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왜 나한테 먼저 만나자고 안 해?

친구를 사귀는 방법을 모르는 나

by 라다


"나랑 같이 놀자"


못했다. 이 말 한마디를 내뱉는 것을 할 수가 없었다.

친구가 없으니까 놀자는 말을 할 대상의 무존재를 알지 못했다.


어린이집에서는 모두가 나의 친구였다. 같이 한복을 입고 김치를 만들고 떡을 만들고 스케치북이 찢어지도록 크레파스로 색칠해도 내 곁에는 늘 친구라 불리는 든든한 사람이 있었다.


여름이 되면 등이 고구마처럼 붉어지도록 햇빛의 무한함 뜨거움 아래서 물놀이를 하고 가을이 되면 손바닥보다 큰 낙엽을 주워서 테두리를 따라 그리며 가을의 색감을 느꼈다. 겨울이 되면 눈이 오고 뽀득뽀득 누구의 발자국도 만나지 않은 눈을 밟으며 겨울의 하얀 행복을 느꼈다. 늘 친구와 함께 계절을 보냈다.


8살이 되었다고 빨간색 체크무늬 원피스를 사주더니 이제는 학교라는 곳을 가야 한다고 했다. 이때부터 시작된 친구 만들기의 악몽은 29살인 지금까지도 나의 뒤에 붙어 다녔다.

매 학기가 시작되면 어떤 친구와 같은 반이 될까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걸어야 할까

아무도 나랑 친구를 안 해주면 어떡하지

학년이 새로 올라가면 또 친구를 만들어야 하네


학교라는 곳에는 나와 나이가 같은 사람은 훨씬 많아졌지만 계절을 같이 느낄 친구라는 존재의 빈자리는 매우 크게 텅텅 비었다. 다들 비밀의 암호라도 주고받았는지 나만 빼고 다 친구가 되는 비밀이라도 있듯이 나는 늘 구석에서 혼자 외로움을 느꼈다.



중학교에 가도 고등학교에 가도 늘 고민은 같았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말 한마디 건네기가 어려웠고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친구가 되고 싶어서 열심히 마음을 열었다. 마음을 열었는데 친구가 내 마음에 들어오기에는 문의 크기가 작았을까.

내 곁에 머무는 친구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점심을 같이 먹을 친구를 찾느라 힘들었다.


"나랑 같이 밥 먹자"


말을 건넬 친구를 찾는 일이 공부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점심 먹는 줄을 기다리면서 빅뱅 뮤뱅을 봤냐고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나에게는 없었다.



왕따는 아니지만 늘 짝꿍을 찾아야 했다.

소풍을 가도 음악실을 가도 실험실을 가도

늘 나는 혼자 걸었다. 내 도시락에 김밥이 들었는지

볶음밥이 들었는지 궁금하지 않았을까.


어쩌다 나와 마음 맞는 친구가 생기면 친구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루라도 친구가 학교를 안 나오면 나는 또 고독에 빠졌다. 그렇다고 반 친구들과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아니었다. 다들 칠공주파처럼 친구 덩어리들이 있는데 나는 그 덩어리가 없었을 뿐이다.



대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정말 친구를 잘 사귀어야지 마음을 굳게 먹고 학교를 갔는데 벌써 나 빼고 다 친구가 되어있었다. 내가 모르는 비밀의 번호를 주고받은 게 틀림없다. 그 번호를 알고 싶었다. 누구보다 먼저 번호를 알게 해달라고 간절히 바랐다.


친구가 한 명도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친구가 많지 않았다. 또 친구가 있는데 친구가 없는 기분이었다. 내가 먼저 같이 놀자 하면 반응이 안 좋았다. 그래서 난 친구를 만드는 일을 싫어했다. 나랑 놀자 했더니 나랑 안 놀고 다른 친구랑 노는 그 모습을 보기 싫었다.


한국을 떠나도 똑같았다. 친구는 생겼지만 마음은 허전했다. 친구를 사귀는 방법을 알지 못했지만 친구가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내 곁에 초밥의 간장을 찍어 먹다 흘려도 까르르 웃는 친구가 자연스럽게 생겼다. 그런데 같이 축제에 놀러 갈 친구는 없었다.



어른이 된다고 친구가 많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늘 나는 왜 혼자일까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늘.

용기를 내서 보낸 카톡은 쓸쓸한 대답이 돌아왔다.

대화의 핑퐁은 이어지지 않았다.



인스타그램에 여럿이 모여 맥주의 주둥이로 별 모양으로 만들어 부메랑을 올리는 스토리를 보면 슬펐다.


"나랑 놀자"


이 말을 먼저 안 한다. 거절당할까 봐.

수도 없이 거절당해서 또 경험하고 싶지 않은 더러운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아.


누군가 나에게


넌 왜 먼저 만나자고 안 해?

왜 그렇게 소극적이야?


29살이 되고 처음 들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은 나의 적극성을 원했는데 결국 포기했던 걸까. 그래서 내가 친구가 많이 없었을까.

친구를 사귀는 방법을 여전히 모르겠다.

아니, 그럼 너가 만나자고하면 됐잖아.

누가 먼저 만나자고 하는게 중요해?


9살 때, 이 말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지금은 친구라기보다 아는 사람은 훨씬 많아졌다. 그럼에도 늘 나는 친구를 원한다. 친구가 많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