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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부 Nov 14. 2023

현실과 이상, 영화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사랑이다.

영화 포스터 (출처: 구글 이미지)


* 이 글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보신 후에 글을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2009년도 루카 구아다니노의 '아이엠 러브'는 등장인물의 설정면에서 1992년 루이 말 감독의 영화 '데미지'와 정확하게 반대에 서 있는 영화입니다. 데미지가 중년남성과 젊은 여성의 사랑이었다면, 아이엠러브는 중년여성과 젊은 남성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데미지는 상영 당시 노출 수위와 파격적인 내용으로 충격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화제작입니다. 아들인 마틴이  가장 사랑했던 두 사람, 아버지와 자신의 연인이 발가벗고 침대에서 뒹글고 있는 장면을 직접 보고 놀라 뒷걸음질 치다가 계단에서 떨어져 죽는 장면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장면으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아버지 역할의 제러미 아이언스가 발가벗은 채로 계단을 뛰어내려와 아들을 안고 오열하는 장면을 통해,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어 보이던 두 사람의 사랑이 끝났음을 관객은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 <데미지>의 한 장면 (출처: 구글 이미지)

영화 '데미지'의 루이 말 감독은 1932년생으로,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다가 1995년 6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기에 우리나라에서는 그의 작품을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다행이 이 작품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인 1992년의 작품입니다. 그가 조금만 더 살았더라면 '사랑'에 관한 후속작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반면, '아이엠 러브'의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는 1971년생으로, '데미지'의 감독과는 40여년의 시대적 경험차를 지니고 있습니다. 두 감독을 통해 '사랑'을 에 대한 인식이 시대적으로 어떻게 변화되는지 비교하며 영화를 감상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의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프로덕션 노트의 내용을 빌리면, <아이 엠 러브>는 틸다 스윈튼과 루카 구아다니노가 함께한 세 번째 작품입니다. 그들의 남다른 인연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인 <주인공들>에서 처음 만나 정신적으로 깊은 교감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2002년에는 <틸다 스윈튼: 러브 팩토리>라는 틸다 스윈튼의 인터뷰로 이루어진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만큼 그녀에 대한 감독의 애정과 신뢰는 남달랐습니다. 


이 때부터 감독은 틸다 스윈튼과 함께 사랑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나누며 <아이 엠 러브>의 이야기를 함께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가 규정한 속박에서 변화하고 극복해가는 인물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틸다 스윈튼은 7년 동안 함께 고민해온 <아이 엠 러브>가 이러한 주제를 더 심층화하여 표현하였기에 강한 매력을 느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틸다 스윈튼에 대한 강한 신뢰를 갖고 있던 감독은 처음부터 오로지 그녀만을 위한 시나리오를 써나갔습니다. 영화의 구상단계부터 함께 고민하며 공동제작자로도 참여한 틸다 스윈튼과 그의 오랜 파트너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서로의 재능에 대한 강한 신뢰와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아이 엠 러브>를 완성시켰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 '엠마'역의 틸다 스윈튼 (출처: 영화 캡쳐)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면, 영화 속 그녀는 모든 것을 가진 듯한 여성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러시아에서 만난 이탈리아 상류층 남자와 결혼을 하면서, 자신의 실제 이름 '키티쉬'를 버리고 남자가 지어준 이름 '엠마'로, 이탈리아 밀라노의 대저택에서 살아갑니다. 그녀는 이제 모든 생활이 익숙해졌을만큼 아이들은 장성했고, 자애로운 어머니이자 훌륭한 아내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는 중년의 여성입니다.


하지만 풍요로움과 화려함을 가진 대신 이탈리아 명문 집안의 부속품으로 살아가는 생활에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아들의 친구이자 요리사인 안토니오의 음식을 먹으면서 그녀의 삶에 작은 틈이 생깁니다. 의욕 넘치는 젊은 요리사의 자유를 본 것일까요?

영화 속 장면 캡쳐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에서 극의 전개를 고조시키며 관객의 심장에 깊은 울림을 전해주는 화려하고도 강렬한 오케스트라 연주곡은 미국의 작곡가이자 지휘자 존 아담스의 곡으로, 주인공 엠마의 뜨겁고도 혼란스러운 감정을 잘 대변해줍니다. 그리고 주인공 엠마를 황홀경에 빠트리는 안토니오의 화려한 요리들은 이탈리안 요리로 주목을 받고 있는 칼로 클라코가 맡았다고 합니다. 창조적인 쉐프 안토니오의 음식을 훌륭하게 구현시키며 영화의 퀄리티를 한층 높여주었다는 평입니다. 각자의 영역에서 천재적인 재능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두 예술가의 황홀한 음악과 요리는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만합니다.


그렇게 찾아온 그녀의 작은 틈에 용기를 불어 넣어준 사람은 딸입니다. 화가의 길을 강권하는 할아버지에 맞서 사진작가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하고, 명문가의 딸 역할 대신 동성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딸을 보면서 엠마는 용기를 얻습니다.

영화 속 장면 캡쳐

비록 자유를 선택한 엠마는 그에 따른 책임을 피하지 못하지만, 책임의 끝에 선 엠마의 선택은 영화 '데미지'와는 정반대에 서 있습니다. (영화를 아직 보지 못한 독자를 위해 더 이상의 스포일러는 생략하겠습니다.)

다수의 영화 평론가들이 '아이엠 러브'를 이야기하면서 사용하는 단어에는 '금지된 사랑'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금지한다고 시작하지 않을 수 있는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이 시작된 이후에야 그것이 금지된 관계임을 알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러니 '사랑'을 느꼈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금지된 사랑'을 이야기하려면 이분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마광수!

교수이자 작가인 마광수는 흔히 '불륜'이라 부르는 '금지된 사랑'에 대하여 자신만의 생각을 대중에게 지속적으로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는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문학과와 동대학원을 나와 <윤동주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습니다. 윤동주 연구로 1호박사의 탄생이었습니다. 그는 1976년 25세에 대학강의를 시작하여 28세에 홍익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를 지낸 후, 33세에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할 정도로 촉망받던 연구자였습니다. 

마광수 작가의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교수의 길 외에도 작가의 글을 걸었습니다. 26세인 1977년에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하였습니다. 그후 시, 소설, 에세이, 평론 등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 저서를 쏟아내며 문학계에서도 주목을 받습니다. 특히 89년에 발표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에세이와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으로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키면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잡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페미니즘 선구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성도 자유로운 성생활을 즐길 권리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보통 '불륜'이라고 하면 대개 기혼자의 '혼외정사'를 가리키지만, 당시 남성 불륜은 별로 문제시되지 않았습니다. 남녀평등이 안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직 여성의 '불륜'만이 흥미의 대상이고 '단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여성의 성적자유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많이 변했지만, 당시에는 여성의 혼전순결을 외치던 시절입니다.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도 성적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입니다.  

어쩌면 민주화 열기가 가득하던 시절, 정치검찰에게 마광수는 표적으로 딱 좋은 먹잇감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정말로 그는 온 국민의 시선을 끌게 됩니다. 1992년에 발표한 <즐거운 사라> 소설 속 표현이 외설스럽다는 이유로, 그는 전격 구속됩니다. 당시 그의 구속 소식은 모든 언론을 장악했습니다. 결국 그는 두 달 동안 수감생활을 하다  95년 최종심에서 유죄가 확정되어 대학에서 해직됩니다. 한국역사의 부끄러운 한 페이지가 완성되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몇 년 뒤 사면복권되어 대학교수로 복직하였지만, 끝내 사람들은 그를  외면하였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불현듯 그가 떠오른 건 왜 일까요? 여전히 여성의 사랑은 '불륜'이라는 이름 속에 갇혀있지만, 엠마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사랑'이라며, 그 이름을 외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I AM LOVE. 



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 모든 사랑에 변태도 없다. 모든 사랑에 퇴폐도 없다.

사랑은 '순간을 연소시키는 것'이다. 

거기엔 아무런 조건도 규약도 제도도 개입하지 못한다.   (마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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