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에 올라 단풍을 만났다
올해 들어 가장 멋진 단풍을 만났다. 기대하지 않아서 더 감동이다. 도봉산에 올라 화려한 가을의 자태를 영접하는 기쁨을 누렸다. 여름이 아직 도처에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가을은 이미 깊어가고 있었다.
매주 월요일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몽블랑트레킹 갔던 동료들과 산행을 하는 날이다. 오늘도 시간이 되는 셋이서 도봉산에 올랐다. 전 주까지만 해도 서울 근교 산에는 단풍이 들지 않아서 제대로 된 단풍을 구경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산을 올라보니 아니었다. 단풍은 한창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망월사 전철역에서 내리니 도봉산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한없이 정갈한 하늘을 배경으로 아무것도 가림이 없는 산봉우리의 자취가 매우 또렷하다. 쾌청한 가을날을 맞아 마음도 한껏 부푼다.
망월사에서 도봉산을 오르는 코스는 역동적이고 스펙터클 하기까지 하다. 자운봉을 오르기까지 상당히 난코스다. 하지만 힘든 만큼 보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이 방향은 다락능선을 타는 길인데 초입부터 오르막의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오르는 동안 허벅지에 힘이 잔뜩 들어가 저절로 강도 높은 하체 운동이 된다.
오를수록 험준한 바위가 많아 장갑은 필수다. 암벽 줄타기도 빼놓을 수 없다. 악명 높은 Y 계곡도 이 구간에 있다. 이곳은 손과 발을 모두 동원해서 4족 보행을 해야만 통과할 수 있다. 절벽 난간에 줄을 매달아 놓은 길이라 위험해서 한눈을 팔 겨를이 없다. 이곳에서는 잡념은 눈 녹듯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무심의 경지에 이른다. 어려운 몰입이 저절로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루하거나 심심할 틈이 전혀 없다. 심지어 재미까지 느껴진다.
산허리에 올라서니 물든 단풍이 보인다. 요 며칠 기온이 떨어져서 인지 산마루에 울긋불긋한 색조가 번졌다. 알록달록 고운 것이 마치 어린아이가 색동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분위기다. 망월사 가람들이 마치 수놓은 꽃밭 속에 자리한 것 같다.
경사를 오르는 것이 힘겹기는 하지만. 빛깔 고운 단풍이 골마다 봉우리 사이마다 우리를 맞이한다.
산을 오를수록 단풍 빛깔은 짙어진다. 비로 깨끗이 씻긴 대기는 찬기운까지 품어 더없이 상쾌하다. 하늘도 근래 들어 가장 푸르다. 산행도 날짜를 잘 택해야 제대로 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다.
산에서 만난 분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산을 오른다고 했다. 전날은 흐려서 단풍을 제대로 사진에 담을 수 없었다고 한다. 오늘은 그와 반대로 너무 좋은 날이란다. 화창한 날씨에 확실히 봉우리는 눈부셨다. 만장봉, 자운봉, 신선대에 곧게 자란 푸른 소나무들과 고운 단풍이 어우러져 멋진 비경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멋진 풍광을 누리게 되어 오늘은 정말 운이 좋은 날이다.
자운봉을 바라보고 점심을 먹는데 바람이 차다. 날이 차면 얇은 옷을 여러 겹 껴입고 와야 하는데 재킷만 걸치고 왔더니 입으면 덥고 벗으면 춥다. 산행에는 철저한 준비가 필수다. 준비가 부족하면 애를 먹기 마련이다.
신선대에 올라서서 사위를 돌아본다. 장엄하고 광활한 산자락이 굽이굽이 펼쳐졌다. 아스라이 북한산 봉우리까지 보인다. 물든 단풍은 산 정상부에 집중해 있다. 높은 산을 오르는 수고를 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으로 전망 좋은 풍경에 한껏 취한다.
내려오는 길에도 단풍이 불탄다. 중간에 천축사의 아름다운 자태도 사진에 담았다. 흰 바위 봉우리를 등진 전각이 참으로 아름답다. 반가운 진객도 만났다. 참나무를 열심히 쪼아대고 있는 오색딱따구리다. 여러모로 기분이 좋은 날이다.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는 산행을 했다. 가장 좋았던 것은 한창 물오른 도봉산의 단풍을 제대로 감상했다는 것이다. 높은 산의 단풍을 제 때에 맞춰 찾아가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날씨까지 완벽한 날을 만나기는 더 어렵다. 오늘은 모두가 딱 들어맞는 행운의 날이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다섯 시간이나 산행을 했지만 최고로 만족스러운 산행이라 피곤한 줄도 모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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