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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숲 Apr 17. 2023

단편소설/ 두 겹의 노래(9)

<2023 아르코 문학창작 발표 선정작-박숲>


    경찰서는 실버타운에서 멀지 않았다. 복지사 팀장이 일러 준 대로 실버타운 근처 교통사고 관할 담당자를 찾았다. 내가 맡은 환자가 사라졌음을 강조하며 꼭 확인해 보고 싶다고 담당자를 설득했다. 복지사 팀장과 전화를 연결하여 신원을 확인시킨 뒤, CCTV를 꼭 확인하고 싶다고 부탁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무연고자 사고사의 CCTV를 확인할 수 있다. CCTV 속 노인은 뭔가를 찾고 있는지, 목적 없이 헤매는 것인지, 계속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서성거렸다. 노인의 몸짓은 날개를 다친 새처럼 불안해 보였다. 마치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나는 화면 속 노인이 CCTV 쪽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심장이 툭 잘린 것 같았다. 

    CCTV 속 노인은 현실과 동떨어진 자신만의 세계를 떠돌고 있었다. 쇠락한 기억을 더듬듯 먼 곳을 향한 몸짓. 나는 입술을 깨물며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색이 사라진 세계, 소리와 감각과 표정이 사라진 다른 차원의 세계. 그녀가 찾고 있는 건 무엇이었을까. 인도를 서성이던 노인이 갑자기 4차선 도로 위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 앞쪽에서 트럭이 맹렬한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비명을 질렀다. 무섭게 달려드는 트럭을 마주한 채 노인은 아득한 세계의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현듯 나는 그녀의 표정에 사로잡혔다. 그녀는 내 할머니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두려움이 사라진 뒤의 무연한 표정과 보일 듯 말 듯 희박한 미소가 그녀의 입가를 스쳤다. 마치 투명하게 변한 산하엽, 아니 산카요우 꽃잎처럼, 세상에서 가장 쓸쓸하고 슬픈 미소였다. 

    경찰서에서 나와 차에 타자마자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나는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왜 여기까지 온 걸까. 그녀의 마지막을 확인한다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노인의 신원은 확인이 되지 않았고, 일주일 넘게 냉동고에 보관된 시신은 무연고 장례 절차를 밟게 될 거라고 했다. 내담자들의 상처를 다독여 응어리진 아픔을 희석해 주는 나의 역할은 기억이 사라진 노인들에겐 별 효과가 없었다. 그들과 마주하면 오히려 깊은 무력감에 빠질 때가 많았다. 어쩌면 나는 버림받은 자들의 고통을 언제까지나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할머니를 버리지 않았다고 스스로에게 항변하고 싶은 것이다. 

    언젠가 유리코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세상 모든 존재는 다 사라지기 마련이지. 진짜 슬픈 건 말이야, 내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일이지. 나는 그녀가 정신을 잃던 날 그녀를 지켜 주겠다던 약속을 왜 했는지, 결코 지킬 수 없는 약속이란 걸 알면서 왜 그런 말을 쉽게 내뱉었는지. 그녀와의 약속이 가시처럼 온 신경을 날카롭게 찔러 댔다. 유리코는 자신이 산카요우 꽃을 닮았다고 말했다. 산하엽이면서 산카요우처럼 두 개의 이름을 가진, 김미자이고 유리코였던 그녀. 노인이 어떤 꽃에 대해 자신을 닮았다고 말하는 건 오만이었다. 노인이 어찌 꽃을 닮을 수 있을까. 그런데도 이젠 유리코와 내 할머니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두 개의 이름을 가진 꽃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운전대에 머리를 묻고 겨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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