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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썸준 Sep 12. 2020

일본 가고시마 한 달 살기 : Day11

공정한 사회 제도와 현명한 리더십이 국가 경쟁력의 시작이다

2019.3.29 (금)


아침에 눈을 뜨니 일기예보대로 밖에 비가 보슬보슬 내렸지만, 강도가 아주 심하지 않았고 정오부터 갠다고 해서 계획대로 미야마(美山)-이치끼쿠시키노(いちき串木野)' 서쪽 정벌 라이딩'에 나서기로 하였다. 


사실 이번 '서쪽 정벌 라이딩'은 사전에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미야마는 임진왜란때 끌려온 조선 도공 후예가 운영하는 심수관 가마(沈壽官窯)가 있는 곳으로 알고 있어 가고시마에 오기 전부터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현지에서 구매한 d travel 가고시마 가이드북을 통해 일본 근대화에 기여한 사쓰마 영국 유학생 관련 박물관(薩摩藩英国留学生記念館)이 미야마에서 20km 정도 떨어진 이치끼쿠시키노(하시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렇다면 두 곳을 하루 일정으로 엮어 같이 둘러보면 한일 양국의 대비되는 국운을 느끼면서 여러모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 이번 라이딩을 계획하게 되었다. 


가고시마에서 사쓰마 영국유학생 박물관까지는 약 47km로, 갈 때만 라이딩을 하고 복귀 시에는 박물관에서 가까운 쿠시키노(串木野)라는 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고시마로 올 예정이다. 갔던 길을 다시 돌아와야하는 루트인 것도 있고, 전체 이동 거리를 고려했을 때 복귀 시에는 날이 어두울 거 같아 리스크를 안고 달리는 것 보다 자전거를 기차에 실고 이동하는 '기차점프'가 나을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라이딩 채비를 해서 호텔 밖으로 나왔다. 오늘 첫 행선지인 미야마까지는 206번 도로를 탈 예정인데 시가지를 벗어나자마자 구간 거리는 짧아도 지난 번 지란 라이딩때 넘었던 산과 유사한 높이의 산을 바로 넘어야했다. 초반부터 체력적으로 부담이 있는 코스라 처음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닥치면 어떻게든 올라가지겠지라며 에너지젤을 쭉 짜먹고 화이팅을 외쳐본 후 라이딩을 시작하였다. 


부슬비가 내리고 있긴 했으나, 하늘이 맑아 오는 것을 보니 라이딩에 큰 영향을 줄 거 같지는 않았다. 미야마까지 가는 길은 여럿이라 다른 라이딩때보다 구글맵에 좀 더 의지할 수 밖에 없었는데 초반부터 알려주는 길이 예사롭지 않았다. 가고시마 중앙역 옆을 지나 쭉 가다가 왼쪽으로 틀라고 하더니, 갑자기 마을 골목길이 나오고, 급기야 걸어서 오르기도 힘든 계단까지 나오더니, 시작부터가 바로 업힐이었다. 

오늘 시작부터가 순탄치 않은데라는 생각이 맴돌았지만, 다행히 자동차 도로 옆에 별개의 넓은 보행자 도로가 있어 일단은 차량 신경쓰지 않고 천천히 여유있게 업힐을 오를 수 있었고, 오르는 동안 언덕에서 보이는 안개 자욱한 사쿠라지마나 가고시마 시내 전경을 응원군 삼아 첫 큰 고개를 잘 넘을 수 있었다. 

하지만 큰 고개를 넘으면 평지가 나올 거라는 예상과 달리 언덕길이 계속되어 체력이 다시 다운되었고, 주변이 공장 지대라 그런지 도로에 트럭들도 많아 이동 할 때 온 신경을 집중했더니, 출발한 지 10km 정도 밖에 안됐는데 벌써부터 피로감이 밀려오기 시작하였다. 이럴 때 같이 라이딩하는 파트너가 있었더라면 서로 의지하며 끌어 줄 수 있으련만. 솔로 라이더가 견뎌야하는 고독감이 오늘따라 왠지 더 크게 느껴졌다.


페이스 조절을 하며 가고 있는데,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거 처럼 사거리 건너에 로손 편의점이 보였다. 라이딩하다가 보이는 편의점은 왠지 시내에서 보이는 편의점보다 더 정이 갔는데, 잠깐 쉬면서 보급도 할 겸 들르기로 하였다.

에너지바와 젤, 물 등을 구매한 후 밖에서 보급을 하면서 미야마까지 거리 및 이동 경로를 확인해보았다. 남은 거리는 12km, 지금까지 온 만큼만 더 가면 미야마였다.  


다시 라이딩을 재개하였다. 초반 언덕과는 달리 길도 완만한 편이라 충전된 에너지를 바탕으로 페이스를 다시 살짝 끌어올려 보았다. 라이딩 중에 주변 경관이 내 옆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갈 수록, 특히 그것이 특색이 없는 것일 수록, 생각에 잘 잠기는 경향이 없지 않은데, 미야마에 점점 다가오니 가고시마 여행을 준비하면서 미야마 심수관에 대해 찾아봤던 것들과 그것과 관련된 생각들이 머리 속을 지배하였다.  

가고시마에 대한 정보 탐색 중에 '사쓰마야끼'라고 하는 것이 가고시마 명물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사쓰마야끼가 뭐길래 명물이라고 하는지 궁금하여 관련 정보를 계속 찾아보았는데, 사쓰마야끼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온 조선 도공 중 하나인 심당길이 이 곳으로 와 사쓰마 번주의 명을 받아 가마를 세우고 백토를 발굴하여 오늘날의 사쓰마야끼를 만들었고, 그들의 후원 하에 계속 기술을 발전시켜 만든 도자기 제품들이 서양에서 '자포니즘'이라는 열광을 불러일으키며 당시 일본의 대표 수출품이 되었고, 그 수출로 쌓은 국부가 결국 메이지 유신을 가능케 한 큰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분노와 허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역사에서 가정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임진왜란을 당했더라도 우리가 도공을 빼앗기지 않았더라면 이후 동아시아 정세는 어떻게 되었을까, 도공을 빼앗기지 않았다고 해서 서양에 자포니즘과 같은 '꼬레아즘'이 생겨 조선의 국가 위상도 높아졌을까, 오히려 조선 도공 입장에서는 사농공상 프레임 때문에 제대로 된 대접을 못받는 조국보다는 오히려 기술자라고 양반급 대우를 해주는 일본에 정착한 걸 더 좋아했었던 건 아닐까, 결국은 이념보다는 실력 있는 사람이 인정받을 수 있는 공정한 사회 제도와 문화가 자리잡아야 나라가 부강해질 수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조선 시대때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에 크게 나아진 것은 없는 거 같아, 우리가 갈 길이 아직 멀구나라는 것도 온 몸으로 느껴졌다.  


이런 저런 너무 진지한 생각을 하며 7km 정도 달리다보니 어느 덧 히오키(日置) 시 중심부에 진입하였다. 히오키 시내를 가볍게 둘러보고 이쥬인(伊集院) 역 앞 동상에서 기념 사진을 찍은 후 다시 미야마로 향하였다.  

이쥬인 역에서 미야마까지 평탄한 길 일거라는 예상과 달리 막판에 다시 나온 끝없는 업힐에 만만치 않구나 헉헉 대며 오르는데, 누군가가 갑자기 나타나 '조선 도공이 처음 이 곳에 와서 겪은 애환에 비하면 너의 힘듬은 아무것도 아니니 이 곳 미야마에 오려면 그 정도 고생은 감내하라'라고 얘기하는 거 같은 묘한 느낌이 들어, '그래 이런 걸로 죽네 사네 할 수 없지, 좀 더 힘을 내 그들에게 최소한의 예는 표하자'라는 마음으로 좀 더 힘을 내었고, 마침내 언덕을 겨우 넘을 수 있었다. 

언덕을 넘으니 아래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마을, 미야마에 이르게 되었고 길을 따라 조금 더 간 후에 비로소 심수관 가마(沈壽官窯)에 도착하게 되었다. 


멀리서는 이 곳이 심수관 가마라는 것을 한눈에 알기 어려웠지만, 입구에서 보이는 한일 양국 국기와 돌하르방, 그리고 '대한민국 명예 총영사관'이라는 문패를 보고나서야 여기가 심수관 가마가 맞구나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입구에 있는 '대한민국 명예 총영사관'이라는 문패가 개인적으로는 뭔가 좋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너희들의 자랑인 사쓰마야끼의 원류는 사실 조선에서 온 것이다'라는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겠다는 취지는 알겠는데, 어찌보면 사쓰마야끼는 이제 일본 고유의 것인데 이제와서 우리가 있었기 때문에 그 것이 있을 수 있다고 한들 달라지는 게 있을 것이며, 문패를 달기 전에 다시는 이런 역사적 참극이 발생하지 않기 위한 국가적 노력이나 국민적 인식과 공감대는 있었는지, 그런 실질적 노력이나 변화 없이 의미 없는 보여주기식 외교 행정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오른편에는 박물관이 있고, 왼편으로는 장작과 가마 옆으로 계단이 나있길래 윗 쪽을 먼저 둘러보기로 하였다. 계단 옆쪽으로 있는 예전부터 사용되어 온 거 같은 가마들을 보니 당시 도공들의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리는 거 같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좀 더 위로 올라가보니 자기를 만드는 작업 공간이 있는 건물이 나왔고, 창문 너머로 자기를 빚거나 그림을 그려 넣으며 작업에 몰입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아, 저런 걸 장인정신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작업 공간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내려와 박물관에 들어가보았다. 박물관 내에는 역대 심수관 가마에서 만든 자기 작품들 뿐만 아니라 일본과 세계 속에서 심수관 가마의 업적과 위상을 알 수 있는 컨텐츠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어려운 환경임에도 이런 훌륭한 자기를 만들어낸 것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가도, 어찌됐건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아닌 일본이 흥했다는 생각에 화가 나기도 하고, 둘러 보는 내내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교차했었다.

심수관 가마를 떠나기 전에 가마에서 만든 자기를 판매하는 스토어에 들렀다.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자기들을 볼 수 있었는데, 하나같이 고급스럽고 작업자의 혼이 담긴 작품 같이 보였다. 심수관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가격대가 좀 높아 망설여지긴 했지만, 이 곳에 또 언제 와보겠냐며 기념으로 어제 스스무에서 구매한 차(茶) 주전자와 어울리는 차 컵을 구매하기로 하였다. 손으로 만들다보니 똑같이 생긴 제품이 나올 수 없다는 직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맘에 드는 컵 2개를 골라 계산을 하고 나와 다음 행선지로 떠날 채비를 하였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조선의 혼이 묻어있는 심수관 가마를 떠나려고 하니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조선 도공이 납치되지 않았다고 해서 일본 자기가 지금과 같이 발전하지 않았을까? 반대로 조선 도공이 조선에 그대로 있었다고 해서 조선 자기가 엄청난 발전을 했었을까? 시간의 차이지 결과는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까 싶었다. 결국 중요한 건 계층과 상관없이 능력이 있으면 대우해주는 제도와 문화, 그리고 명확한 국가 비전을 제시하고 개인들의 능력들을 한데 모아 이끌고 나갈 수 있는 리더십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픔과 분노의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길 바라며, 사쓰마 영국 유학생 박물관이 있는 이치키쿠시키노로 출발하기로 하였다.


현재 시각은 오후 1시 반, 사쓰마 영국유학생 박물관까지는 약 22km. 살짝 허기가 져 미야마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출발할까 했으나, 박물관이 5시에 문을 닫아 식사를 하고 출발하면 도착해서 박물관을 둘러볼 여유가 없을 수 있을 거 같아, 일단 그 쪽으로 이동 한 후에 상황을 보고 결정하기로 하고, 우선은 주변에 가까운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보급을 하였다.  


보급 후 라이딩을 재개하였다. 미야마에서 이치키쿠시키노까지는 303번 도로를 타고 서쪽 해안쪽으로 이동한 후 270번과 3번 도로를 타고 쭉 올라갔다. 식사를 제대로 못해서 리커버리가 제대로 안된것도 있는 거 같고, 중간중간 언덕길도 생각보다 많고 노면 상태도 그리 좋지 않아 체력적으로 부딪히기는 했지만, 일본 근대화를 위해 극비리에 영국으로 떠난 당시 유학생들을 생각하니, 의지만큼은 그들에게 뒤지면 안될 거 같아 있는 힘을 짜내가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미야마에서 15km 정도 지나 이치키쿠시키노 시가지에 진입하였다. 진입하는 순간 여기에 사람이 살긴 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동네 전체가 황량해 이 곳도 카노야처럼 지방소멸이 왔음을 느낄 수 있었는데, 설치한지 얼마 안되 보이는 거리 곳곳의 '사쓰마 영국 유학생박물관' 홍보 깃발을 보고, 어떡해서든 지역 활성화를 다시 이뤄내겠다는 의지가 느껴져, 우리나라 지방의 미래 모습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해결방안을 동시에 보고 있는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가지를 벗어나 43번 도로를 탄 후, 왼편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동지나해 바다를 바라보며 7km정도 더 달린 끝에 마침내 박물관에 도착하였다.

사쓰마 영국 유학생 박물관은 1865년 근대화의 필요성을 느낀 사쓰마 번주의 명을 받고 비밀리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19명 사쓰마 학생들의 여정과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그들의 첫 여정이 시작된 이 곳 하시마에 세운 박물관으로, 메이지 시대에 서양식의 붉은 벽돌과 일본식 기와 기붕이 섞인 '사쓰마식 양옥'을 이미지화했다고 한다.   

메이지 유신 관련 박물관이라 규모도 크고 주변도 번화할거라는 예상과 달리 조용한 어촌 마을에 위치한 아담한 크기의 건물이었다. 하지만 박물관 내에  유학을 떠나게 된 배경과 유학생들의 여정과 업적을 다룬 전시컨텐츠와 박물관 뒤로 당시 유학생들이 탔던 배가 영국을 향해 출항했을 망망대해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당시 근대화를 위한 일본인들의 도전과 희생 정신을 느끼기 충분하였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때 그 사람들이 있어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고 우리도 그들처럼 국가 발전을 위해 좀 더 분발해야한다라는 메세지를 받기에 충분하였다. 

일본과 달리 우리는 지도층의 국제 정세 파악 및 리더십 역량 부족과 부패한 사회 구조 등으로 근대화에 성공하진 못했지만, 비록 실패 사례라도 당시에 근대화를 위해 노력했던 인물이나 사건들에 대한 관심과 재조명을 통해 우리도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고 내일을 위한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박물관에서 나와 가고시마로 '기차점프'를 하기 위해 쿠시키노역으로 가기 전에, 이치키쿠시키노 중심지에 위치한 파라곤(パラゴン)이라는 카페에 들르기로 하였다. d travel 가고시마 가이드북에 '맛있는 커피와 치즈케이크를 즐길 수 있는 재즈카페'로 소개된 곳인데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쿠시키노역과도 가까운데다가, 결정적으로 박물관 주변에도 먹을만한 게 마땅치 않아 아직까지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해 기차 타기 전에 치즈케이크라도 먹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가고시마 복귀까지 아직 갈 길은 멀었지만, 오늘 라이딩 해야하는 남은 거리가 얼마 안되서 그런지 편한 마음으로 이치키쿠시키노로 향했고, 40여분 정도 달려 카페 파라곤에 도착하였다. 카페 외관은 평범했지만, 오래된 재즈카페로 시간 여행을 온 듯 앤티크하면서도 집에 온 거 같은 편한 느낌의 실내가 인상적이었다.   

바 테이블에 앉아 아이스커피와 치즈케이크를 주문하고 벽면에 장식된 LP판을 보고 있는데 직원분이 뭔가를 물어보셨다. 잘 못 알아들어 머뭇거리니 외국인임을 바로 짐작했는지 '영어 괜찮나요?'라고 하시길래 괜찮다고 하였다. 오늘 방문했던 박물관이나 주변 명소, 명물에 대한 캐쥬얼한 대화를 나누었는데, 영어권 국가에서 있는 일본인과 얘기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영어가 수준급이셨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던가, 가고시마에 온지 10일 동안 아무래도 일본어가 능숙하지 못하다보니 누군가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지 못했는데 이 분과 얘기하다가 보니 나도 모르게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계속 얘기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분도 오랜만에 외국인과 영어로 얘기하는 게 유쾌하셨는지 나에게도 이것저것 물어보셨고, 서로 이런저런 개인적인 얘기를 나누는 와중에 금새 친해지게 되었다.  

대화를 나눴던 '유키'상은 카페 사장님 아들로, 호주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아버지 일을 돕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으며, 한국에도 관심이 많아 여행도 종종하는 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취미가 나와 같이 로드 싸이클을 타는 '라이더'라고 하여, 가고시마도 아닌 이치키쿠시키노에서 이런 생각치도 못한 인연을 만나다니 이런게 여행의 묘미구나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라이더라고 하여 가고시마 라이딩 추천 지역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내 자전거를 보고 싶다고 해서 보여드렸고, 카페를 나오면서 우연을 필연으로 이어가야할 거 같은 느낌에 연락처도 서로 교환하였다. 

출발 전에 저 멀리 이치키쿠시키노 시청에서 사람들이 쭉 서서 박수치고 꽃다발을 전달하길래 뭔가 했더니, 일본은 새학기가 4월부터 시작하는 거처럼 관공서 직원들도 4월부터 로테이션을 돌며 새로운 근무지에서 일을 시작하는데, 오늘이 3월의 마지막 근무날인 29일 금요일이라 업무 종료 후 직원 환송을 하는 것이라고 유키상이 설명해주었다. 현지인이 없었으면 전혀 알 수 없었을 디테일이라, 유키상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한국에 오면 꼭 연락을 달라고 한 후 쿠시키노역으로 향하였다.  


역에 도착해서 가고시마 중앙역행 티켓을 끊고 입구에서 자전거 바퀴 분해 및 패킹 작업을 시작하였다. 개인적으로 실전에서는 처음 해보는 거라 긴장되기도 했고 주변에서 쳐다보는 시선이 부담되기도 했지만, 사전에 연습했던대로 서두르지않고 작업을 완료한 후 자전거를 들고 플랫폼으로 향하였다. 시작이 어렵지 역시 해서 안되는 건 없는 거 같았다. 


가고시마행 기차가 들어왔다. 기차에 타서 자리에 앉으니, 이제 이 기차를 타고 가고시마로 가기만 하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에 긴장이 쓱 풀렸는지 피로감이 밀려왔다. 

미야마-이치키쿠시키노에 이르는 오늘 서쪽 정벌 라이딩. 한일 양국의 대비되는 국운을 느낄 수 있는 역사 현장을 둘러보면서, 사람도 중요하지만 국력을 결정짓는데 더 중요한 요소는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제도와 사람들의 역량을 집결할 수 있는 리더십이 아닐까라는 생각 할 수 있었고, 마지막에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유키'라는 일본인 인연을 만들 수 있어, 의미있고 유익한 하루였던 거 같았다.


쿠시키노역을 출발한 기차는 40여분 후에 가고시마 중앙역에 도착하였다. 갈때는 하루 종일 고생해서 갔는데, 1시간도 안되 다시 가고시마로 돌아오니 기분이 묘했다. 중앙역 건물 안에서 다시 자전거를 조립한 후, 자전거를 타고 호텔이 있는 텐몬칸으로 복귀하였다. 


씻고 나오니 뭔가 뜨끈한 국물로 배를 두둑히 채우고 싶어, 어제도 라멘을 먹었지만 호텔 직원에게 추천을 받아 호텔 주변에 위치한 소금테(小金太)라는 라멘집에 가보았다. 라멘과 교자, 그리고 맥주를 같이 주문하였다. 라멘뿐만 아니라 식도를 타고 벌컥벌컥 내려가는 맥주 맛이 그 어느때보다 끝내줬는데, 오늘 고생에 대한 최고의 보상을 받는 거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다. 마음 같아선 이 기세를 이어 내일도 라이딩을 하고 싶긴 하나, 내 의지에 상관없이 스르르 감기는 눈을 보니 내일은 가고시마 시내에서 체류하면서 리커버리하는 게 나을 듯 싶었다. 내일은 또 어떤 모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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