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출산의 분리
애초부터 아이를 혼자 낳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요즘 비혼출산이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여겨지고 대중적 관심도 많아지고 있지만, 여기에는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나눠보고자 한다.
대학 졸업 후 10년 가까이 유럽에 거주하면서 보아 온 현지인들의 가족관계는 매우 다양했다. 나의 보스는 결혼 없이 동거 형태로 몇십 년째 아이들을 키우며 가족을 이루고 있었고, 멋진 결혼식을 했으나 곧 이혼한 케이스, 결혼 후 애 낳고 함께 오래 살다가 4,50대에 갑자기 이혼한 케이스, 장기 연애 후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함께 살게 될 줄 알았는데 절대 청혼을 하지 않는 남자친구의 소극적인 태도에 실망한 케이스.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에 이런 남자와 오랜 기간 연애를 하다가 임신 시기를 놓치게 된 안타까운 경우들도 들었다.
지인 중의 하나가 생리가 불규칙해 산부인과에 갔더니 난소 기능 저하로 임신이 어려울 수 있다고 난자냉동을 권유받았다. 이런 분야에 무지했던 30대 초중반의 나에게는 나름 충격이었다. 아직 해보고 싶은 것들, 가보고 싶은 곳들이 많았다. 난자냉동을 미리 해두면 시간을 벌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당시 2010년대 유럽에서는 30대 초중반에 이미 난자냉동을 한 여성들이 주변에 가끔 있었고, 정자기증을 통해 혼자 아이를 낳았다는 친구의 친구, 동료의 동료 케이스도 종종 들었기에 나는 은연중에 비혼출산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던 것 같다.
결혼을 절대 안 하겠다고 결심한 비혼주의자는 아니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회의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한 상대와 평생을 함께 하기로 맹세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면서도 상당한 책임감을 요구하는 약속(Commitment)이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얼마나 상대방을 좋아해야 결혼까지 결심하게 되는 건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30대를 지나면서 주변에 이혼하는 케이스들이 점점 더 많아지다 보니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회의감이 조금 더 깊어졌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참 쉽지 않다는 것을 매일 느끼기에 육아공동체 부부들이 부럽기도 하다. 그렇기에 아이에게 사랑과 관심을 듬뿍 쏟아주시는 내 어머니와 나의 가족, 친구들이 너무나도 소중하다.]
나의 20대, 30대는 더 공부하고, 더 커리어를 쌓고, 더 여행을 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시간들이었는데, 40대가 되어서보니 그 외의 모든 것들에 늦어버린 내가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40대에 접어들면서는 현실적인 제약사항들이 점점 더 명백해졌다.
내 나이 또래에 아직 미혼인 남자들이 거의 없었다. 있다고 해도 결혼이나 출산에 대한 입장이 매우 달랐다. 지금 낳으면 은퇴 후에도 아직 아이가 학교를 다닐 나이인데 그건 힘들 것 같다. 호르몬이 작용하는 탈모약을 먹고 있어 2세를 가지는 것이 망설여진다… 등등.
30대 후반 한국으로 돌아와 5년간 체류하는 동안 한 번도 소개팅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소개팅을 해달라고 적극적으로 주변에 얘기하고 다닌 적도 없지만, 사람들은 내가 얘기도 꺼내기 전에 ‘눈이 높을 것 같다, 부담스럽다…’ 등등의 이유로 소개팅이 어렵겠다고 했다.
소개팅을 곧잘 하던 주변의 또래 싱글 여성들도 상대와의 관계 발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가끔 있는 듯했다. (결혼을 원한다면) 40대의 소개팅은 그저 순수한 연애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첫 만남에서 은퇴 시기, 2세를 원하는지 여부 등 다소 뜨악한 주제에 대해서도 이리저리 간을 보게 된다.
[물론 멋진 연하남을 만나 행복한 연애를 하는 케이스들도 많으므로 성급한 일반화는 절대 하지 않도록 하겠다.]
어쨌거나 결국 40대의 나는 결혼(연애)과 출산을 분리하는 것이 합리적이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그 사람과 2세를 낳을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결혼을 못하더라도 아이를 갖고 싶을 수는 있다. 그리고 아이가 행복하고 안전하게 사랑받는 환경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결혼과 출산을 분리해서 생각하게 되면, 상대방에 대해서도 보다 편안하게 마음을 열고 편하게 연애를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결혼에 큰 관심이 없는 나는 왜 아이를 굳이 고집했던 걸까?
무언가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것 또한 여러 가지 개인적 경험과 주변에서 들은 조언들을 내 나름대로 소화한 사유의 결과물인 것 같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중국으로 한 달간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다. 보육원에서 갓난아기를 돌보는 일이었는데, 조선족과 한족 아기들이 섞여 있었고 부모님은 없거나 한국에 돈 벌러 간 사이 맡겨둔 케이스들이 많았다. 그중에 한 아기에게 유독 정이 많이 갔다. 기어 다니는 아기였고 매우 호기심이 많고 활발했다. 입양을 해서 데려올 수 있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만 20세도 안된 철없는 나는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봉사활동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와 바쁜 대학교 1학년의 생활로 돌아갔다. 그런데 나중에 얘기를 들으니 그해 겨울 바이러스가 돌아서 아기도 저 세상으로 갔다고 했다. 그때 내가 어떻게든 데려올 수 있었더라면 아이의 인생이 달라졌을까? 지금도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안타까움이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일할 때 한국의 어느 지자체에서 출장단이 왔다. 중년의 남성들 사이에 50대 여성 한분이 계셨는데 멋진 영어로 프레젠테이션을 완벽하게 보여주셨다. 식사 자리에서 얘기를 나누어보니 아직 싱글이시고 오래전에 영국에서 석사도 하신 멋진 언니였다. 그분이 내게 말씀하기를 싱글로 사는 것 매우 편하고 좋은데, 한국에서 사는 건 별로라고 하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머니와 친구처럼 서로 의지하면서 살았는데, 2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진짜 혼자가 되니 외롭고 힘들다고 하셨다. 내 가족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시도하기에는 이미 늦은 것 같다고 하셨다. 50세가 되었을 때 나는 어떤 마음일까, 어떻게 살고 싶나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였다.
한국에서 일할 때 모시던 임원 한 분은 경상도 사나이답게 직설적이셨다. 내가 운동에 취미활동에 이것저것 할 때 "엉뚱한 거 하지 말고 시집이나 가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시는 분이셨다. 그분 특유의 애정이 담긴 화법이다. 본인 자식이 없으셔서 더더욱 후배들을 아껴주시던 분이셨다. 어느 날 식사 자리에서 네가 남길 레거시(Legacy)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레거시(Legacy)는 단순히 조상이나 선대가 남긴 물리적 유산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지금까지 만들어 쌓아 온 가치와 부단한 노력의 지향점. 그 가치와 노력을 이어갈 존재. 나의 모든 것 보다 더 소중한 존재. 나의 원동력.
또 다른 여성 임원 한 분은 내게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지만, 출산의 경험은 특별하다고. 생각이 없다면 모르되, 생각이 있다면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하라고. 나는 이 말에 꽂혀 나중에 2세를 만들게 된다면 꼭 내 뱃속에 열 달 동안 품었다가 낳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출산을 하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니 출산이 특별한 경험인 것은 맞지만 절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많은 준비와 노력, 공부가 필요한 일이었고, 그렇게 열심히 하더라도 내 뜻대로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아무튼 나는 현재 싱글의 삶을 살고 있더라도 지금부터 10년, 20년 후에는 혼자이기보다는 나보다 더 소중한 존재와 함께 가족을 이루어 살고 싶었다.
이런 소망을 40대의 내가 비로소 실천하게 된 것은 지금까지 꾸려온 내 삶의 궤적이 자연스럽게 나를 그쪽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40대가 아니라 20대 또는 30대였다면?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주저했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 가보고 싶은 곳, 이루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 조바심이 났을 테니.
결국, 뒤를 돌아보고 앞을 내다 볼 수 있는 여유와 안목이 생기는 시점에 도달해서야 나는 굳게 결심하고 실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께 한가지 조언을 드리자면 그 의사 결정을 너무 오래 미루지는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시간은 우리를 길게 기다려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