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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어 전공 94년생의 진로고민 방황기

by 라다

누구나 각자의 커리어 스토리가 있다. 이유없는 경험은 없다고 모든 경험은 다 연결고리를 통해서 언제 어떻게 빛을 낼지 모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떤 이유로 대학에 가고 전공을 공부하며 활동했던 것들이 사회에 나와서 첫 직장으로 월급을 받게 되고 건강보험에 등록되는 그 순간,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그 말이 뭔지 잘 알겠는 요즘이다. 사회 초년생은 아니지만 어떤 한 분야의 전문가로 경력을 쌓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없는 나는 문과 졸업생이다.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있듯이 언어를 전공한 나는 어문계열의 취업이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


여전히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고 언어 전공으로 제한된 커리어에 한숨만 푹푹 나와서 채용공고를 보는 일도 무섭다.

채용공고를 보면 직무마다 요구하는 지식과 기술이 있다. 문과생에게 채용공고는 너무나 잔인하다. 단순히 외국어를 안다고 해서 지원서를 제출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대학에서 외국어를 배웠다 하더라도 전공이 외국어가 아닌 사람들도 충분히 취미로 잘하는 사람이 많고, 또 그 언어가 필요한 사람을 채용할 때는 그 언어의 원어민인데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을 채용한다. 또 언어를 전공했다고 그 언어를 완벽히 잘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채용공고를 살펴보면 경영, 회계, 영업, 품질, 생산으로 나눠진다. 문과 졸업생이 도전할 수 있는 분야가 한정적이다. 현재도 이직을 준비하고 있지만 채용공고를 보면서


이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맞아? 이런 일을 하려면 어떤 경력을 어디에서 채워야 하지?


대학을 다시 가야 되는 걸까 전문직이 아닌데 채용공고에 쓰여있는 업무들을 보면 이과가 아닌 이상 문과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한정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최근 내가 채용공고를 보면서 직접 지원한 곳과 입사 제안을 받아서 지원한 곳을 추려봤다. 직무는 경영지원, 재무, 회계 쪽과 물류 구매 SCM으로 해외에 있는 한국 기업에서 구인하는 직무는 보통 이런 포지션들이 있다.


면접을 본 곳도 있고 면접을 보지 못하고 서류에서 제외된 곳도 있는데 해외 기업 1곳을 제외하고 모두 한국 회사에서 나에게 공통적으로 질문을 했던 몇 가지가 있다.

자기소개를 해 주세요

왜 한국을 떠나서 폴란드에 오게 되었어요?

왜 현재 직장을 그만두고 이직을 희망하세요?

현재 하고 있는 업무가 정확히 어떻게 되세요?

희망 연봉이 얼마인가요?

일을 하면서 갈등을 극복한 경험이 있나요?

ㅇㅇ직무가 하는 일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본인의 성격 장, 단점이 뭐라 생각하세요?

뭐 면접을 본다면 뻔하게 물어보는 질문들이다.

근데 문득 나, 왜 폴란드에 오게 되었지 면접을 위한 답변이 아닌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면접에서 가식적인 대답이 아닌 나에게는 솔직하게 묻고싶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폴란드에 왔을까, 그리고 폴란드에 온 이유가 지금 의미가 있을까

여러 방면에서 생각한다면 어떤 관점에서 보냐에 따라서 폴란드행의 결정이

맞는 선택이었는지 틀린 선택이었는지 나눠지게 되는데 그래도 나의 결론은

한국에서 삶, 직장을 벗어나서 숨통이 트이고 싶었다.

그래서 숨통이 트였냐고 물어본다면 하나의 숨통은 트였다. 대신 다른 숨통이 막힌다.

나는 내 몸에 숨통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하나를 막으니 또 하나가 막힌다.

해외 생활을 처음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폴란드 생활이 처음에 적응하기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폴란드에서 내가 겪은 일들이 그동안 해외 생활을 하면서 예상할 수 있는 일을 벗어난 일이

많아서 인생에서 역대급으로 다양한 일을 직접 보고 겪는 중이다.


최근 면접에서 직무 지식에 관련해서 질문을 받았는데, 그래도 나름 이 직무로 4년 차 밥벌이를 하면서

기본적인 용어조차 설명을 못 하는 나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그동안 일을 하면서 처리하는 데만 급해서 업무를 하면서 보는 자료의 구성이나 용어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서 공부하는 시간이 없었던 게 너무 후회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공부를 좀 하고 있는데 그 면접에서 내가 그 용어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며칠 내내 괴로웠다.

평소에 공부하고 알았던 것들도 면접에서 마주하니 전혀 새로운 것으로 다가왔다. 이건 몇 번을 질문해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건 내 실력이다. 업무를 하면서도 반복되는 실수가 지속된다면 그건 실수가 아니라 내 업무 능력의 한계가 그 정도라는 것이다.

또 이 회사에서 러시아어를 쓰고 있지만 러시아어를 쓰는 범위가 한정돼 있다 보니 실력이 늘기보다는 내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나의 개떡 같은 러시아어에 적응이 된 애들은 이제 내가 문법을 틀리게 말해도 이미 뭘 물어볼지 아니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대화가 되고 일이 돼서 아, 나 이대로 멈춰 있을 수가 없겠구나 싶었다.

서류 지원을 하고 합격을 기다리고 면접을 보고 또 결과를 기다리고 다른 회사에 지원하고 이 무한 굴레의 반복되는 과정에 오는 스트레스와 아쉬움, 그리고 압박감이 있는 부담스러운 상황을 견뎌내면서 나는 더 잘 되려고 더 발전하려고 성장통을 겪고 있는 거라 생각해야겠다.

어쨌든 회사는 돈을 주고 노동력을 사는 거기 때문에 나 노동력의 가치가 인정받을 수 있는 회사는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 계속 찾아야 한다. 또 이 노동시장에서 나의 노동력을 여기저기에서 구매하겠다고 나를 찾는 회사들이 더 많아질 수 있도록 희소가치를 가지는 내 스스로의 노력도 더 필요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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