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의 정수 알함브라를 찾아간다. 말라가에서 버스를 타고 그라나다로 가는 길, 낮은 구릉마다 올리브 나무가 수도 없이 자란다.
가는 내내 건조한 황무지처럼 보이는데도 나무라고 보이는 것은 전부가 올리브다. 스페인 하면 올리브라는 사실이 각인이 될 것 같이 가도 가도 끝도 없이 올리브나무 천지다.
건조하고 척박한 땅에도 너끈히 살아가며 귀한 열매를 아낌없이 선사하는 올리브가 왜 신의 선물이라 했는지 그들이 살아가는 열악한 터전을 보며 이해가 된다.
버스로 두 시간여를 달려서 도착한 그라나다는 말라가와 또 달랐다. 역사와 전통이 느껴지는 건축물들이 즐비하고 거리에는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 느낌이랄까. 보이는 것 모두가 고급스럽고 사랑스럽다.
시내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알함브라로 향한다. 유난히 쭉 뻗은 사이프러스가 우리를 반긴다. 알함브라는 생각과 다르게 아주 넓은 곳이었다. 높은 곳에 위치하여 요새로 보이면서도 전혀 협소하지 않았다.
알함브라는 세계적인 명소인지라 방문객들이 넘쳐나 엄청 붐비는 곳이다. 그런데 방문한 지금은 바캉스가 한물 지나간 시기이고 무더위가 한창 맹위를 떨쳐서인지 방문객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돌아보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여유로운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입구에서 여권을 스캔하고 입장을 했다. 돌아보는 데 지도가 필요할 정도로 돌아볼 데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색깔별로 표지판이 한 방향으로 적절하게 표기되어 방문객들이 혼선이 없도록 겹치지 않게 동선이 효율적으로 기획되어 있다.
통로 양쪽으로는 네모 반듯하게 다듬어진 정원수들이 조각처럼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하나도 소홀하지 않겠다는 각오처럼 수직하고 있는 잘 갖춰 입은 근위병의 엄숙한 느낌이다.
첫 관람 장소는 카를로스 5세 궁이었는데 다소 투박하고 육중한 외관을 지녔다. 네모인 궁에 입장해 보니 천장은 개방이고 안 쪽은 원형 경기장처럼 원형 광장이 있다. 투우를 이곳에서 했다고 전해진다. 이층으로 되어있는 둘레에는 방들이 배치되어 있는 독특한 구조의 건물이다.
건물은 단순하면서도 기하학적인 미감을 풍긴다. 다양한 각도로 구도를 잡으며 카메라에 담기는 피사체는 화보로도 손색이 없다.
카를로스 5세 궁전
그곳에는 알함브라 박물관이 있어서 전시된 유물들을 볼 수 있었다. 주로 가톨릭 관련 유품들이었다. 성화와 미사에 쓰이는 유서 깊은 제구들이 찬란했던 지난 시절을 보여 주지만 닳아버린 외양이 세월의 더께를 비켜 가지는 못하는 듯했다.
방문 시간이 빨리 마감되는 장소가 많아 이를 놓치지 않으려면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게다가 가장 이름이 알려진 명소는 시간별로 방문객을 예약받아 제한적으로 입장한다. 사전 예약을 미리 하지 않으면 관람이 불가하다.
드디어 방송 매체와 사진으로 본 적이 있는 그 놀라운 장소인 나스르 궁전을 만났다. 눈에 비친 실제 광경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아름다움의 끝은 무엇일까? 절제된 구도에 세밀한 장식과 완벽한 균형이 갖춰져 보이는 극강의 완벽한 풍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죽기 전에 꼭 방문해야 할 장소라는 사실이 전혀 틀림이 없다.
아치로 연결된 문도 조각과 아라베스크로 정성스럽고 세밀한 장식으로 단장되어 있다. 두근 대는 가슴을 안고 문을 통과할 때마다 신세계가 펼쳐진다. 비밀의 장소를 탐험하는 듯 새로운 광경이 눈앞에 영화처럼 등장한다.
천만다행으로 인적 없는 고요한 장면을 사진에 담는 호사를 누린다. 인내가 좀 필요하지만 배려가 몸에 밴 유럽의 문화의 덕이다.
아라베스크의 다채로운 매력이 이곳에도 차고 넘친다. 어느 문양도 전혀 비슷하지 않고 독특하며 개성이 뚜렷하다. 저런 신묘한 패턴을 전부 다 다르게 창조해 낸 예술가들의 솜씨가 혀를 내두를 정도다. 기발한 문양뿐 아니라 색조와 조각으로 변화를 부여해 다채로움은 상상을 넘어선다.
세상의 모든 패턴이 존재하는 곳, 디자인을 연구하고 공부하기는 이곳보다 더 좋은 곳은 세상에 없을 듯하다.
이곳의 중정의 정원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특별한 경치를 보인다. 꽃 한 송이도 보이지 않지만 완벽한 정원이 자리하고 있다. 기하학적인 구도로 배치된 건물과 작은 분수 그리고 물과 하늘과 공간이 빚어내는 걸작품이다. 누구나 그곳에 서면 경치가 주는 힘에 압도되어 멈춰 서게 되고 탄성을 터트린다. 사람들이 표현할 수 있는 최대 강도의 감탄사로!
어느 곳이나 눈이 누릴 수 있는 지극한 호사를 한꺼번에 누리는 감동의 시간이다.
마지막 돌아본 헤네랄리페는 나무와 꽃으로 조성된 정원이다. 사이프러스 나무를 위시하여 꽃과 물을 뿜어내는 분수와 물길로 정원의 다른 품격을 가졌다.
푸른 숲이 주는 편안함과 시원함이 크게 다가온다.
헤네랄리페의 어원인 건축가의 정원답게 공간이 주어진 곳에는 어디나 나무를 심고 꽃을 기르고 분수를 설치해서 어디를 가도 지루할 틈이 없다.
마지막으로 알카사바를 오른다. 평범한 성채로 종루가 서있고 깃발이 바람에 휘날린다. 전망이 시원하다.
무더위를 헤치며 관람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물을 계속 들이키며 땀이 비 오듯 했어도 멈출 수 없었다. 그만큼 벅차고 황홀한 시간이었다. 아름다움에 대한 시야를 넓히는 소중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