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체류의 마지막 일정은 큐가든 탐방이다. 숲해설가 교육을 마친 직후라 이번 영국여행의 가장 중요한 일정이었다. 물론 가든과 파크 방문을 통해 영국인들의 정원 사랑을 만날 수 있었지만 세계에서 가장 이름난 식물원은 차원이 다른 사안이다.
큐가든은 1759년에 조성된 왕립 식물원으로 지속적인 확장을 통해 지금은 40만 평의 규모의 세계 최대의 식물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식물 표본이 3만 종 이상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큐가든은 런던 도심에서 꽤 떨어진 외곽에 위치해 있다. 그렇게 유명한 장소가 변변한 표지판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의아하기까지 했다. 다른 면으로는 존재 자체가 갖는 힘이 있는 데 부질없이 힘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부자들이 구태여 자신의 부를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듯이.
식물원은 확실히 존재감이 대단했다. 식물원을 두른 담장부터 예사 높이가 아니다. 사람 두 배 크기만큼 높다란 담이다. 다른 한 가지는 런던 시내에 가까운 곳이 입구여야 할 텐데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했다. 더구나 그 넓은 식물원에는 주차장도 없는 점도 놀라웠다. 우리는 예 있을 터이니 오고 싶은 이들은 알아서 오라는 묵언의 울림이 아닌가 싶다.
가든 외곽 담장
입구에서부터 우람한 고목들이 시선을 압도한다. 잔디밭이 깔려있고 거목들이 줄지어 선 숲은 여느 파크나 가든과 다를 바 없이 보였지만 수목의 규모와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아 비교 불가였다.
정말 좋았던 점은 나무들을 식별할 수 있도록 모든 수목에 이름표가 붙어있다는 것이다. 물론 학명이지만 속명도 표기되어 짧은 지식에도 알 수 있는 것도 있어서 돌아보며 찾아보는 즐거움이 컸다.
하절기여서 오후 8시까지 가든을 참관할 수 있지만 온실은 5시에 문을 닫기에 온실부터 돌아보았다. 세계 각지의 특이한 식물들의 보고답게 다채로운 식물들이 온실 빼곡히 자라고 있었다. 난생처음 보게 되는 다양한 식물들의 종류가 끝도 없다. 초본에서 관목 그리고 덩굴 식물에서 목본까지 당당한 자태로 싱그러움을 뽐내는 것이 마치 열대 우림의 한 복판에 들어선 것 같다.
온실의 여러 갈래길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 꼼꼼하게 체크하며 들르지만 처음 보는 식물들이 많아 진도 나가기가 어렵다.
온실 꼭대기도 돌아볼 수 있어서 올라가 보니 완전 푹푹 쪄댄다. 밑에서는 보이지 않던 식물들의 새로운 자태도 볼 수 있다.
입을 다물 수 없게 독특한 식물들이 향연이 끝날 줄 모른다. 피곤함이 밀려들지만 발길은 멈추지 않는다. 그런 온실이 하나가 아니다. 더 큰 온실을 찾아 다시 순례의 길을 나선다. 이 온실은 대륙별 특이 식물을 보여준다.
기후와 지역에 따라 확연히 다른 식생이 보인다. 참으로 대단한 식물원이다. 한 자리에서 오지 사막에서부터 오지 지역에 사는 식물들을 전부 만나는 특별한 장소다.
아내와 딸은 쉴 곳을 찾아 머무르는 동안 혼자 동분서주하며 탐험의 여정이 계속된다. 식물원이 방대해서 구내를 돌아보는 순환 자동차가 있었다. 가족 모두 함께 차에 올랐다. 해설을 곁들여 주지만 다 이해할 수 없으니 눈만 바쁘다.
이곳은 한 종류의 수목을 종류별로 모아 놓은 곳인데 아마도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가족들이 다 모여 있는 듯했다. 일례로 참나무 종류만 해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red, silver, yellow 등 색깔별로도 종류가 다양했다.
단풍나무는 더 했다. 비슷해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차이가 느껴지는 단풍나무들의 변주곡은 얼마나 변화무쌍했는지 신비한 자연의 현장을 내밀히 들여다보는 순간 같았다.
호랑가시, 소나무도 우리가 아는 범주를 한참 뛰어넘은 놀라운 다양성을 보여준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표찰을 찾아보고, 검색을 하고.... 나무들이 자신을 하나하나 알리는 특별한 순간을 원 없이 경험했다.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식물을 알아볼 수는 없겠지만 무의식 세계 속에 침잠하다 반짝하고 뛰어오를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