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증의 범인은 내가 아니래

내 감정이 아픈 건 쟤 때문인데

by 라다

결국 이 인생, 이 세상은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지만 남들이 망쳐버린 결과의 영향은 내가 받아서 이 모순적인 삶이 너무 힘들어서 울어버렸다.



내가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망각했을 정도로 나는 그동안 울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내 처지가 너무 가엾다. 내가 아닌 내가 나를 본다면 따뜻한 담요 위에 살포시 눕혀서 부드럽고 따뜻한 우유를 한 모금씩 주며 상처받은 보이지 않는 마음과 혼란스러운 머리를 토닥이며 잠시라도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내가 눈에 실핏줄이 터지도록 공부를 해도


내가 ㅅ발 소리를 들어가면서 직장을 다녀도


내가 여자라서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해도


내가 어리고 만만한 미성년자라 나를 하대해도


내가 동양인이고 영어를 못하는 눈이 찢어진 사람이라도


나는 그동안 참았다. 나는 굳건히 내 삶을 위해 버텨왔다. 그리고 희망을 가졌다. 언젠가 좋은 날이 오겠지.


지금보다 더 나은 날이 올 거라고 믿었다.




말하고 싶어도 참았고 거부하고 싶어도 참았다.

말이 안 되는 손찌검을 당해도 나는 견뎌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 나는 거친 파도를 뛰어넘고

평화로운 모래밭에 앉아서 지나온 파도를 관망하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 될 것이라 믿었는데

나는 다시 파도로 가야 한다.


모래가 떠밀었다. 고통의 물결을 감당하라고.

너무나 날카롭고 시린 파도의 손짓을 이겨내라고.



파도를 넘어 모래밭으로 오면 행복할 줄 알았으나

모래밭에 머물던 조개껍질은 그 언젠가 다시 파도로 돌아간다. 그 조개껍질이 내가 될 줄 몰랐어.




고난과 시련이 닥쳐와도 묵묵히 이겨내고 흔들리지 않고 내 자리를 지켰다. 야속하게도 나에게 돌아온 결과는 처참하고 암흑으로 가득했다. 가진 희망과 믿음을 다 짓밟아버리고 어렵게 쌓은 탑을 무자비하게 쓰러지게 했다.



고르고 고른 흙밭에 햇빛이 잘 드는 자리를 찾아서

이제 막 다시 씨앗을 뿌렸는데 금방 막 물도 주고 영양분이 가득 담긴 흙도 주면서 열매 하나 얻으려고 노력을 해서 이제야 살아난 기분이었는데 갑자기 다 준비해둔 곳에 포클레인이 와서 모든 것을 다 망쳐버렸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어떤 목적으로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나에게 펼쳐진 세상이 앞으로도 이렇고

과거에도 이랬고 현재도 이렇다면

어찌하라는 걸까



잘 자란 열매 하나 갖고 싶은 내 욕심이

과한 걸까 그렇게 어려운걸 내가 바라는 걸까



나는 내가 충분한 삶의 이치를 경험했다고 믿었다.

이보다 더 심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마지막 충격과 말도 안 되는 전개를 받아들이라 해서 그저 덤덤하게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그러나 내가 편견 없이 빨아들인 고통은 그 아무도 손으로 꽉 쥐어 물기를 짜주지 않았다.


물기는 스펀지에서 나오지 못해 그 어떤 찝찝하고 더러운 상태로 뭉쳐있었다.



이 세상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

사람을 속이면서 두 발 뻗고 잠을 잘 자는 걸까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자녀, 누군가의 어떤 존재로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어찌 이렇게 사람들끼리 못됐을까.



회사를 다니는 것도 힘든데

나 스스로의 삶을 꾸리는 것도 너무나 버거운데

내가 아닌 타인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싫다.



회사를 다니는 것도 가족의 구성원으로 사는 것도

이 세상의 시민으로 사는 것도 이 지구의 지구인으로 사는 것도 모두 다 사람으로 엮여있고 어떠한 소유물로 얽히고 자본이 오고 가는 이 더러운 세상에 걸어 다니면서 결국 내가 얻은 것은 실망의 연속이었다.



내가 머리에 쥐가 나도록 팔꿈치 뼈가 아프도록 열심히 전화를 하고 이메일을 보내고 칼바람이 불어도 비가 내려서 옷깃이 젖어서 안경에 물방울이 맺혀서 앞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아도 나는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 이익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팀을 위해서 일을 했다.



그러나 나에게 돌아온 결과는 팀의 리더를 무시하는 태도, 나의 노력을 거부하는 바뀌지 않는 시스템, 효율적인 업무를 위한 새로운 변화의 제안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보이는 남자들의 역할만 보고 정작 가꿔낸 속내의 노력은 철저히 여자라는 이유로 숨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성인지 부족의 비하 발언만 남았다.



내가 비혼과 비출산을 추구하는 이유도 이런 이유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

그에 요구되는 자유의 침범과 무언의 희생 강요가

나는 싫다. 그래서 나는 그 선택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또 내가 겪은 이 험난함을 굳이 새 생명을 만들어 겪게 하고 싶지 않다.



저는 결혼 생각이 없어요.


저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어요.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이상한 애라고 취급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어떤 자유의 공백을 충분히 겪어 봤냐고.



무한한 믿음의 신뢰를 무참하게 밟혀봤냐고.



불확실함의 확실성을 강요받은 적은 없냐고.



맞지 않는 것을 맞추는 통일성의 협박을 받아 봤냐고.


​내가 우울증에 걸린 이유는 오로지 나의 잘못만 있는 것은 아닌데 나는 그동안 너무 착해서 남 탓을 안 하고 내 탓만 했다. 이제는 나를 그만 탓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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