간 판다는 오롯이 개인의 문제일 테고 어디로 틀어도 사람은 죽게 되어 있는데 이때에도 균형을 적용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과연 친밀한 관계와 그렇지 않은 관계 혹은 숫자의 차이에서 균형은 존재할까? 나는 폭주하는 것일까? 역시 정의는 어려운 문제다.
특히 요즘처럼 불평 부당한 세상에서 가벼운 처벌로 풀려나는 권력이나 재력을 가진 인간들을 자주 접하다 보니 정의를 규범이나 법이 신뢰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유행처럼 범죄에 대한 사적 처벌을 정의를 실현하는 것처럼 영화나 드라마에서 포장하는 수준이다 보니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헷갈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사적 처벌은 정의 실현이 아니라 결국 복수일 뿐이지 않는가. 그래서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이 심사숙고해야 하는 이유다.
저자는 이어 정의는 하나의 본질과 세 개의 패턴으로 나누어 진다고 주장한다. 본질은 균형이고, 패턴은 조정(사법), 교환(경제), 분배(정치)가 그것인데 조정은 조와 벌의 균형을 의미하고 교환은 경제적인 그러니까 서로 주고 받는 등가의 법칙이며 분배는 공평하게 나누는 것의 균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 구조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꽤나 어려운 주제를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읽다 보면 아주 심플하게 정리된다.
'권리에는 의무가 따른다는 말'을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건 아닌지 생각한다. 내 권리는 타인의 의무와 타인의 권리는 내 의무와 한 쌍으로 이루어진 상호의 관계라는 것이고 이로써 공동체의 정의가 실현된다는 저자의 설명을 한참 곱씹는다.
"수많은 사람이 함께 살아가면서 모두 다 사이좋게 지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사이좋게'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최소한 서로 상처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듯 각 개인이 확보해야 할 영역을 권리라고 부르고 그것을 지키는 일을 정의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110쪽, 개인의 권리를 지키는 사회의 작동 원리
'자유는 제한이 있을 때 완전해진다'라는 설명에 한참 고개를 끄덕였다. 무제한 자유가 주어진 다는 것에는 타인을 헤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자신 역시 타인으로 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래서 자유는 무제한이 아닌 제한이 필요하다는 것과 그것이 상호성이란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은 윤리와 정의, 자유와 권리 나아가 인권, 행복, 사랑, 돌 등 결국 공동체 안에서 잘 살기 위한 '나'를 찾는 과정을 차근차근 쉬운 설명과 사례를 들어 사유하고 정립하게 해준다. 유명한 윤리철학 수업을 공짜로 들은 기분이다.
어쩌면 이 책은 도덕적 혼란이 가득하고 혐오가 판치는 이 시대에 '윤리'의 기준을 세우는 강력한 무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왜' 그렇게 사는가에서 어떻게 사는 게 옳은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질문이 있다. 만약 '부자가 되는 것'과 '행복해지는 것' 중 선택하라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나는 무엇을 선택할까.
#왜그렇게살아야할까 #히라오_마사히로 #최지현 #북하우스 #서평 #책리뷰 #도서 #문학 #도서인플루언서 #인문 #철학 #윤리 #통찰 #자존감 #추천도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