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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Aug 23. 2023

영국 명화에 빠지다

영국, 스페인 여행기 8-내셔널갤러리

런던 체류 이틀째를 맞는다. 보는 것에 열정이 넘쳐 하염없이 돌아다닌 결과, 몸이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잠이라는 놀라운 회복제가 있어서 고난의 파고를 넘는다. 연식이 꽤  되어가지만 아직은 시스템이 녹슬지 않아 생생하게 살아나 감사하다.


새 아침을 맞아 기차역에서 출발이다. 아침의 기차역은 언제나 설렌다. 우리 내면에 방랑의 유전자가 새겨져일까? 처음처럼 새로운 기분으로 여행을 나선다.


첫 방문지는 세인트폴 대성당이다. 입장료가 있는데 주일 미사를 참관하는 것은 무료여서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 성당의 외관부터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준다. 크고 거대하고 엄청나다. 보이는 하나님을 구현하려니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알맹이가 부실한 찐빵 같다는 생각도 든다.

세인트 폴 성당

소지품 검사를 거쳐 입장하는데 미사 시간이 끝나 아쉽게도 본당은 들어갈 수가 없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는데 거대한 돔과 높은 천장에 한없이 왜소해진 느낌이다. 사진 촬영을 금하여 겨우 한 장을 찍었다.


프랑스나 이태리 성당에 비해 스테인드 글라스나 성화가 많지 않아 화려함은 덜 하지만 묵직하고 강건한 힘이 느껴진다.

세인트폴 성당 내부

좌석에 앉아 나를 돌아보고 감사와 여행의 안전을 기도했다. 이에 화답하듯 파이프 오르간의 장중한 가락이 울려 퍼진다.


다음 일정은 내셔널 갤러리다. 미술관 건물부터 돔과 첨탑이 예술의 향내를 품고 있다. 정 비율이 갖는 기하학적인 구도가 눈에 비친다.

내셔널 갤러리

전시공간마다 진품이 지니는 아우라가 넘쳐흐른다. 널찍한 화폭을 가득 채우는 색조가 밝은 빛에 선명하게 드러나듯 분명하다. 그림이 가진 기나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마치 얼마 전에 완성한 듯 생생한 그림들이 살아 움직이며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역사를 배우며 익혔던 몇몇 화가 이외에도 놀라운 작품을 남긴 수많은 화가의 존재를 그림을 통해 새롭게 만난다. 물론 아는 이름의 화가를 만나면 더 반가운 것은 물론이다.


가장 큰 감동은 바로 이 것이다. 그림책을 통해 보았던 작품들을 직접 눈으로 만나는 기쁨이다.  이는 옛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는 기쁨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고흐, 쇠라,벨라스케스 낯익은 작품들

평소에 그림에 관심이 많았던 덕을 단단히 누린다. 들었던 이름들과 한 번이라도 보았던 작품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눈을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인물화가 담고 있는 생생함이 시대를 뛰어넘어 눈빛으로 말을 건네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화가를 응시했을까?

르네상스시대의 종교화가 주는 성스러움이 전시장을 가득 메우는 공간에는 어쩐지 정적이 깃든  것 같다. 하나님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을 담고 마음을 다해 화폭엠 담은 그들의 신심이 마음 깊숙이 젖어온다.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도 반갑다.  폴 세잔의 부드러운 색조를 좋아했는데 여러 작품을 만나 입이 절로 벌어진다. 모네의 수련도 빠질 수 없다.  파리에서 만났던 모네의 지베르니 다리가 그림으로 나타나 지난 추억을 소환한다.

모네, 세잔

자연 풍광을 그린 그림들은 언제나 사람들을 당긴다. 보는 자연도 좋지만 그림으로 재탄생한 자연도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다. 자연을 그린 그림은 시대를 뛰어넘는 감성을 보는 이들에게 선사한다.


너무도 많은 명화들이 끝이 없다. 질릴 만도 하지만 눈은 여전히 초롱초롱하다. 아직도 볼 작품들이 많은데 시간이 많이 흘렀나 보다. 가자는 채근이 여러 번이다.  

알았다며 빼놓고 보지 않은 전시실이 아직도 많이 남은 사실에 발길이 무거워진다.  금방 가겠다고 하고서 막바지 달음질을 한다.


명화를 통해 시대를 명멸해 간 많은 화가들을 조우하면서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길다는 사실이 분명히 다가온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들의 예술을 향한 치열한 삶이 그림에 오롯이 담겨 우리를 감동시킨다. 명화에 푹 빠진 날, 다리는 아프지만 마음은 부자가 되었다.


#여행에세이 #내셔널갤러리 #전시회 #그림 #명화 #내셔널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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