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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Dec 23. 2024

발왕산 눈 속으로

용평 스키장 정상에 올라

용평으로 여행을 와서 스키의 짜릿함은 누릴 수 없었지만 눈이 선사하는 즐거움 충분히 만끽하는 시간이었다. 해발 1,458미터 높이의 발왕산 정상에 올라 만개한 눈꽃 세상을 만난 것이다.

오전에 오대산에 들렀다가 오후에 케이블카를 타고 발왕산 정상을 올랐다.  용평 스키장의 고난도 코스를 오르는 길이기도한 케이블카 탑승은 비용이 상당하다. 왕복 7.4 킬로미터의 국내 최장 길이로 18분 동안 운행된다. 처음에비용이 비싸 보였지만 막상 타보니 오히려 저렴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혹적인 풍을 감상하며 멀고 높고 험한 을 아주 편안하게 오르기 때문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가는 동안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산의 실루엣이 새롭다. 마치 산줄기를 진한 선으로 그어놓은 듯 산세가 선명하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숲에는 눈꽃이 피다. 산 아래는 바람으로 인해 나뭇가지에 눈이 남아있지 않은데 산마루눈을 뒤집어쓴 전히 다른 풍경다.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다. 아쉽게도 전망대는 시야가 제로고 안전문제로 끝까지 가볼 수도 없다. 짙은 운무로 아무것도 안 보이는 데다 바람은 얼굴이 아플 정도로 시리고 세차다. 다행히 주목 숲으로 가는 길은 바람이 잦아들어 그나마 괜찮다. 눈에 비치는 공간은 전부 눈으로 채색되어 완전히 서정적인 그림이 되었. 그곳에서는 사람도 그림의 일부가 된다. 추위로 얼굴이 얼얼하지만 환상적인 경치에 잘 왔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흐뭇하다.


나도 모르게 홀리듯 숲 속으로 발길을 옮긴다. 눈이 빚은 신세계에 들어서니 마음이 동심에 젖는다. 코가 얼 정도로 춥지만 풍경에 압도되어 감탄에 추위를 잊게 된다. 싱가포르에서 온 외국인 가족들이 엄청 신이 났다. 빨간 망토를 두른 아이는 동화 속 주인공이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눈 오는 날의 기쁨을 만끽하는 순간이다.

눈 내린 풍경에 넋을 놓다가 정신을 차리고 주목이 자생하고 있는 숲길을 간다. 주목은 추위에도 강인하고 아주 천천히 성장하여 오래 사는 나무다. 발왕산 정상에는 주목 군락이 있다. 잘 보호된 숲은 소중한 우리의 자산이다. 아름드리 주목마다 이름을 붙여 관심과 친근함을 더했다. 주목을 보호하려는 마음과 주목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진다.

숲길을 걸으며 백색으로 물든 사위 풍경의 신비로운 분위기에 점점 더 빠져든다. 나목만이 쓸쓸히 남았던 황량한 공간에 눈이 더해져 풍요로운 눈의 나라가 되었다. 가지마다 눈을 걸쳐 흑백의 대조가 뚜렷한 겨울나무는 설치 작품처럼 우아한 멋을 풍긴다. 엄동설한의 맹추위가 휘몰아치지만 눈이 수북이 쌓인 풍경은 오히려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무채색의 숲 속에 붉고 노란 텐트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한겨울 야외의 눈 속에서 숙박을 하는 이들이다.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그들의 패기가 부럽다. 극한의 자연의 품에 안겨 춥고 길고 어두운 밤을 지내는 일은 아주 특별하고 기억에 남는 멋진 추억이 될 것은 틀림이 없다.

태극기가 휘날리는 정상에 섰다. 북풍이 휘몰아쳐 맨 손을 잠시라도 꺼낼 수 없다. 곧바로 꽁꽁 얼기 때문이다. 어쨌든 꼭대기에 왔으니 인증사진을 남긴다. 모자를 쓰지 않으면 잠시라도 견디기가 어려울 정도로 추위가 거세다.


내려가는 길이 마치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같다. 하산길에 만난 당당하게 서있는 주목 한 그루가 돌아가는 길을 배웅한다. 우직하고 당당한 모습이 듬직하다. 눈을 마치 두꺼운 솜이불을 덮고 있는 듯 귀여운 어린 주목은 함께 놀자고 손 벌리는 개구쟁이 같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많은 눈이 겨울 여행의 특별한 추억을 안겨주었다. 용평에 와서 배부를 정도로 눈을 실컷 구경했으니 말이다. 발왕산 정상의 눈꽃을 만나 누린 기쁨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밤이 곱게 내린다. 아름다운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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