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잃은 날
고기만 먹는 사람과 채소만 먹는 사람
비건이 된 지 한 달 차에 친구를 잃었다.
사람을 쉽게 '친구'라고 부르지 않는 내가 친구라고 부르던 사람이었다.
나름대로 믿고, 의지하고, 여행도 같이 가던 사이였다.
그 사람은 채소를 입에 대지도 못했다. 오이는 이상한 향이 나서, 상추는 씹으면 이에 끼여서,
가지는 물컹거리는 느낌이 싫어서... 그 밖에 다른 채소들에도 저마다 싫은 이유를 붙여가며 피하곤 했다.
그 사람이 좋아하던 떡볶이에서 정성스럽게 양배추를 골라내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처음 내가 비건이 되어야겠다고 말했을 때, 그 사람은 진지하게 나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고 했다.
누구보다 진지하지 않았던 사람이었기에, '진지하다'는 그 사람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만큼은 정말로 진지했나 보다.
어느 순간부터 매일 주고받던 메시지가 온통 고기 사진으로 채워졌다.
'나 오늘 도가니탕 먹었어.'
'나 오늘 엄마가 갈비찜 해주셨어.'
그 사람이 내게 보내는 카톡은 항상 '오늘 먹은 고기 + 맛깔나게 찍은 사진'이었다.
처음에는 이상하지 않았다.
나는 채소만 먹는다. 그 사람은 고기만 먹는다.
우리는 '친구'지만 먹는 게 다를 수 있다.
그 사람이 고기만 먹는 것처럼 나도 채소만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둘 다 이상한 사람은 아니다.
친구끼리 일상을 공유하는 것은 당연하고, 일상의 큰 부분이 먹는 것이며, 그 사람은 고기만 먹는다.
그러니까 내게 고기 사진을 보낼 수도 있다.
그래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람은 채소만 먹는 내가 이상했나 보다. 어느 날 열 장이 넘는 치킨 사진을 보냈다.
종류도 가지각색이었다, 마치 심혈을 기울여 고른 것처럼.
그리고는 내게 물었다, '너 정말... 치킨도 안 먹고 싶어???'
그 날의 메시지는 분명히 이상했다.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몰려왔다. 그 사람이 지금까지 보내온 고기 사진들을 쭉 살펴봤다.
그 사람은 일상을 공유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 사진들을 보고도 내가 '정말' 고기를 먹고 싶지 않은 것인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가 아니라, 고기를 안 먹는다는 사실 뿐이었다.
나는 치킨이 먹고 싶지 않고, 치킨 사진도 보고 싶지 않다는 짧은 한마디를 보냈고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메시지가 되었다. 그렇게 허무하게 '친구'를 잃었다.
쓰라렸다. 마치 그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골라내던 떡볶이 속의 양배추가 된 기분이었다.
감정의 파도가 지나간 지금은 아무런 생각이 없다. 우리는 다름을 극복하지 못했고, 그것만으로도 친구 관계가 끝날 이유는 충분했다. 고기만 먹는 사람과 채소만 먹는 사람은 정말 친구가 될 수 없었던 것일까?
비건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세상과 나 사이에 커다란 벽이 쳐진 느낌이었다.
친구를 잃은 날, 그 벽은 유난히도 크고 넘을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정상과 비정상, 까탈스러운 사람과 아닌 사람, 예민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그리고 그 경계 어딘가에 어정쩡하게 서있던 나는 세상으로부터 영영 이해받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내 옆에 함께 서있음을 알고 있다.
추운 겨울에 오리털 파카 대신 비건 패딩을 선택하는 친구들, 나를 보고 한 번쯤은 '비건으로 살기' 도전을
해봤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지금 쓰는 크림이 다 떨어지면 비건 화장품을 사야겠다며 다짐하는 친구들...
모두의 마음이 크게 느껴진다. 친구 한 명은 잃었지만, 희망은 잃지 말아야지.
언젠가는 고기만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이해하는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