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요?
지금은 누구에게나 걱정과 불안, 두려움이 당연하고 오히려 강요되는 시대죠.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이 지배하는 시대이기도 하구요.
예전에 자주 쓰던 양심이라는 말이 요즘 거의 사라진 이유가 나 혼자서만 양심적이면 손해를 보거나 피해를 보기 때문이죠.
그래서 양심을 속여서라도 부와 권력을 무조건 획득하는 것이 먼저구요.
물론 남보다 내가 훨씬 중요하고 절대 손해봐서도 안 되죠.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의 관계는 점점 좁아지고 외로워지면서 걱정과 불안, 두려움이 계속 커져가죠.
게다가 1인 가족이 점점 늘어가면서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외로워 하고 힘들어 하게 되구요.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가치가 점점 약해지고 경제력이라는 절대 가치로 대체되면서,
걱정과 불안, 두려움은 줄어들기보다 늘어나기 바쁘죠.
그리고 걱정과 불안, 두려움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쉽게 말하는 잔인한 말들도 많죠.
막상 자신이 힘들 땐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그런 말들이구요.
예를 들면 “아무 것도 걱정할 것 없어. 원래 불안은 약한 사람만 느끼는 거야. 그리고 걱정만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고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야. 솔직히 강한 사람은 걱정하지 않아. 그러니까 걱정은 시간 낭비일 뿐이야!”라는 말들이죠.
얼핏 듣기엔 나를 위한 말이고 좋은 말 같지만,
생각할수록 전혀 위로도 안되고 짜증만 나는 말들이죠.
하지만 우리는 마음에도 없는 이런 말들을 통해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서로에게 열심히 하고 있구요.
그래서 오늘은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걱정과 불안에 대해 오해하기 쉽지만 듣기 좋은 3가지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걱정과 불안에 대해 오해하기 쉽지만 듣기 좋은 3가지 이야기 중 첫 번째는,
“걱정과 불안의 90%는 쓸 때 없는 걱정이며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과연 정말 걱정과 불안의 90%는 일어나지 않을까요?
솔직히 제가 느낀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고 이런 말들은 성공한 사람들이 말하는 결과에 대한 해석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 걱정과 불안의 50%는 실제로 일어날 것만 같았구요,
경험상 최소 30%이상은 진짜로 일어났구요.
원래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고 하듯이,
제가 느낀 슬픈 예감은 그 누구보다 잘 맞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걱정하는 어떤 일은 그냥 지나가고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날 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일을 습관적으로 걱정하고 불안함을 항상 느끼게 되죠.
두려움으로 인해 실행도 제대로 못해보고 작살나는 거구요.
나쁜 일이 연달아 생기는 머피의 법칙이나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우리들은 항상 걱정과 불안을 느끼면서 세상을 살아가죠.
하지만 만약 저도 운이 좋아 크게 성공해서 누군가에게 걱정과 불안에 대해 좋은 말을 해주는 기회가 생긴다면,
걱정과 불안의 90%는 쓸 때 없는 걱정이 아니라 100%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소중한 사람들도 아니고 저는 이미 성공했으니까 입장이 달라진 거죠.
원래 사람은 입장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고 과거는 미화되는 거니까요.
어쨌든 저는 걱정과 불안의 몇 %가 실제로 일어날 지 걱정하기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하나씩 집중해서 실행하는 것이 걱정과 불안을 줄일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몇 %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발생하면 100%고 지나가면 0%지만, 무엇이 발생할 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걱정과 불안이 오해였음을 증명하는 방법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기보다는 여러분들의 용기와 실행력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세요.
걱정과 불안에 대해 오해하기 쉽지만 듣기 좋은 3가지 이야기 중 두 번째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죠.
도대체 이 말은 누가 했을까요?
이 말을 한 사람은 이 말을 실패하고 어려웠을 때 했을까요? 아니면 성공했을 때 했을까요?
혹시 경험 없는 대학 교수나 무책임한 컨설턴트가 한 말은 아닐까요?
왜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상대방에게 위로랍시고 막하는 걸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피할 수 없다고 해서 마지 못해 하는게 아니라 정말 즐기면서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즐기면서 하는 것이 가장 좋고 생각의 스위치를 긍정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회사 업무에 진심을 다해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사람은 5%이내라고 생각합니다.
22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런 사람들은 거의 본 적이 없거든요.
솔직히 직장인의 90%이상은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거나 열심히 즐기는 척을 하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구요.
그리고 이렇게 하다가 다행히 결과가 좋거나 누군가가 잘 봐줘서 승진하게 되었으면서,
자신은 피할 수 없어서 즐긴 것이 아니라 항상 모든 업무에 도전하면서 즐겼다고 말하는 거죠.
분명 제가 옆에서 누구보다 먼저 피하려고 하는 모습을 봤는데도 말이죠.
또한 저는 피하는 것과 즐기는 것은 분명히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계속 해야만 하는 우리는,
도망치거나 피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지금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야근을 하거나 주말 근무를 하게 되구요.
그리고 이 과정을 즐겼다는 말은 정신 승리거나 시간이 지난 후 좋은 결과를 포장하는 자기 정치에 불과하구요,
회사에서 성공했거나 인정받는 핵심인재들의 거짓된 이야기에 불과한 거죠.
원래 세상은 성공하고 인정받는 고수들에겐 놀이터고 하수들에겐 지옥이잖아요.
어쨌든 저는 피할 수 없으면 즐기지는 못해도 나름의 최선을 다해 실행하는 것이 베스트라고 생각합니다.
걱정과 불안에 대해 오해하기 쉽지만 듣기 좋은 3가지 이야기 중 마지막 세 번째는,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정말 오해하기 쉬운 좋은 말이죠.
하지만 세상을 어느 정도 살아보니 위기는 기회가 아니고 전화위복은 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저에게 위기는 확실한 위기였고 가만히 있으면 더 큰 위기가 되어서 다가왔죠.
너무 힘들어하면서 “위기는 기회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본 적도 없구요.
그냥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의 성취를 강조하기 위해서 위기를 과장하고 위기를 성장의 또 다른 기회라고 말할 뿐이죠.
반대로 위기로 인해 상처받거나 실패한 사람들은 아무 말도 없구요.
우리는 실패를 통해 진짜를 배워야 하는데 실패한 이들은 아무 말도 없고,
운이 좋아 성공한 사람들의 과장된 거짓 경험을 많이 듣게 되죠.
그러니까 실패를 통해 성장하기가 힘든 거구요.
게다가 누구나 지금 당장의 위기는 확실한 위기라고 느끼죠.
제가 생각하는 위기는 당장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하고 기회는 그 다음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아무리 궁하고 간절해도 위기 속에서 기회가 보이지 않더라구요.
마음은 위기 속에서 기회를 간절하게 찾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당장은 위기 자체를 벗어나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그 다음 기회는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무조건 최악은 벗어나야 하니까요.
그래야 숨을 돌리고 다른 기회를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죠.
어쨌든 저는 ‘위기는 기회’가 아니라 우선 위기를 확실히 벗어난 다음 기회를 모색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순신 장군님은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면서 위기에서 기회를 찾으셨지만,
제가 느낀 위기와 기회는 동시에 찾을 수 있거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순서가 있었고,
“위기는 기회!”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말처럼,
자신의 좋은 결과를 가지고 정치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위기를 기회로 만든 사람보다 위기가 더 큰 위기가 되어서 실패한 사람들이 훨씬 많으니까요.
지금까지 ‘걱정과 불안에 대해 오해하기 쉽지만 듣기 좋은 3가지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를 해 봤습니다.
이제부터는 “걱정과 불안의 90%는 쓸 때 없는 걱정이며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나,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위기는 기회다!”라는 오해하기 쉽고 진심이 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주변에 걱정과 불안, 두려움이 많은 친구나 진짜로 힘들어 보이는 지인이 있다면,
여러분들은 그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세요?
“지금 힘들게 느끼는 감정은 자연스러운 거야. 넌 지금까지 정말 잘해왔으니까 너 자신을 한번 믿어봐. 나도 너와 똑같고 우린 더 좋아질꺼야. 그러니까 천천히 하나씩 같이 해보자!”라는 공감과 위로의 말이 아닐까요?
저는 지금 이런 말들이 너무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