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심에서 자랐지만 시골이 좋다. 내가 결혼을 잘한 점 중 하나는 처가가 시골인 아내를 만난 것이다. 결혼으로 인해 내게 진짜 시골이 생겼다. 처가는 전남 곡성군 석곡면이다. 다정한 산들과 정겨운 들판 그리고 그리운 사람들이 언제나 따뜻하게 맞아주는 고향을 만났다. 그곳에는 정이 듬뿍 담긴 토속적인 먹거리들도 넘친다. 장인 장모님이 작고하신 지 오래지만 마음씨 곱고 인정 많은 처형 부부가 살고 계셔서 처갓집처럼 드나든다. 서울에서 가려면 멀고 먼 길이지만 갈 때면 늘 가슴이 뛴다.
처갓집 마당
처형네가 농사를 짓고 있는 덕에 쌀을 가져온다. 무농약 농법으로 농사를 짓기 때문에 우리는 서울에 살지만 건강한 밥을 먹는다. 쌀은 볍씨로 가져온다. 집에 작은 도정기가 있어서 밥을 지을 때마다 5분도로 도정을 해서 밥을 짓는다. 쌀눈이 살아있어 건강에는 아주 좋지만 매번 도정을 해야 하는 흠이 있다. 더구나 도정기의 모터가 닳으면 주기적으로 교체를 해야 한다. 공장이 인천에 위치해서 가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서 아내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그만두고 싶어 했다. 그 어려움을 충분히 아는지라 서운하지만 동의할 수밖에 없다.
시골 채마밭
올해도 쌀을 가지러 시골에 갔다. 서울에서 먼 거리라 아침 일찍 서둘러 가야 도로 소통이 원활하다. 약속이 겹치는 탓에 오후 4시가 지나서야 출발했다. 금요일이고 늦게 가는 바람에 무려 6시간이 넘게 소요되었다. 밤 10시가 지나서야 겨우 처형네에 도착했다. 그때까지 처형부부는 잠도 못 주무시고 우리를 기다렸고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셨다.
2남 2녀를 둔 처형은 자녀들이 다 잘 자랐고 대부분 출가해서 너른 집에 두 분만 사신다. 마당이 너른 한옥인데 마당에는 채마밭이 있어서 여러 가지 채소들이 심어져 있다. 공무원을 퇴직하신 동서는 농사도 일가견이 있다. 논농사도 일부 짓고 밭도 경작해서 철 따라 다양한 소출이 끊임없이 나온다. 농사짓는 일이 매우 힘들고 드는 비용도 많아서 사서 먹는 것이 훨씬 낫다며 농사를 그만두겠다고 늘 말씀을 하시지만 언제나 말씀으로 그친다. 봄이 오면 땅에 씨를 뿌리게 되고 또다시 농사를 짓게 되는 것이다.
시골 풍경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쉬지 않고 피는 마당에는 꽃나무와 과일나무가 섞여 있다. 달고 깊은 맛이 있는 단감나무와 큰 열매가 달리는 대추나무가 있다. 오월에 붉은 열매를 꽃처럼 맺는 뜰보리수도 자리하고 있다. 시월에 피어 진한 향기를 토하는 구골목서에는 아직도 꽃송이가 남아있고 천리까지 향을 풍기는 천리향과 만리향이 여전히 잎을 달고 있다. 여러모로 정을 줄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곳이다.
밤이 깊었지만 아내와는 다르게 나는 배가 고팠다. 처형은 반찬이 없는데 어쩌나 하시면서 어린 상추를 뜯은 게 있다면서 뚝딱 겉절이를 해주셨다. 처형은 손이 아주 빠르다. 농사일뿐 아니라 무엇을 해도 남보다 몇 배 빠르게 성과를 내신다. 요리도 말 그대로 금방이다. 겉절이를 순식간에 만드셔서 밥 한 그릇을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겉절이는 내가 좋아하는 최애음식이다. 어린 푸성귀들로 무친 겉절이를 정말 좋아한다. 부친께서도 겉절이를 좋아하셔서 어머니는 늘 싱싱한 채소로 겉절이를 상에 올렸다고 한다. 내게도 그 입맛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산해진미가 놓여도 겉절이부터 손이 간다. 신기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상추 겉절이
초겨울에 푸르고 싱싱한 어린 상추를 숨도 죽이지 않고 그대로 살려 살짝 양념을 입힌 겉절이의 맛은 말해 무엇하랴! 한겨울에 봄을 맛보는 기분이고 건강을 그대로 먹는 느낌이다. 아삭한 식감에 신선함은 최고의 맛이다. 입맛을 돋우는 겉절이는 순간의 음식이다. 요리를 하면 곧바로 먹어야 제 맛이 난다. 시간이 흘러 숨 죽은 겉절이는 더 이상 겉절이가 아니다. 흐물거려 식감도 없고 간이 짜져서 형편없는 맛이 된다. 오래갈 수 없는 요리의 특성이 겉절이를 특별하게 만든다.
어린 상추
초겨울에 포기로 자라는 상추는 얼어 죽지만 늦은 가을에 씨를 뿌려 빽빽하게 크는 상추는 추위를 견딘다. 애송이들이 한데 뭉쳐 일으키는 반란이다. 실제로 아침에 채마밭에 나가보니 서리가 내려 어린 상추 위에 얇은 얼음층이 덮였다. 어린것들이이웃하며 당차게 추위를 이기고 있는 모습이 대견하다. 아침 식사로 시래기 된장국과 겉절이를 곁들여 먹었다. 소박하지만 맛과 건강이 함께 자리한 맛있는 시골 밥상이다.
채마밭
오전에 형님은 들기름을 짜러 방앗간에 가시는 동안 콩을 고르는 일을 도왔다. 콩을 타작하고 난 뒤 뒷일이 남은 것이다. 얼른 보기에는 흔히 보는 콩인데 고르면서 보니 하나같이 못생겼다. 그래서 여쭤보니 고르고 윤기 나는 콩들은 대부분 농약 덕분이란다. 무농약으로 크는 것들은 병충해에 부상을 당해 상처투성이다. 겉만 번지르르한 것에 눈이 팔린 어리석음을 깨닫는다.
콩고르기
오후에는 순천에 들러 그곳에 사시는 처형을 만나 식사를 함께 했다. 연로하신 분이라 시골에 내려올 때마다 찾아뵌다. 인정이 많으셔서 돌아가는 길에 무엇이라도 주려고 애쓰신다. 우리도 저녁에는 서울로 출발을 해야 해서 밭에 들렀다. 농사지은 대파를 뽑아 주셨고 김장 무도 주셨다. 밭에는 오소리 굴도 있어서 신기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해가 넘어가는 시각의 보성강변의 노을이 아름다웠다.
보성강 노을
처형댁에 돌아와 서울로 가져가려고 어린 상추를 욕심껏 솎았다. 시금치도 뽑고 갓도 캤다. 쌀을 필두로 고구마, 대파, 콩, 기름, 갓, 무, 배추, 감, 밤을 바리바리 싸주셔서 한 짐을 가득 차에 실었다. 정과 인심을 가득 싣고 서울로 떠난다. 배도 부르고 마음도 부른 행복한 귀경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