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어쩌다 보니 회계팀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큰 기업도 아니고 상장사도 아니고 제조업도 아닌 그냥 어떤 작은 소기업의 회계팀에서 일을 하고 있다.
어쩌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됐는지 모르지만 퇴사를 하고 이직할 곳이 여기뿐이라서 이곳에 오게 되었다.
여기에 오기 전에는 회계팀은 늘 나와 싸우는 팀이었는데 이제 내가 그 팀이 되었다. 나름의 속 사정이 있고 결제가 어떻게 하면 빨리 진행이 되는지, 결제가 됐는지 공유받는 과정, 건 별로 혹은 일괄 결제 처리를 하는지 등 내가 다른 팀에 일할 때에는 몰랐던 회계팀의 사정을 알게 되니 전 직장에서 회계팀이랑 싸운 이유가 납득이 되었다.
모든 일이 그렇고 모든 팀이 그렇듯이 각자의 팀마다 사정이 있고 모든 일은 절대 하나의 팀에서만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해결될 수가 없다. 모든 일은 다 연결돼 있고 그 일을 수행하는 팀 구성원들이 어떻게 타 부서와 유연하게 협업하느냐의 속도와 방식에 따라서 한 회사의 업무 처리 속도와 결과물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나는 학창 시절 수학 시험을 보면 30점을 넘은 적이 없었다. 잘 나오면 58점이 고득점이었다. 과외도 하고 학원도 다녔으므로 수포자는 아니었다. 나름대로 수학을 잘하고 싶어서 공부시간을 가장 많이 투자하기도 했었고 수학 공식을 외우려고 매일 반복하고 외워도 죽어도 안 외워지는 게 수학 공식이었다.
혹은 수학공식을 알아도 문제 풀 때 어떤 공식을 적용해야 하는지도 감이 안 잡혔었다. 문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서 풀이를 도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 공식도 알고 어떻게 문제를 푸는지도 아는데 결괏값이 안 나오는 오류가 많아서 난 늘 수학을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항상 점수가 낮으니까..
그러던 내가 지금은 회계팀에서 일을 한다.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은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숫자에게 거짓말을 해서 잘못된 결과를 나타내는 것이지. 숫자는 늘 정직하다. 숫자를 매일 보면서 나의 작은 실수로 나오는 결괏값이 달라지면 항상 심장이 쫄깃하다. 큰 단위의 돈을 다루다 보니까 늘 콩닥콩닥 가슴이 떨린다.
전 직장에서 수출한 물품의 총금액을 계산해서 월마다 회계팀에 보고를 했었다. 그때는 물건 공급가액 하나만 잘못 적어도, 물건 수량을 잘못 적어도 선적일이 달라지면 또 환율이 달라지고 늘 맞지 않는 데이터로 회계팀에서 월 마감을 하면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남일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내부적으로 서류 취합을 하면서 내가 만들지 않은 데이터를 취합만 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 모든 서류의 데이터가 옳은지 검토할 능력 밖의 일의 담당자라는 것이 꽤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수학을 못 하는 문과 출신은 어떻게 회계팀에서 살아남고 있냐면 우선 숫자는 엑셀이 계산을 해 준다.
계산기는 나의 친구, 계산기 없으면 일 못한다. 또 엑셀도 잘 못해서 챗지피티를 활용해서 함수 수식을 뭐 써야 하는지 물어보고 그대로 수식 복사해서 적용한다. 분명 나는 컴퓨터 활용능력 시험도 봤는데 왜 내가 할 수 있는 엑셀 기능은 한정적일까?
최근에는 데이터 분석 직무에 관심이 생겼다. 모든 회사 모든 부서에서 데이터 없이 일이 불가능하고 또 업무를 하면서 데이터 분석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분야에서든 기준에 따라 산출되는 수많은 자료의 수치화는 필수 템이니까...
엑셀 수식조차 잘 모르지만 데이터를 분석하는 방법, 데이터를 산출하는 그 세상은 어떤지 궁금하다. 방통대에 데이터 학과가 있던데...
아마도 데이터 산출도 엑셀과 비슷하게 수식을 잘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데이터 분석도 결국 컴퓨터가 해주는 거니까 컴퓨터의 언어를 활용하지 않을까?
퇴근 20분 남겨두고 나의 직무에 대해서 고민하다 이제 퇴근까지 2분 남았다.
나는 이 직장을 퇴사하면 어떤 직무를 다시 하게 될까...
진로 고민은 끝이 없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