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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평

[사회정치] 진우의 거울

| 장애를 마주하는 나와 우리

by 암시랑

미술교사이자 화가. 15년 동안 발달장애인 미술 멘토로 활동해 온 진우의 아버지. <우리는 왜 그림을 못 그리게 되었을까>, <시각문화교육 관점에서 쓴 미술교과서>, <안면도가 우리 학교야> 등을 썼다.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장애 당사자가 쓰는 게 솔직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적이 있다. 나 역시 그런 글을 쓰고 있는 터라 어느 부분에서는 방지턱 앞에서 서행할 때처럼 생각이 느려지곤 한다. 때론 '날 것'이란 단어에 매몰돼서 솔직함으로 포장된 활자들이 장애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겐 다소 공감하기 어려운 하소연일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하고 나서는 종종 자기 검열을 한다.


그래서 이 책이 궁금했다. 아들의 장애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시선은 어떨까? 발달장애를 겪는 아들을 보면서 저자 자신의 삶을 반추하게 하는 거울 같은 존재라는 의미가 가슴에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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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는 오히려 거울처럼 나와 우리의 모습을 비춰 보여 주었고 나는 거기에서 참으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이전에는 당연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고 당연하지 않았던 것이 당연해지는 나의 깨달음 말이다." 10쪽


아, 기억났다. 뉴스에 보도됐던 미술교사 누드! 그 장본이라니 뜻밖이면서 놀랍다. 예사롭지 않은 감각이 진우에게도 발현됐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진우가 뇌병변 장애를 진단받고 건강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의지로, 자신의 삶이 진우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말에서 읽기가 잠시 멈췄다. 자연스럽게 엄마가 연결됐다. 느닷없는 사고로 사지가 불편해진 아들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는 엄마의 삶을 뒤덮어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엄마는 잠도 덜 깬 내 손을 잡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올림픽공원을 걸었다. 느리고 더디지만 한발 한발 더 멀리 가기 위해.


뒤이어 '이미 결정 난 일'이란 자조적인 말은 가슴에 쿡하고 박혔다. 장애는 그런 것이다. 원한 적 없지만 우연찮게 일어난 일이고 그건 바꿀 수 없는 결정 난 일이라는 것. 치료나 재활 따위로 없애거나 해결할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 가슴 아프지만 동의하게 만든다. 어쩌면 장애는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KakaoTalk_20251120_103043311_02.jpg 40쪽


그래서 저자는 장애는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모든 사람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인간은 누구나 한계와 부족함의 취약성이 있고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장벽을 마주한다고 말에도 동의할 수밖에 없다.


한편,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욕심을 부리고 싶지 않을까 싶으니 '욕심부리지 않기를'이란 다짐을 보며 울컥했다. 그리고 더 이상 걷지 못한다는 의사의 선고에도 아들을 걷게 하겠다고 모진 소리와 억척도 마다하지 않던 엄마가 감사했다. 이런 욕심은 누군가에겐 그런 자연스러운 바람임에도 작가 부부에겐 그런 욕심조차 적어지고 조심스러웠다는 것에 마음이 쓰였다.


'장애를 받아들인다'라는 말을 한참 되뇐다. 그저 다름이 있다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보통의 사람들처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넘어 그 다름에는 자체로의 삶과 행복이 있다는 것을, 장애와는 별개로 삶과 행복이 있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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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닫는다. 진우가 할 수 없는 것을 교사가 해주고 진우가 한 것이라 하는 건 결국 누가 한 것인지 구분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일이 되리라는 저자의 말에 정신이 번쩍 났다. 복지관에서 이런저런 활동에서 사회복지사가 조력자를 자처하면서 조급함에 '해주는' 일이 다반사였음을 떠올린다.


"장애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켜보고 관찰하며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다. 그래야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었다." 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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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쪽 | 151쪽


이 책은 단순히 '장애'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담담하고 진솔한 문체는 무거운 이야기가 아니라 부자 관계의 일상을 통해 성장과 한계, 그리고 사랑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성찰하게 만들어 읽는 내내 공감하게 된다.


나아가 저자는 우리 사회의 인식의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다양성과 포용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해주는 의미 있는 책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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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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