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촌 삼악산 등정기
악자가 들어간 산은 오르기 험한 산이라고 하더니 삼악산은 정말로 말 그대로였다. 험한 것을 아예 넘어서 오히려 험악하다고 할 지경이었다.
강촌 방향에서 산을 오를 때만 해도 "험해 봤자 얼마나 험하겠어?" 하며 크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산마루에 다다르자 경사가 심한 데다 암벽들이 포진해서 악 소리가 절로 났다. 힘겹게 정상인 용화봉에 올라 의암호를 내려다보며 신나게 환호성을 울리기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의암호 방면으로 하산하는 길은 산행이 아니었다. 난코스를 등정하는 고난도의 탐사였다. 두 발만으로는 절대 내려갈 수 없는 험준한 바위길로 봉우리가 뾰족한 탓에 경사도 심했다. 더구나 능선은 산성 길로 좌우가 급경사와 낭떠러지인 데다 폭도 아주 좁은 소로였다. 거리도 짧지 않았다. 거의 한 시간 이상을 계속해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전전긍긍하며 내려와야 했다. 결과적으로는 역동적인 산행이 되었고 심심할 겨를이 없어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삼악산은 특별했다. 산에 들어서자 쉽사리 보기 힘든 협곡이 우리를 맞았다. 높다란 암벽에 둘러싸인 산행 길은 여느 산과는 전혀 다른 낯선 풍광을 보여주었다. 전반적으로 풍기는 분위기가 상당히 이국적이었다. 물이 흐르는 계곡에는 폭포들이 줄지어 있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아기자기한 폭포들이 힘차게 흰 포말을 쏟아냈다. 폭포는 자잘했지만 이름은 그렇지 않았다. 등선폭포 백련폭포. 비룡폭포들로 아주 거창하다.
협곡을 지나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곳은 가을의 끝자락을 보여준다. 다 떨군 나뭇잎들은 길 위에 수북이 나뒹굴고 헐벗은 나목들은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 간간이 지지 않은 단풍잎들이 가을의 흔적을 남겼다. 날은 쾌청한데 바람은 냉기를 머금었다. 옷깃을 여미고 산을 오른다. 기온이 뚝 떨어져 초겨울의 스산함이 묻어난다. 뭔가 쓸쓸하면서도 고적하다.
계곡의 물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고요한 숲에 울려 퍼지는 물소리는 깊은 산사의 독경 소리처럼 청량하다. 가는 계절이 아쉬웠는지 복자기 한 그루가 불이 붙은 듯 붉은 잎들을 펼치고 우뚝 서있다. 독야청청한 소나무의 멋진 풍모를 지녔다. 꽃 단풍 사이로 걸린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
인적이 드문 깊은 산이다 보니 낙엽이 산길을 감췄다.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으며 산마루를 향해 걷는다. 낙엽을 밟는 것이 아니라 낙엽을 헤치며 산길을 간다. 마치 한겨울 눈 속을 걸어가는 기분이다. 낙엽 밟는 소리가 정적을 깨운다. 거친 호흡소리도 친구가 되었다.
삼악산 품속에 자리 잡은 암자 주변은 원색의 단풍이 남아있어 눈길을 끈다. 나무들 대부분이 잎을 떨군 산이라 더 귀하게 다가온다.
산마루에 올라서면 온통 바위 투성이다. 말 그대로 완전한 돌 산이다. 능선에는 자연 지형을 따라 축성된 삼악산성이 길게 이어져 있다. 후삼국의 견훤이 왕건에게 쫓겨 피난하면서 쌓은 성이라고 전해진다. 험준하고 오르기도 벅찬 이곳을 누가 공격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삼악산 정상은 뾰족하다. 거친 산은 쉽게 정상을 내어줄 마음이 없다. 정상을 오르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힘든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정상에 다다른다. 두 손, 두 발을 다 동원해 힘겨운 길을 올라서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다.
공간이 협소한 정상은 기막힌 풍경을 선사한다. 푸른 의암호를 배경으로 춘천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선을 돌리면 굽이치는 산봉우리가 중첩되어 이어진다. 산자락에는 노랗게 물든 일본 잎깔나무숲이 수채물감을 연하게 풀어놓은 것 같다.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함을 맛본다. 정상을 오른 자만이 오롯이 누리는 특권이다.
하산길은 고행의 시간이었다. 올라 간 길보다 배나 더 험준했다. 유격훈련을 받듯이 밧줄을 붙잡고 바위를 타야 했다. 낙엽이 바위를 덮어 미끄러지기 알맞은 경사길이 계속 이어졌다. 길도 명확하지 않다.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내려가는 곳이 길이 되었다.
위험한 길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또다시 거친 길이 다시 시작되었다. 연속해서 이런 일이 반복이 되니 좋은 길에 대한 기대가 저절로 포기가 된다. 삼악산은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길에 대한 기대를 아예 접는 것이 현명하다.
하산한 의암호 주변에는 단풍이 아직 남아 있다. 해가 벌써 산마루를 넘어가서 산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빛이 아직 남은 곳은 금빛으로 물들어 반짝인다. 호수와 산이 어우러져 빚어낸 고운 풍경에 빠져든다. 가는 가을의 뒷모습이 곱다.
몸이 힘든 산행이었지만 눈이 호강한 시간이었다. 높은 산은 아닌데도 난이도가 상당한 성깔 있는 산을 만났다. 진달래 피는 봄에 다시 오고 싶을 만큼 상당한 매력을 지닌 삼악산을 마음에 담았다. 춘천시내에 들러 닭갈비를 맛본 것은 삼악산행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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