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시장님

by Sharon


각각의 도시는 그 ‘도시의 아버지’의 성향과 관심사에 따라 계획과 틀, 도시의 전체적인 디자인이 달라진다. 아빠는 책 읽기와 글쓰기가 취미이시며, 클래식 음악을 비롯한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으시다. 또 자연을 지극히 사랑하신다. 이 같은 아빠의 성향과 관심사에 따라 도시는 나날이 성장했다. 높게 뻗은 회색의 아파트와 상가들만 즐비한 베드타운이었던 도시에는 끝없이 나무와 꽃이 심어졌다. 도시에 아주 널찍하게 자리한 한 공원에는 수많은 종류의 어린 나무들이 심어졌고, 도시를 진입하는 8차선 도로의 한쪽 길에는 벚꽃나무가 4km가량 심어졌다. 도시 곳곳에 위치한 공원과 인도, 도로들의 중앙부에 역시 끝없이 나무와 꽃이 옹기종기 심어져 ‘그들만의 도시’가 형성되기도 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시민들의 무한한 관심과 큰 사랑 아래 이 어린 나무들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리고 이제는 울창한 숲을 이루어 시민들의 삶의 어려움과 고단한 인생을 어루만져 주는 듬직한 존재가 되었다. 어엿한 도시의 일원이 된 것이다. 4km 정도 길이로 심어진 벚꽃나무들은 4월이 되면 가히 장관을 이룬다. 도시로 진입하는 모든 사람들을 환영한다는 듯 환상적이고도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도시로 오는 모든 이들을 화사하고 반갑게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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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는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예술 혼이 울려 퍼지며 예술의 도시로 거듭나기도 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음향시설을 갖추었다고 평가받을 정도의 근사한 음악당과 콘서트홀이 두 구區에 설립되었다. 각 음악당의 바로 옆에는 미술관이 세워졌다. 도시에는 예술의 멋과 맛을 즐기고자 하는 예술 애호가들을 많이 불러 모았다. 다른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 또한 많이 방문을 하며 음악회가 열릴 때마다 전석이 매진되었다. 성악의 세계 3대 거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인물들 중 두 명의 인물이 이 음악당에서 공연을 했고,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의 작품들이 미술관에 전시되기도 했을 정도니 시민들의 자부심과 만족도는 나날이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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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내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언제나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유치원에 다닐 적, 선생님께서는 가족들이 여가 시간에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스케치북의 종이 위에서 아빠는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도시에 위치한 동마다 도서관이 설립될 것이라는 아빠의 프로젝트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동 별로 세워진 도서관에는 소설, 역사, 인문, 자기 계발, 에세이, 과학, 예술, 아동 등등의 다양한 책들이 언제나 시민들의 지적, 정서적 함양을 목표로 차례차례 서가에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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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규모의 거대한 컨벤션 센터가 세워지고, 시민들의 발길이 되어주는 00선(지하철 3호선, 신분당선과 같은 그 ‘선’이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아빠가 퇴임을 하시던 2010년을 기준으로 해서 00선은 하루에 약 9만여 명이 이용을 했다. 바쁜 아침 시간과 고단한 퇴근, 하교 시간에 안락하게 집까지 올 수 있도록 00선을 만들어주셔서 정말 고맙다고 아빠에게 꼭 감사 말씀을 전해 달라는 친구들이 많았다.


도시의 한가운데에 있는, 앞서 언급했던 큰 공원에는 음악분수대가 멋들어지게 세워졌다. 이 프로젝트가 가장 많은 시민단체의 언성을 높이게 했었다고 아빠에게 전해 들었다. 하지만 도시의 자랑거리가 될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아빠의 추진력과 결기로 인해 결국 분수대가 세워졌다. 그리고 분수대가 첫 개장하던 날, 이 분수대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과 빛과 불, 그리고 음향이 한데 어우러지는 이 웅장한 모습을 본 시민들은 감탄을 하며 아빠에게 그간 정말 죄송했다고, 정말 감사하다고 연이어 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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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퇴임을 하신 지 1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도시에 심어졌던 작은 나무들은 유년기와 청년기를 거쳐 어엿한 고목이 되기 위해 열심히 햇볕을 쬐고, 때로는 비를 맞고, 시민들의 사랑도 듬뿍 받으며 지금도 더없이 아름답게 성장하고 있다. 주말 저녁시간에 조깅을 하기 위해 공원에 들르면 음악분수의 공연 앞에서 그 분위기에 빠진 여러 시민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공연이 끝난 후 끝 모르게 환호를 지르며 박수를 친다. 컨벤션 센터에는 국제적인 굵직한 행사들이 매일같이 개최가 된다. 새로이 지어진 도로는 타 도시를 교통 체증 없이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같은 풍요로운 도시에서 시민들의 삶은 나날이 깊이를 더해갔다.


‘도시의 아버지’로서 00시를 더없이 훌륭하고, 깨끗하고, 안전하고, 아름답게 성장시키기 위해 아빠는 최선을 다하셨다. 그 결과, 대한민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로 연속해서 선정이 되기도 했다. 어쩌면 이 같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너무나 억울할 정도였다. 아빠는 매일 같이 밤 12시가 넘는 시간에 퇴근을 하시고, 해외 출장을 가야 할 때는 시간이 도저히 허락되질 않는다며 늘 상 추석과 설 연휴, 여름휴가 때 출장을 가셨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빠는 매일 같이 너무 바쁘셨기 때문에 우리 가족의 중요한 이벤트가 있는 날에도 당연히 참석하지 못하셨다.






언젠가 “퇴근하고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면서 회포도 풀고, 때로는 상사 뒷담화도 하고 말이야! 이런 소소한 게 참 하고 싶은데 이를 함께할 직원이 없는 게 아쉽네... 허허”라고 소탈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던 아빠의 모습이 떠오른다. 당연하다. 아빠가 재직했던 회사인 00 시청에는 아빠의 상사가 없으니까 말이다. 시민들과 대치의 상황에 놓이면 언제나 홀로, 오로지 신념 하나를 기틀로 긴 싸움을 해나가야 했기에 아빠에게는 참 힘든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빠가 튼튼히 만들어 놓은 도로를 지날 때, 바람에 살랑이는 푸르른 나무들이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바라볼 때, 아빠가 합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허가한 길거리 가게의 풀빵 할머니가 반갑게 우리 가족을 맞이할 때, 아빠는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고 우수에 머금은 눈으로 이 모두를 맞이하신다.


아빠는 12년 전에 퇴임을 하셨지만 오늘도 나는 언제나 본인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셨던 아빠의 아름다운 흔적들을 도시 곳곳에서 발견한다. 그리고 그때의 추억과 아빠가 고군분투하며 일구어 놓으신 당신의 삶의 흔적들을 안온하게 바라본다. 자연스럽게 입에는 옅은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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