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이 말은 보통 J가 하는 말이라던데요?
어떤 사람들에겐 정말 지긋지긋한 주제일 수도 있고, 나같은 사람들은 여전히 과학 또는 미신처럼 믿고 있는 테스트가 있다. 그건 바로 MBTI 성격유형 테스트인데(해당 테스트를 개발한 사람들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이름인 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앞글자를 따온 것이 MBTI. TMI로는 MBTI를 만든 저 두 사람은 모녀관계이며, 심리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는 않은 비전문가라고 한다) 벌써 유명해지기 시작하고 이슈가 된지 몇 년이나 지난 성격유형 테스트임에도 불구하고, 내 기준에서는 1차적으로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 예측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객관적인 지표이다. 기존에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고작해야 혈액형이 뭐냐고 물어봤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굉장한 발전인 셈이다. 공교롭게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 카페 옆 테이블에 앉은 아주머니들도 MBTI 얘기를 하고 있다.
"자기 MBTI가 뭐야? 난 ISFJ"
"나랑 하나만 다르네. 난 INFJ"
"N은 약간 몽상적인거래. 현실적이지 않고"
MBTI의 4가지 구성요소 중 가장 마지막 부분은 바로 인식(Perceiving) vs 판단(Judging)이다. 보통은 계획적인 사람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부분이라고 많이들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단 한번도 MBTI 테스트에서 J가 나온 적이 없다. 그리고 계획적인 것이 싫다. 여행 목적지를 정하는 단계를 제외하고는 여행 관련된 일정을 즉흥적으로 조율하면서 마음에 평안을 얻고, 일상적인 생활에서 오늘 어떤 것들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면서 스트레스 받아본 기억도 별로 없다. 어차피 하루, 이틀 전에 시작하기 때문에 대학교 시절 시험기간 및 과제제출 기한은 아무리 길어봤자 나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으며, 번개로 잡히는 약속들이 너무나도 편했으며 오히려 D-day보다 너무 오래 전에 잡은 약속들은 내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P성향이 강해 즉흥적으로 보내는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나 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계획을 세울 때가 있다. 다만 J들처럼 세세하게 계획을 세워가면서 상황을 제어하는 것 보다는, 조금 더 큼지막한 계획으로 인생을 '설계'하면서 안정감을 느낀다. 내가 목표로 하는 것에 대한 선명도에 따라서 많이 다를 수 있겠지만, 원하는 것을 쟁취하고 싶을 때 누구보다도 계획적으로 설계를 하면서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계획이 바로 오늘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단기적인 것일 수도 있고, 10년 이상의 긴 기간을 바라보고 세우는 계획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일단 계획을 세우는 행동 자체가 나에게는 상황을 '설계'한다는 부분에서 큰 의미가 있다.
결국 '계획'이라는 이 거창해보이는 단어를 받아들이는 방식과 정도가 다를 뿐, 누구나 계획적인 사람이라는 말이다. MBTI 결과지를 봐도 각 구성요소마다 어느쪽에 가까운지 정도를 표시하는 %가 있지, 어떤 한 쪽 성향만 가진 사람은 없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인간처럼 복잡한 매커니즘을 가진 생명체를 고작 4가지 항목으로 구분한다는게 모순이기는 하다. 아마 수만가지 항목을 가져와서 성격테스트를 만든다고 해도 완전히 정확하게 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불가할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계획적인 것이 싫다. 나를 옥죄는 족쇄로 느껴지고 자유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계획이 나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틀림이 없다. 나의 선호와 상관없이 계획이 필요할 때가 있는 이유이다. 인생에 있어서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은 과장 조금 보태서 전국민이 아는 명언이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 혹은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을 때 적어도 그 '방향'을 맞게 가져가기 위해서 계획이 필요한 법이다. 그 계획이 나의 자유를 빼앗아 간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해주는 길잡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계획을 세우면서 살아가고 싶다. 물론 계획에 대한 실천은 또 다른 얘기긴 하지만, 그건 미래의 내가 어떻게든 노력하겠지. 어쨌든 현재의 우리는 모두 계획을 열심히 하면서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