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초년생의 첫 퇴사 A to Z #3
앞선 글에서, 나는 더 이상 회사를 신뢰할 수 없었고, 퇴사를 결심해야만 했다고 작성했다.
사실은 CEO를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이다. 퇴사 당시의 CEO가 좋은 리더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좋은 리더는 누구일까?
내가 아직 이러한 주제를 논하기에는 내 짬이 아직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 시간내에 세 명의 리더를 겪으면서, 얕게나마 나에게도 '내가 생각하는 좋은 리더'의 상이 생겼다. 물론 사람마다 각자 원하는 좋은 리더의 조건은 모두 다를 것이다. 나에게도 [팀원을 도구가 아닌 사람으로 보는가?] [일방향적인 명령이 아닌 양방향적인 상의를 하는가?] 등 다양한 조건이 있다. 하지만 단순화 하자면, 다음의 세 가지의 조건을 충족하는 리더가 정말 좋은 리더라고 생각한다.
1. 신뢰 : 동료들을 신뢰할 수 있는 리더인가? 또한, 동료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가?
2. 비전제시 : 수치적, 정성적으로 팀원들에게 동기부여 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가?
3. 업무능력 : 리더로서, 때로는 팀의 일원으로서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가?
위의 세 가지 조건의 중요도 순은 쓰여진 순서와 같다.
신뢰 >>>>> 업무능력 > 비전제시
1) 신뢰 : 신뢰는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리더와 팔로워/팀원 사이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간혹,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경우, 본인도 피곤하고 상대도 피곤하기 마련이다. [신뢰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신뢰비용]이란, 서로 신뢰하지 못해 생기는 감시비용을 비롯한 모든 비용을 의미한다. 특히 그 어느 조직보다 효율적이어야 하는 스타트업에서 [신뢰비용]이라는 불합리적이고 쓸모없는 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최악의 상황을 만든다.
한 명 한 명이 일당백의 일을 해야하는데, 리더가 팀원을 믿지 못하게 되면 그 리더는 감시를 하는데에만 시간을 할애하게 된다. 리더는 팀원을 믿지만, 팀원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것도 큰 문제다. 이 경우, 리더가 무슨 말을 하던 팀원들은 '아 또 저러네..'라는 부정적인 생각만 하게 되버린다! (사실 내가 이랬던 것 같다.)
신뢰는 물론 인간적인 교류에서도 쌓이겠지만, 적절한 비전제시, 합리적 업무능력이 있을 때 더욱 견고하게 쌓이게 된다. 이때문에 신뢰는 리더와 팔로워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큰 부분을 차지한다.
2) 비전제시 : 비전제시는 동기부여와 직결된다. 내가 이 조직에서 일을 하며 개인적으로, 혹은 커리어적으로 어떤 것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 그려진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일을 하게 된다. 스타트업에서 동기부여를 위한 비전제시가 안 되는 리더에는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다.
(a) 자신이 그리는 비전을 구체적으로 공유하지 않는 리더
(b) 성장보다는 현상유지를 중요시하는 리더
(c) 실현 불가능한 장미빛 비전만을 공유하며 억지 으쌰으쌰를 하는 리더
좀 더 부연설명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a) 불투명형
: 일단 투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공유해주지 않는다. 구체적인 비전, 미래계획을 전달받지 못하면 팀원은 당연히 '아 회사에서 나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인간이라면, 무릇 처우에 맞는 행동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럼 나도 그정도로만 일할게' 모드가 ON 되어버린다.
(b) 현상유지형
: 어떤 조직에서는 이런 리더가 좋은 리더일 수 있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생명은 성장이다. 성장이 동반하지 않는 스타트업은 정말 말그대로 '노잼'이다. 그런데 리더가 현실에 안주하고, 성장보다 현상유지, 투자보다 비용절감에만 신경쓴다면? 팀원역시 그냥 지금의 위치와, 역할에 머물러있게된다. 스타트업에 근무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성장에 목마른 사람이라는 반증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현상유지형의 리더는 스타트업 팀원들이 원하는 적절한 비전 제시와, 동기부여를 해 줄 수가 없다.
(c) 으쌰으쌰형
: 으쌰으쌰 리더는 스타트업에 갓 들어온 따끈따끈한 주니어에게는 롤모델처럼 비춰보일 수 있다. 하지만 경력자들이라면? 단번에 헛소리라는 걸 알아채고 누구보다 빨리 도망칠 것이다. 현실적이지 않은 비전을 내세우는 대표들의 공통점이라면, '이 비전이 이뤄지면 우리 진짜 다 대박이야! 그러니까 그때까지 당연히 너도 야근하고~ 주말출근하고~ 기여해야지? 우리는 한 팀이니까!!^^' 라는 속내가 숨어있다는 점이다. 우웩! (내가 심하게 겪어봤기 때문에 조금 더 감정적으로 묘사되는 것 같다.)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이런 으쌰으쌰형은 초반에는 좋을 수 있겠으나, 궁극적으로는 팀원을 번아웃되게 만든다.
반면, 동기부여를 일으키는 비전제시를 하는 리더란 [현실적으로 회사와 구성원들이 성장할만한 비전을 치열하게 고민해서 팀원들이 100% 동의하게 만드는 리더] 라고 할 수 있다.
3) 업무능력 : 리더에게 필요한 업무능력은 참 많다. 특히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의 경우, 대표는 서류준비, 마케팅, CS, 자원조달 등 모든 일을 해야하기도 한다. 리더가 업무능력이 좋아야하는 이유는, 본인이 일을 잘 해야 일을 '잘'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CEO가 얼토당토 않은 업무를 요구할 때가 있다. 실무자 입장에서는 번거롭고, 비효율적이며, 쓸모없는 일을 말이다. 한 두번이면 '실무 담당자가 아니니 내가 실무자 입장에서 잘 설명드려야겠다!' 하겠지만, 이게 반복되면 '도대체 일을 해보기는 한거야? 왜이렇게해?'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이게 궁극적으로는 대표에 대한 신뢰를 깎아먹는다.)
여기에 고집까지 세면 더 최악이다. CEO가 생각하는 '굿 아이디어'가 안되는 이유를 백 번 설명해줘도 결국에는 "그래도 되긴 된다는거죠?? 그렇게 한 번만 해봅시다."라는 마법의 문장이 나온다면...! ^^ 이 똥고집은 결국 팀원을 지치게 만들고 결국에는 아이디어를 내기는 커녕 정말 별로인 CEO의 의견에도 '아~네! ㅎ' 하고 순응만 하게 만든다. 이렇게 영혼없이 일을 하는 구성원이 많아지면, 업무가 산으로 갈 수 밖에 없다. 당연히 성공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아래는 내가 생각하는 조건들을 나름, 도식화 해 본 것이다.
신뢰, 비전제시, 업무능력 중 하나만 빠져도 좋은 리더가 되기는 쉽지 않다.
이 중 내 기억에 인상깊게 남은 리더의 유형은 '마이크로 매니저' 유형이다.
사실 마이크로 매니저도 사바사, 케바케이긴 하다.
위의 각 유형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자세히, 다음 글에서 다뤄보고자 한다.
앞으로 계속 스타트업에 일 할 계획이니, '내가 생각하는 좋은 리더'의 기준은 앞으로도 계속 바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신뢰, 비전제시, 업무능력 이 세 가지가 리더쉽의 기초이자 필수요소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도 늘 이 세 가지 기준을 생각하며 성장해나가고자한다. (늘 마음만은..^^..성장러..)
늘 '이정도면 살만하지'라는 현실과의 타협, '아냐!!! 뭔가 해야해!! 지금의 난 쓰레기야!!'하는 채찍의 반복 속에 살고있다. 내가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리더 or 동료가 되기를 바라며, 천천히라도 나아가고싶다.
"호야, 호야같은 사람 없나요?"
"쉽지않죠"
문득 내가 신뢰했던 유일한 대표와 경의선숲길 산책하면서 한 면담이 떠올랐다.
나 이후로 약 2년만에 팀원이 들어와 동기부여와 주인의식(?)을 만들어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고민하던..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