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결혼은 모르겠고 가족은 만들고 싶어 혼자 엄마가 되었습니다

by 싱싱맘

23년 12월 초 덴마크 코펜하겐은 춥고 어두웠다. 스위스 출장길에 휴가를 하루 보태어 이곳으로 날아왔다. 굳이 이 도시에 온 이유 정자은행과 난임 클리닉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나 홀로 임신에는 정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정자기증을 받기 위해 정자은행을 꼭 방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자 기증자 선택, 정자 구매 및 배송에 이르는 전 과정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기 전 이미 정자은행 몇 군데와 화상으로 상담을 진행하였고, 정자은행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기증자 프로필도 확인해 본 상태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생소하고 막연했기 때문에, 실제로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를 갖는 여성들이 있는지, 사기 치는 것은 아닌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정자은행의 상담원은 나를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고, 짧지만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한국과 싱가폴에서는 난임시술이 결혼한 부부들에게만 허용된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유럽에서는 비혼출산 케이스가 많고, 특히 40대 중반 임신과 출산은 매우 흔하니 너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덕담도 해주었다.




사실 덴마크로 갔던 깊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덴마크에 가면 내가 하려고 하는 선택에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결혼을 안 하겠다는 대단한 결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는데 바쁘게 살다 보니 시기를 놓쳤고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언젠가 내 아이와 함께 내 가족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은 마음 한 구석에 늘 있었다. 20대, 30대 때에는 그저 막연한 생각에 불과했던 것이, 40대가 되어서는 지금 안 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불안했다.


요즘은 노산이 흔하다고는 하지만 임신과 출산의 생물학적 타이밍은 정해져 있고 나는 그 시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함께 가족을 만들 파트너를 만난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상대를 아직 만나지 못했고, 이 시점에서 누군가를 만난다고 해도 아이에 대한 생각은 많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나에게는 임신 출산과 연애를 분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2017년 말 한국에서 난자를 냉동보관을 해두었을 때는 그 ‘언젠가’는 매우 먼 훗날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이미 노산으로 분류되는 만 35세였는데, 어쨌거나 큰 숙제를 해놓은 느낌이었고, 미래에 언제든지 꺼내쓸 수 있는 든든한 보험을 들어놓은 기분이었다. 왜 아직도 결혼을 안 하냐는 질문에 당당하게 답변으로 활용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 ‘먼 훗날’은 내가 실행에 옮기지 않는 한 절대 다가오지 않을 미래였고, 나는 이미 40대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큰 숙제는 여전히 큰 숙제로 남아 있었다. 안 할 거면 모르겠지만, 할 거면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2024년 초 임신과 출산을 본격적으로 준비했고, 2025년 7월 드디어 아이가 태어났다.


그렇게 나는 ‘초이스맘 ’이 되었다 (Choice Mom; Single Mother by Choice).


2,30대를 경주마처럼 보냈던 나는 임신과 출산도 일종의 프로젝트로 생각했었나 보다. 사전준비 → 수정 → 착상 → 출산 → 산후회복으로 프로젝트가 종료되고 나는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그런데 임신을 거쳐 아이를 낳고 보니 이것은 나의 대단한 착각이었다. 새로운 일상이 되어버린 육아에는 퇴근이 없고, 아이가 오늘 하루 잘 먹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주는 것만으로 그저 감사하다. 싱글 라이프가 그리울 때가 가끔 있겠지만 앞으로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이 더 기대된다.


배우자가 없는 나는 어머니가 분만실에 함께 들어가 주셨고 출생 직후 아이의 탯줄을 잘라주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껏 한 일 중에 2세를 만든 것이 가장 잘했어. 엄마가 죽고 없으면 네가 혼자 남는 것이 가슴 아팠는데 이제 네 가족이 생기니 마음이 놓인다. 우리 잘 키워보자."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혹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렇다면 혼자 고민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미리 생각해 보아야 것들도 많고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도 많을 것이다. 이러한 나의 좌충우돌 경험이 용기를 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기록을 남겨 보기로 한다.




PS: 몇 년 전에 8살 아들을 둔 초이스맘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아일랜드 사람이었는데 뉴욕에서 아들과 개와 함께 살고 있었다. 처음에 입양을 준비하다가 비혼출산을 한 케이스였다. 너무나도 흥미진진한 대화가 끝날 무렵 나는 그녀에게 “돌이켜보니 아쉬운 점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지금 너무 행복하고, 늦게 시작해서 둘째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 유일한 후회”라고 답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