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필부 Aug 14. 2023

에로틱 우정

5. 우리를 괴롭히는 건 바로 일상의 우연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건 바로 일상의 우연이다.

[이야기가 있는 그림]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운명이다. 사실 그녀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운명이라 느낀 건 절대 아니었다. 돌이켜보니, 그때부터다. 이 남자가 얼마나 믿을만한 사람인지 그녀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를 시험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날이 있었다.


그녀가 슬쩍 자신의 가슴을 기대었고, 조금 후 스치듯 손으로 그를 만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순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까지 자신에게 다가온 여성을 단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인간으로는 다들 좋아했지만, 남자의 매력은 없는 남자였다. 그가 결혼한 것도 약간의 운과 엄청난 노력의 결과였다. 그는 곧, 남성으로는 얼마나 형편없는 인물인지 그녀에게 들킨 것 같다는 생각뿐이었다.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그녀는 그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는 것, 다시 말해 남자로 의식하지 않았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그녀가 그를 남자로 의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그는 그녀에게 흥미를 갖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녀는 오직 한 가지, 즉 자신의 일을 제대로 처리하는 데에만 몰두 했고, 그 외의 모든 신경은 끄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문제였다. 그는 육체적인 사랑보다 정신적인 사랑에 끌리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일에 몰입하는 모습에, 책을 읽는 모습에 사랑을 느끼는 남자였다. 그녀와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싶은 꿈 하나를 마음 속에 간직하기 시작한 건, 그 날 이후였다.


(에로틱한 우정에 관한 작가적 상상력을 더한 가상의 이야기와 이를 표현한 그림입니다. 타인으로부터 사랑을 찾으려는 남자와 자신으로부터 사랑을 찾는 여자의 이야기로, 유성페인트 & 프레스코 브러쉬를 활용하여 그렸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에로틱 우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