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 투어의 감동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개인 일정으로 홀로 관람한 카사 밀라의 실내 투어는 참으로 벅찬 감동이었다.
몬세라트의 바위 산에서 영감을 받은 건축으로 알려진 까사 밀라는 가우디에게 "두 번 다시 사람을 위한 집을 짓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한 작품이다. 건축주 밀라와 고소가 이어지는 험난한 길을 겪으며 건축했기 때문이다. 까사 밀라는 곡선으로 집을 짓는 파격을 통해 사람들에게 '돌을 파는 채석장'이라는 야유를 받았고 언론에 알려져 시로부터 조사까지 받게 된다. 결국 헐라는 명령과 막대한 벌금까지 부과되는 상황까지 겪게 되었다. 다행히 벌금은 예술성을 고려하여 해결이 되었다. 건물을 지으며 가우디는 외관에 성모상 조각을 설치하려 했으나 당시 성직자들의 부패로 성당에 대한 사회 분위기가 아주 나쁜 상황에서 분양을 우려한 밀라가 반대하여 급기야 공사가 중단이 되었고 밀라가 공사대금을 지불하지 않았다. 결국 고소를 통해 받게 된 돈 전부를 수도원에 기부하는 일까지 생겼다.
까사 밀라
까사 밀라는 다른 주택과 다르게 지금의 주상복합 개념의 주택이다. 1층은 가게 용도고 2층은 밀라부부의 거주용이고 나머지 층은 부유층에게 임대할 목적으로 지어졌다.
까사 밀라의 가장 큰 특징은 직선을 배제한 곡선으로 지은 것이다. 방도 둥글고 옥상도 둥글다. 둥근 공간은 효율적인 이용면에서 보면 아주 불합리한 선택이다. 그런데 실내를 돌아보면 신기하게도 방이 둥글어서 이상하다거나 불편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마도 둥근 공간에 맞는 적절한 가구가 배치된 까닭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가우디는 가구 제작에도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특히 인체를 고려한 편리성과 자연스러움을 최대한 담은 디자인으로 지금의 북유럽의 세련된 디자인과 견주어도 조금도 밀리지 않아 보인다. 다방면에 예술성이 차고 넘치는 가우디의 천재성을 보게 된다.
가우디가 제작한 가구
확실하게 까사 밀라는 밖에서 보기에 외관이 유려하다. 건물이 마치 물결치듯 둥근 테라스가 돌출되어 굽이치듯 이어지며 건물 전체를 감싼다. 건물 층이 위로 갈수록 조금씩 좁아지며 안정감을 준다. 테라스마다 각기 다른 32개의 해초 모양의 철제 장식물이 있어 바다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건물은 특히 다락과 옥상의 굴뚝이 압권이다. 그래서 가이드와 함께 투어를 마치고 그다음 날 실내 투어를 별도로 신청하여 방문하였다. 비가 오는 날에는 옥상을 개방하지 않는데 다행히 방문하는 날은 좋았고 그 후로는 비가 내렸다.
건물 내의 파티오(위 쪽이 트인 건물의 내부의 뜰)에서 위를 바라보니 확실하게 원형 건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직선으로 이어져 밖에서 보이는 건물의 높이보다 내부에서 바라본 층고가 훨씬 높아 보인다. 입구의 벽면도 보색을 칠하고 문양을 새겨 신비롭다. 막상 실내에 들어서니 밖에서 보는 외양이 파격적이고 독특함에 비해 건물 실내는 다소 평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가구나 널찍한 실내 공간이 여유로워 보였고 샹들리에를 비롯한 장식들이 고급스럽고 화려해서 최고급 주택의 풍모가 느껴졌다. 다만, 특이하게 빙 돌아가야 하는 원형의 복도가 신기했다.
파티오에서 올러다 본 풍경
키사 밀라의 실내
윗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난간의 철제 장식도 평범하지 않다. 자유로운 곡선의 장식이 이어져 있다. 벽면도 물결치듯 구분하여 색상을 칠해서 자유 분방한 느낌을 준다. 어디나 부드러운 곡선이 흘러넘친다.
계단
다락에 올라가는 순간, 놀라움에 숨이 막혔다. 미처 생각할 수 없는 전혀 색다른 공간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간접조명으로 다소 어두운 실내 분위기에 완전히 낯선 세상에 들어선 기분이다. 중첩된 아치가 길게 이어져 동굴 속을 탐험하는 느낌이다. 아치도 획일적이 아니라 조금씩 엇갈려 겹쳐지며 공간을 부드럽게 나눈다. 천정에는 아치를 이어주는 선이 엇갈려 이어지며 등뼈와 같은 형상을 이룬다. 마치 고래의 뱃속에 들어온 분위기다. 털썩 주저앉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그런데 낯선 음향이 들려온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깊은 바닷속을 유영하는 고래의 노랫소리가 울림으로 퍼진다. 기막힌 연출이 아닐 수 없다. 이 공간은 바닷속 세상이다. 나도 한 마리 물고기가 되어 고래를 따라 유영한다. 너무나 감동이 되어 시를 한 수 읊기까지 했다.
다락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옥상에 들어선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나선형으로 고깔모자 같다.
옥상에 들어서는 순간, 다양한 조형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옥상도 다시 놀라운 세상이다. 가우디의 상상의 끝은 어디일까? 버섯 같기도 하고 거인처럼 보이기도 하고 철모를 쓴 로마 병사들도 보인다.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 형상도 서있다. 모든 조각에도 곡선은 살아있다. 병사의 조각에는 투철하고 냉정한 전사의 굳은 기개도 느껴진다. 굴뚝을 이렇듯 기발하게 창조할 수 있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빙 돌아가며 둘러보는 데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다. 굴뚝의 아치 사이로 보이는 풍경도 환상이다. 더구나 한쪽에서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도 보인다.
옥상
옥상에서도 한참을 머물러야 했다. 그곳에서 주는 감동도 대단했기 때문이다. 옥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파티오의 풍경도 아름다웠다. 1층으로 내려와 파티오를 아래에서 위를 바라본 풍경이 비디오를 층층이 쌓아놓은 형상으로 신비롭다.
까사 밀라의 실내를 돌아본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가우디 건축의 진수가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신의 선인 곡선을 유감없이 사용하고 형이상학적인 공간을 유감없이 풀어놓은 특별한 공간이 주는 감동을 가슴 깊이 느꼈다. 이 모든 경이로움을 창조한 그의 흉상 앞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안토니오 가우디 흉상
가우디 투어의 마지막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다. 가우디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은 곳, 가장 보고 싶었던 성당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집으로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신비와 경이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