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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평

[에세이]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빠더너스를 공감하기로 함

by 암시랑

특별한 계기가 없었는데도 읽을 책이 떨어졌다. 읽었던 책을 뒤적여 볼까 하다가 아파트 커뮤니티에서 빌려 보기로 했다. 홈페이지를 뒤적이다 우연히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저런 유명세가 있어 보이는데 잘은 모르는 개그맨, 얼핏 본 문장이 와닿았다. '자기검열이 너무 심했다'는 말. 게다가 바로 폐기되었다는 말이 괜히 먹먹함이 있다. 내가 그랬다. 다수의 사람과는 다른 어느 정도 비켜난 삶을 살게 되면서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에서 조금씩 검열이 늘어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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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91년부터 서울에 살았다는데 나는, 아니 정확히는 본가가 서울을 떠났다. 그땐 성내동에 살았고 풍납동에 있는 병원에서 사경을 헤맬 때였다. 아무튼 들어가는 사진을 유심히 보게 된다. 넓은 곳이지만 우연히라도 접점이 있을까 해서.


책을 본 24살인 딸이 '문상훈이네? 이 사람 되게 웃겨.'라고 했다. 편견일지는 모르겠지만 개그맨이 웃겨야지,라고 했더니 개그맨이 아니고 유튜버란다. 몇 번을 도전했는데 안 됐다나.


그의 글이 무더운 날 좋아하는 청포도 에이드에 코 박고 입도 못 떼고 빨대를 쭉쭉 빨아대며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심정으로 읽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편지는 담담하지만 꽤 슬펐다.


"커가는 길은 힘들고 지루했고, 늙어가는 길은 우울해서 힘이 죽죽 빠진다. 나는 일생에 언제 기쁠 수 있나." 57쪽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모르겠으나 어쩜 이리 정곡을 콕콕 집어내는 게 사이다 같은 통찰을 할까 놀라웠다. 게다가 그가 말한 늙는다는 것은 현재의 나를 생각하게 만들기도 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사족 보행을 해야 할 만큼 후달리는 다리는 힘이 죽죽 빠지는 통에 늙어감으로 채워지는 감정이 위기감일 수밖에.


KakaoTalk_20250916_094704046_02.jpg 57쪽


"누군가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었을 때 내가 먼저 해야 하는 것은 기대에 못 미친 나도 나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잘 나온 사진만 내 얼굴이 아니듯이 기대에 부응한 나만 내가 아니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실수했을 때의 나를 부정하면 앞으로 실망할 일만 있다." 66쪽


타인의 기대나 그것에 대해 부응하려고 애쓰는 삶을 살지 않는다고 생각은 천만의 말씀이란 걸 깨닫고, 어차피 어떤 식으로든 평가받는 게 당연하다면 적당히 타협하는 게 지혜롭지 않을까 싶었다. 부대끼며 쩍쩍 갈라질 마음이 안쓰러워 실망하기 전에 포기를 선택하는 태도로 살았는데, 그의 말에 생각이 많이 졌다.


"내가 다른 사람의 행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타인의 행복에 왈가왈부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그래서 행복하지 못한 적이 많았다. 이제 나는 그 누구의 행복도 바라지 않는다." 93쪽


나는 여전히 타인의 행복에 관여하는 편이라서 그의 말에 온몸 여기저기 걸린 가시들이 발라지는 것처럼 숨겨진 감정들이 속속들이 들춰졌다. 근데 아프다기보다는 시원한 그런 기분, 배려 든 행복이든 너를 위해서라며 하는 말이 일방적이면 폭력이 된다는 생각을 동의 받은 것 같아서 기뻤다.


KakaoTalk_20250916_094704046_03.jpg 89쪽


그가 쓴 편지는 자꾸 읽게 되고 그럴 때마다 울컥했다. 타인에게 편지 쓰는 것조차 잊고 사는 세상에서 하물며 자신에게 쓰는 편지는 더욱더 그렇지 않은가. 40년 전쯤 성당 피정 말고 쓴 적이 또 있었나? 그때도 좋은 말만 고르고 골라 썼었는데…. 아무튼 성인이 된 누군가가 자신에게 고백하는 편지를 읽으며 울컥하는 묘한 감정이 싫진 않아서 검색창에 '빠더너스'를 적었다.


맞다, 청승! 줄곧 머릿속에 떠오른 그러나 찾지 못했던 감각의 단어. 작가 이슬아의 추천사를 흘끔 보다 무릎을 쳤다. '정교한 청승'보다 어울리는 표현이 있을까 싶었다. 밤을 지새우며 한 땀 한 땀 길어올린 그 청승의 문자들이 나는 너무 좋았다. 그럼에도 자신에게는 정교한 청승이었을지라도 독자에겐 꽤나 사려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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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쪽 | 148쪽


쌀알 세듯 그의 시간을 들여다보면서 그의 섬세한 감정과 감각적인 말들을 곱씹으면서 읽게 된다. 빠더너스가 누군지, 문상훈이 누군지 혹은 그가 그인지 몰라도 충분하다. 이 책이 그걸 그냥 알게 한다. 그러면 아마도 푹 빠져들게 되지 않을까.


문장을 곱씹고 옮겨 적다 보면 당최 책장 넘어가는 게 더딜뿐더러 생각도 깊어졌다. 가을이 오는 것처럼.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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