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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Aug 25. 2023

스페인  말라가! 사랑할 수밖에

영국, 스페인 여행기 10

런던에서 숨 가쁜 일정을 뒤로하고 스페인행 비행기를 탄다. 짧은 체류 기간이었지만 영국의 정원에 흠뻑 취하고 문화에 폭 젖었던 몰입의 시간이었다.

나그네의 여정에는 미련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 짧은 인연을 단호하게 정리하며 새로운 땅, 스페인으로 향한다.


스페인에 첫발을 내딛는 도시는 말라가다. 딸의 친구가 사람도 도시도 마음에 쏙 들었다고 추천을 했고 알함브라 궁이 있는 그라나다도 가까워 그곳에 간다.


말라가는 유럽 최남단의 도시답게 도착하자마자 런던 게트윅 공항의 쌀쌀한 아침을 금방 잊게 할 훅 끼치는 더운 기운이 당장 겉옷을 벗게 만든다.

확연히 바뀐 기온이 딴 나라에 왔음을 알린다.


특이하게 공항은 건물 밖 공간을 품 안에 두었다. 문 밖에 나가도 여전히 머리 위에는 지붕이 가려 왠지 한 없이 넓은 가슴으로 품이주는 넉넉함이 전해진다.

말라가 공항

야자수 나무가 눈에 들어오는 말라가는 거리의 가로수부터 런던과는  다르다.

택시를 타고 숙소를 찾아가는 길, 시원스럽게 하늘을 향해 솟아난 사이프러스의 도열이 남국의 향취를 가득 풍기며 이국의 느낌을 더한다.

건조한 지역인지 낮에 본 식물들은 넓은 잎들이 보이지 않고 실처럼 늘어진 나무들이 많았다.

백 년의 연륜을 가진 거대한 나무들이 도열한 도심의 말라가는 동공을 저절로 열리게 했고 길 건너 야자수가 우거진 숲은 완전한 숲의 세상을 보여주었다.

첫날 행선지로 말라가 시내에 있는 알카사바 관광에 나섰다.

알카사바는 사라센 제국이 스페인을 통치했던 시절의 유적이다. 성채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로 말라가 곳곳에는 아랍문화의 흔적이 산재해 있어서 아랍의 향기가 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단숨에 알카사바를 올랐다. 문을 나서자 첫눈에 아라베스크가 가득 새겨진 천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알카사바 엘리베이터 입구

아라베스크는 복잡하게 보이는 문양이지만 들여다보면 단순한 모양이 규칙적으로 무한히 반복된 패턴이다. 형상을 금기시한 코란의 영향이 창조의 힘을 이끌어 상상을 뛰어넘는 다채로운 문양을 탄생시켰다. 주로 식물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지만 상상의 날개는 더 먼 곳으로 날았다.

아라베스크는 그림에 국한하지 않고 부조로 새겨져 신비로움과 아름다움 그리고 깊은 정신의 세계로 이끈다.

건축물은 대칭과 비례로 완벽함이 담겨있다. 단순하면서 무게감이 느껴진다.

공간의 활용도 뛰어났다. 직선으로 구획된 공간에 물을 끌어들여 정결함과 고요함과 평안함을 선사하고 시원함을 연출한다.

높은 곳에 위치하면서도 끊임없이 물을 흐르게 한 기술도 경이롭다. 앙증맞은 동그란 형태로 작은 분수를  배치해서 직사각형의 긴 공간에 물을 흘려보낸다. 균형감 있는 조형미를 빚어내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한 디자인도 상상이상이다.


물에 비친 하늘과 건물의 반영은 단숨에 마음을 사로잡는 놓칠 수 없는 또 하나의 기막힌 풍경이다.


미적인 추구는 아라베스크로만 머물지 않는다. 반듯한 직선으로 건축된 건물들이 자칫 딱딱해 보일 수 있는 구조를 아치와 돔을 적절히 배치하여 부드러움을 더해 조화롭다.

뜰마다 심긴 나무들과 꽃들이 우아한 정취를 풍기고 원형의 작은 분수는 정갈한 물줄기로 방문객들에게 쉼을 선사한다. 모든 요소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새로운 자극으로 지겨움은 생각할 수 없다.

전시된 도자기들도 디자인과 문양이 독특하다.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진 결과물로 보인다. 자기에도 아라베스크가 새겨져 있지만 동물 형상이 그려진 것도 있다. 자연을 그대로 담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싶다.

알카사바에 흠뻑 빠졌다가 근처의 바닷가를 찾았다. 지중해의 블루가 넘실대는 비치에 여행객들이 한여름의 바다를 즐기고 있다. 나도 무리에 합류해 발을 파도에 적신다. 청량감을 지닌 물결의 감촉이 지친 몸을 느긋하게 만든다.

밤이 내린 말라가는 낮보다 빛났다. 해변의 석양과 도심의 불빛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도시다.


마음을 들뜨게 하는 볼거리들이 말라가를 단숨에 사랑하게 만든다. 하지만 더 놀라운 점은 이것은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아름다움의 정수, 알함브라가 있기 때문이다. 경이의 연속인 여행의 순간이다.


#여행에세이 #말라가 #알카사바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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