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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협아 Feb 05. 2020

잘 지냈어요? 아임파인땡큐 앤유?

우리가 쓰지 않는 한국말, 외국인도 알아야 할까?

< 한국어를 가르칠 때 “잘 지냈어요?”를 가르쳐야 할까?>



필자는 영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영국의 사설 어학원에서 유럽에서 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영국인 (영어 구사자)을 비롯한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경험이 있다. 회화 실력 발전의 중요성을 가장 우선으로 하는 의사소통 중심의 수업 분위기에서 진행된 각각의 수업은 언어 교육과 학습이라는 의미 외에도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 온 수업 구성원들과 나눈 의사소통과 인간적인 교감을 통해서도 언어 학습에 도움이 될 만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유익한 기회였다.

수업 과정을 비롯 학생들과 함께 한 시간을 통해 외국어를 배우는 일에 있어 교실 안에서 이루어지는 수업뿐 아니라 학생들의 특성에 따라 그 방법과 방향은 얼마든지 다양하고 포용력 있게 접근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두서없지만 이제부터 펼쳐 보려고 한다.




우리가 영어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우는 표현을 꼽자면 단연 “Hello!” 와 대국민 인사 “하우아유? 아임 파인 땡큐 앤유?” 정도를 들 수 있겠다.

영국에서 와서 학생의 신분으로 영어 수업에 들어가거나 다른 외국어를 배울 때 교실에 들어가면 그곳에서 만나는 같은 반 친구들과 늘 인사를 나눴다. 영어로 하기도 했고, 좀 욕심이 생기면 우리가 배우는 언어로 How are you? 를 연습해 보기도 했다. 다들 초급반이라 비록 야심 찬 그 Wie geht’s? (비게츠?) 나 Come stai? (꼬메 스따이?) 이후로 그 언어로 대화를 이어나가기는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배운 것을 교실에서 직접 써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는 학습자의 입장에서도 교실에서 친분을 쌓아가는 학생들 간의 관계의 돈독함을 고려해서도 이런 인사와 스몰토크는 아주 기특한 기폭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이 짧은 두 세 단어를 상대방에게 던지고 그 대답을 받아내면서 우리는 아주 잠시나마 그 언어를 쓰는 아주 황홀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다음번에는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겠다는 다짐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영어든 독일어든 이탈리아어든 욕심 내어 다니던 그 수업, 그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같은 반 사람들과 혹은 선생님과 나눈 이 작은 인사는 나에게는 이 외국어 공부를 더 유쾌하게 만들어 주는 놀이나 다름없었다.

반대로 내가 선생님의 입장이 되어 수업을 진행할 때에도 예외는 없어 보였다. 영국의 어느 교실에서 맞이했던 나의 학생들은 모두 유럽에서 온 친구들이었고, 내 기억에 국적은 다양했지만 모두 영어 같이 ‘하우아유? 아임 파인 때유 앤쥬’ 같은 안부 인사가 이미 일상이었다. 그 덕에 매일 아침 교실에 들어오는 이 친구들에게 ‘헤이- 조르지오! 굿모닝! 하우아유?’ ‘굿모닝 민주! 아임 파인 땡큐 앤쥬?’ ‘아임 굿 땡큐!’ 같은 인사를 나누는 건 그다지 큰일이 아니었다. 만날 때마다 이렇게 안부 인사를 묻는 인사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문화 속에서 나고 자란 나도 몇 년 간의 해외 생활과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일상 대화를 통해 이런 인사법에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문제는 영어 수업이 끝난 후 한국어 수업을 맡게 되었을 때 일어난다. 외국어를 배우는 입장에서 그 나라 말로 인사 한 번 나눠보는 것이 절대 무시 못할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막연히 나도 학생들과 인사를 나눠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막상 실전에 맞닥뜨렸을 때 생각지도 못한 난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How are you?”

“I’m fine, thanks. And you?”

“I’m fine. Thank you.”

잘 지냈어요?

네, 잘 지냈어요. 고마워요. 선생님은요?

저도 잘 지냈어요. 고마워요.

간단하게 한국어로 바꾸면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찾아온 나의 학생들에게 익숙한 이 인사는 이렇게 쓰일 수 있겠다. 그런데 나는? 한국인은? 평소에 저런 인사를 하나?

할 리가 없다.

안 하잖아.

평소에 만난 외국 친구들과 한국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기면 대수롭지 않게 설명했다. 한국에는 너희처럼 매일 안부 체크하는 인사 문화는 없다고. 네 친구를 지금 눈 앞에서 봤을 때 우리는 이미 그들이 안녕하고 잘 지냈다는 걸 확인한 셈으로 치기 때문에 우리는 만날 때마다 하우아유 갍은 인사는 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설명했더랬다. 내가 생각해도 그럴듯한 이유였다.

하지만 지금은?

선생님이다. 내 수업이고 내 교실이다.

학생들을 위해 그들과 뭔가를 해야 하고, 무엇을 하든 혹은 무엇을 하지 않든 거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무조건 ‘학생들을 위해서’ 여야 한다.

생각이 여기까지 오니 딜레마가 생겼다. 머릿속에서 질문이 계속 맴돌았다.

- 한국인들은 ‘잘 지냈어요?’라는 인사를 하지 않으니 학생들과 만나면 안녕하세요 하고 각자 한 마디 씩만 나눈 뒤 인사의 과정이 끝나버린다.

- 여느 유럽어 교과서와 달리 한국어의 첫 수업에 안부 인사가 다뤄지거나 비중이 있는 편이 아니다. (가르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생각하면 간단해 보인다. 여기서 더 고민할 게 뭐 있담?

하지만, 학생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안부 인사를 매일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한국어로 자기네들의 how are you? 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하고 쓰고 싶어 한다면?

- 한국인들은 잘 지냈어요? 인사를 평소에 잘하지 않으니 표현을 알려만 주고 학생들과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진짜 한국인들처럼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

- 어떤 형태로는 안부 인사를 묻는 것이 학생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니 한국어 표현을 알려주고 매일 사용한다? 실제 상황에서 잘 쓰지 않는 것이라도 한국어를 한 번이라도 더 써보게 함으로써 회화 연습은 될 테니깐?




이쯤 되니 반대의 경우도 생각이 들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예를 들자면 영어를 배우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초급 레벨에서 늘 배우는 how old are you?라는 나이를 묻는 표현은 배워 두기는 하지만 실생활에 상대방과 대화하며 사용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것처럼? 흔히 알려진 것처럼 서양에서는 나이를 묻는 행동 자체가 굳이 필요한 상황 아니고서는 굉장히 무례한 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영국에서 지낸 2년 반의 시간 동안 나이가 몇이냐는 질문을 들은 적은 꽤 친해진 같은 집의 친구들을 제외하면 정말 단 한 번도 없다. 반대로 나도 상대방에게 물은 적도 없다. 매일 보는 대학교 친구이건, 수업 준비로 어학원의 동료들과도 온갖 얘기는 나눴고 펍에서 맥주 한잔과 함께 일과 관련된 속내도 많이 나눴지만 아직 정확한 나이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영어를 배우면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이나 다름없는 [How old are you?]는 이렇게 쓰일 일이 없는 문장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독일어나 이탈리아어 같은 다른 외국어도 마찬가지다. 교과서 앞부분에서 숫자를 배우는 단원은 있지만 거기에 나이를 묻고 답하는 질문은 아예 없거나 비중이 현저하게 적은 경우가 많다.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국에서는 이런 안부 인사는 잘 쓰지 않으니 알고만 있으세요 정도로 마무리하면 되려나? 하지만 진짜 질문은 여기서부터다. 영어를 배우면서 늘 잊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영어는 내가 영국인 혹은 미국인들과 사용하기 위해 배우는 언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더 정확히 정의하자면, 나와 말이 통하지 않는, 즉, 모국어가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하기 위해 함께 사용하는 공공재 같은 존재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국인과 미국인도 물론 그 범주 안에 포함된다.

영어라는 언어의 소유권에 대한 논쟁과 연구는 영어가 세계 공용어의 자리를 잡은 이후로 전 세계에서 몇십 년에 걸쳐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기에 그 부분의 자세한 왈가왈부는 다루지 않겠다. 다만,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할 사실은 어떤 외국어를 배울 때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영어가 가장 무난한 예가 될 수 있겠다.) 그 외국어를 사용하는 본국의 사람들과의 의사소통만 상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프랑스 사람, 이탈리아 사람, 러시아 사람, 이집트 사람, 말레이시아 사람, 하물며 바로 옆 나라인 중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과도 공유 코드로 영어가 사용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영어권 출신의 사람과 대화를 나눌 일보다 비영어권 출신의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나눌 일이 확률적으로 더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물론 그것이 본인의 영어 사용처에 대한 퀄리티의 판가름이 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어는? 물론 영어에 비하면 아직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요 몇 년간 외국에서 한국어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국내의 언론 보도만으로 이해하기에는 부족할 정도로 그 폭발력이 어마어마하다. 한국의 연예인이 좋아서 한국의 음식과 드라마가 좋아서 아니면 한국의 역사, 심지어 한글이라는 글자 자체에 대한 애정만으로 퇴근 후 피곤한 저녁 시간에 혹은 황금 같은 주말 시간을 투자해서 수업에 와서 몇 시간을 앉아있다 가는 여러 나라의 학생들을 목격한 이후로 한국어에 대한 나의 시각도 꽤 변한 것 같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런던이라는 도시의 특성상 이 작은 교실에도 다양한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우겠다는 같은 목적 하나를 중심으로 모여 앉아 있었다. 영국 학생은 물론 온 유럽의 사람들, 그리고 중동, 동남아, 같은 아시아권 학생들도 다양하게 많았다. 각각의 학생들이 자신만의 특색과 강점, 열정을 가지고 수업에 임했는데 내가 눈여겨보게 된 건 내가 가르쳤던 네 개의 레벨 중 중상급반에서의 학생들의 대화였다.



알제리, 루마니아, 영국, 프랑스, 노르웨이에서 온 학생들로 구성된 프리토킹 반이었다. 학생들마다 개개인의 차는 조금 보였지만 수업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웬만한 대화가 자기들끼리 다 되는 학생들이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수업 시간이 되고 내가 교실에서 수업 준비를 하는 동안 학생들이 하나 둘 도착했다. 그러다 문득 특이하다 싶었던 것이 영국과 프랑스 출신의 학생들이 서로를 보자마자



“안나(가명) 씨, 안녕하세요? 잘 지냈어요?”



“마리 (가명) 씨. 고마워요. 저는 잘 지냈어요. 안나 씨는요?”



“저도 잘 지냈어요. 고마워요.”



이렇게 안부 인사를 나눈 뒤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서로 대화를 이어갔다.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왜 바보같이 한국어가 한국인들끼리 혹은 외국인과 한국인 사이에서만 쓰이는 언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왜 한국의 문화가 늘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만 생각하고 고민을 했던 걸까? 지금은 작은 교실에 불과하지만, 내가 직접 두 눈으로 목격했듯이 한국어도 비원어민들 사이에서 얼마든지 쓰일 수 있는 것인데! 영국인과 미국인이 지난 주말에 뭐했는지 한국어로 서로 묻고 답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후기를 스페인 친구와 말레이시아 친구가 도란도란 나누기도 한다. 그 중심에 한국어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거다. 즉, 한국어가 한국인들만의 언어라는 공식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국어를 배울 때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거나 그것을 몸소 체험하는 것이 외국어 습득에 상상 이상의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배우는 학생과 그들의 특성을 파악하는 일도 수업 진행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 물론 아직 이 글을 쓰게 된 시작이었던 ‘한국어 수업의 학생들에게 잘 지냈냐는 안부 인사를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아직 모른다. 그 답을 찾을 수 있을지 자신도 없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과연 이게 답이 있는 질문인지에 대한 자신도 없다. 교실에서 전달되고 학습되고 있는 한국어라는 단어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답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색깔을 이루고 있는 도시 중 하나인 런던에서 모국어인 한국어를 가르쳤던 일은 커리어 측면에서도 혹은 개인적인 시야를 넓히는 일에서도 아주 유익한 기회였다. 늘 외국어나 언어라는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배우고, 더 알고 싶어 했지만 이렇게 나의 모국어를 다루면서 지금까지 내가 겪어왔던 외국어 공부에 대한 기억을 다시 상기시킬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대학 강의실이나 도서관에서 보낸 시간 이상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언어라는 이 친구. 우리네 사람들 사는 세상에서 더없이 소중하면서도 신기한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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