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만든 감정은 분리수거가 필요하죠

직장생활로 마음이 힘든 사람에게

by 라다



회사에서 만든 감정 쓰레기 어떻게 처리할까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곧 2년이 된다.

처음 입사했을 때와 비교하면 회사를 다니는 것 자체에 대한 부담감은 줄어들었지만 신입의 울타리를 벗어나면서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은 더욱 커졌다.


신입사원일 때는 나를 신입사원이라는 풍선에 가둬 나는 신입사원이니까 괜찮아라며 나를 둥둥 띄워줬다. 어떤 일이든 괜찮다고 방어하며 나를 지켰다.

이제 신입사원이라 하기에는 회사 일도 익숙해졌고 내 이름으로 책임감이라는 무게를 얻고 외부 업체와 함께 일하는 기회도 많아졌다.


아직 경력이 많지 않은 주니어지만 이제는 조금 더 성숙한 마음가짐으로 회사를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빗나가지 않게 성장해서 부끄러움 없는 선배가 될 자리에 앉을 수 있지 않을까.


2년 정도 직장생활을 하며 얻은 것은 나도 몰랐던 내 감정의 다양성이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상황에서 느껴지는 분노, 기쁨, 짜증, 억울함, 환호와 같이 기분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로 표현할 수가 없는 감정들을 가졌다. 표현이 불가능한 기분을 감당하는 마음은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꾸역꾸역 기복이 심한 감정 쓰레기들을 담고 있었다.






남들은 신경 쓰면서 정작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면서 단 하루도 마음이 깨끗한 날이 없었다. 내가 이렇게도 예민하고 감정적인 사람이었나를 되돌아볼 정도로 회사를 다니는 나는 그 전보다 성격이 많이 달라졌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반응하고 또 다른 사람의 행동과 말투에도 큰 의미를 부여해서 상처받고 하루 종일 신경 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흔히 회사의 나와 그냥 나의 자아를 분리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회사생활의 지속이 어렵다고 했다.


회사를 가는 사람도 나고 존재 자체의 나도 그저 나라는 사람 하나인데 왜 분리해야 하고 또 회사에서의 모습이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직장 동료에게 업무를 부탁했는데 거절을 당하면 내가 그동안 덕을 잘못 쌓았나, 왜 나의 도움을 외면하는 것인지 분노를 하기도 하고 팀의 리더가 기분대로 내뱉는 말 한마디를 내 마음대로 확대 해석해서 상처받고 눈물 흘리는 날도 있었다.


왜 나만 이런 귀찮고 하찮은 업무를 맡게 한 건지 상사를 미워했다. 내가 놓친 부분을 함께 체크하지 못한 동료를 증오했다. 바쁘다며 나의 협조를 거절한 타 부서 직원의 잘못을 강조했다. 실수를 수습하느라 예민해져 적극적으로 업무에 참여하느라 목소리가 커진 동료의 그 사람의 큰 목소리를 소음으로 여겼다. 경력이 없이 대리로 들어온 사람이 미워서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걷는 사람의 발걸음 소리조차 혐오했다. 초기 자료 작성에서 자꾸 숫자를 틀리는 상사의 실수를 보완해달라는 요청을 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상사의 능력의 안일함이 미치도록 증오스러웠다. 일이 없어 방황하며 경기도지사 누구 뽑을 거냐고 물어보고 다니는 배불뚝이 타 부서 이사님의 수다 소리가 입을 꿰매고 싶을 정도로 역겨웠다.



그들은 사실 아무 의미 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인데 나는 그 사람들의 모든 것에 집중하고 신경 쓰며 정작 망가진 나의 마음은 챙기지 못해서 병이 났다.

무시가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쉽지 않았다.



온 세상이 남의 편이 아닌 내 편만 들어주기 원했다.



누구나 억울함이 있고 또 어쩔 수 없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는 순간이 오게 되는데 평소 자기 연민이 심해서 직장생활에서도 나쁜 영향을 받았다. 내가 제일 불쌍하고 안쓰럽고 가장 큰 피해를 받았고 너무 큰 세상의 짐덩어리를 나 혼자만 들고 있어 온 세상이 나의 편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되었다. 지인들에게 회사에 이런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이런 단점이 있다며 같이 욕해달라며 내 마음에 쓰레기를 더 많이 만들어갔다.


회사에서 만난 사람은 업무적으로만 대해야 하는데 자꾸 사람으로 상대하며 더 많은 온정을 바랐다. 상대를 나의 인간관계 속에서 친구나 가족 같은 정을 나누는 사람이 아닌 그저 회사에서 일을 하는 사람, 그 자체로 봐야 하는 것을 못했다. 업무적으로만 대해야 하는데 사람을 마주하다 보니 때로는 과하게 감정을 이입해서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피해받았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아픈 사람으로 만들어갔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생길 수 있는 상황에서 안 좋은 부분에 집중하고 다른 사람의 단점에 신경 쓰며 악한 마음이 커져서 결국 그 악스러운 타인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감당하기에 마음이 지쳐버렸다.





스스로 때리고 아파하는 감정 자해를 했다.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면 적절한 분리로 감정의 쓰레기통을 주기적으로 비워줘야 한다. 나의 마음 쓰레기통은 슬픔, 증오, 분노, 혐오처럼 더러운 감정들만 쌓이고 뚜렷하게 분류되지 않는 온갖 감정의 폭발 때문에 분리수거가 되지 않아 주말 내내 마음속은 쓰레기 수거가 안 된 쓰레기장처럼 난장판이 됐다. 그렇게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갖고 월요일을 맞이하면 또 일주일이 아프고 힘들었다.


감정은 뚜렷함이 없는 추상적인 존재지만 마음으로는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존재다. 이 감정이 정의될 수 없는 것들은 자연스럽게 없어져야 하는데 굳이 붙잡아 선하지 않은 것으로 이름 붙이며 스스로를 고통에 옥죄이며 살았다.


좋은 마음과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며 상대를 대하는 것도 오로지 친절과 배려로 가득하여 나쁜 감정이 생길 때 밝음의 화사함을 침범하지 않도록해야하는데 암흑과 어둠의 싸늘함이 가득하다 보니 좋은 감정이 생길 수 조차 없이 까만 그림자만 가득했다. 햇빛 한 줄기라도 마음에 들어오면 그저 쾌쾌하고 비판적인 생각들은 지배적으로 마음을 더욱 비좁은 공간으로 형성됐다.


내 마음을 엇나가지 않게 보듬어주고 챙겨주지 못하고 더욱 심하게 채찍질하며 아픔을 만들어냈다. 차라리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가 있다면 안 좋은 감정들은 싹 버리고 싶었다. 먼지가 붙었다면 털어버리고 얼룩이 묻었다면 지우고 싶다.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갖은 얼룩과 오염으로 가득한 감정들은 그저 넣기만 하고 제거는 못해서 마음은 뾰족함에 찔려 갈기갈기 찢어졌다.





돌려준 만큼 되돌려 받는데 왜 자꾸 불친절함을 돌렸을까


그런 말이 있다. '사람은 준만큼 되돌려 받는다.'


선하고 고운 마음씨를 갖고 상대에게 조건 없이 전달해야 한다. 친절하고 따뜻한 말과 상냥하고 밝은 행동으로 상대를 대하는 여유로움은 곧 내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마음이 찌그러져있으니 밖으로 나오는 나의 인성도 한 대 맞은 양동이처럼 찌그러져 모양이 완전 엉터리였다. 누구에게라도 쩨쩨하지 않은 마음을 전달하는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남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미움을 받는 사람보다 결국은 미움을 갖고 있는 사람이 더 아픈 법이다.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큰 의미부여를 하지 말자. 회사가 아니었다면 만나자 않았을 사람이고 회사 밖에서 그들은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사람일 수 있다.


나의 증오로 인해 회사 사람이 고통받는 일은 없다. 타이에 대한 고통의 화살은 목적지가 없다.

그 화살은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

화살의 출발점이 나지만 나쁜 마음의 도착지도 나다.

악함은 어딘가에 머무를 수가 없는 것이다.

상대의 나쁜을 정의한 것의 주체는 나 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나쁜 사람을 모두가 인정해주는 것도 나의 사치이다. 그저 있는 그대로 그럴 수도 있을 거라며 각자가 이겨내는 어떤 치열함에 집중하도록 놔두자.



불친절하고 퉁명스러운 말과 행동은 이제 그만하자.

피로와 우울감에 쉽게 빠지는 자기 연민도 그만하자.

좋은 게 좋은 거라며 긍정적인 사람은 되지 못해도 그저 긍정과 부정의 경계선 아래로만 내려가지 말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