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니의 끄적임 Mar 27. 2024

돈 룩 백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단 후회를 배제시킨 채로

작년에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가 있다. 굉장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더 글로리'라는 작품이 그것인데, 주된 줄거리는 모두가 아는 것처럼 학교폭력 피해자가 와신상담하여서 복수를 감행해 결국 가해자 무리에게 파멸을 선사한다는 결말로 끝나 관객들에게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였다. 


가해자 무리 중 대장으로서 주인공을 가장 많이 괴롭혔던 '박연진'의 어머니가, 곤란에 처한 연진이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내용이 나온다.  

엄마가 전에도 말했지, 뒤돌아 보지 말라고
해결할 방법은 뒤에 없어
늘 앞에 있어
인생은 그런 거야


물론 드라마에서는 저 대사가 딸의 범죄를 숨기고 거짓과 조작으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쓰였지만, 나는 연진이 어머니가 말한 내용을 진작에 깨닫지 못해서 겪었던 수많은 번뇌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 그러지 말걸' 이라던지, '아 한번 해볼걸'과 같은 종류의 후회들이 대다수이다. 내가 과거에 했던 행동이 달랐다면 보다 더 나은,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들인 것이다. 


이러한 후회는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연세가 많이 드신 친할머니 댁에 가면 서너 번에 한 번은 꼭 당신의 깊은 한숨을 들을 수 있었다. 

어휴.. 그때 집을 팔지 말걸, 손해가 얼마나 막심했는지

아버지를 통해 파악한 대략적인 스토리는, 할머니가 우리 아버지 나이셨을 시절에 잘못된 부동산 매매로 인해 상당한 금전적 손해를 입으셨다는 내용이다. 30년도 더 된 기억이 아직도 당신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왜 아직도 후회를 하셔서 고통받으실까?'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정작 나 자신도 과거에 감정을 붙잡힌 채 발버둥 치고 있는 모습들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후회라는 감정이 그렇다. 사람인 이상 완벽할 수가 없고,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수행하는 모든 선택이 만족스러울 수 없다. 그래서 현재의 모습에서 조금이라도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이 발견된다면, 과거의 탓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연진이 어머니의 대사를 마음에 새겨야 한다. 후회는 미래를 책임지지 않는다. 이미 발생했고, 되돌릴 없는 과거의 사건에서 우리가 가져와야 하는 것은 '후회'가 아니라 '교훈'이다. 


여자친구와 상당히 비싼 물건을 사러 갔다가 바가지, 속된 말로 '눈탱이'를 세게 맞았던 적이 있다. (심지어 환불도 안 되는 상품이었다) 나중에 바가지를 쓰게 된 것을 안 여자친구의 투덜거림에, 연진이 어머니 대사인 '돈 룩 백'을 통해서 그녀의 마음에 안정을 선사해 줄 수 있었다.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대한 후회로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을 바에는, 앞으로 있을 소비에 대해서 어떻게 바가지를 쓰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다. 


소를 잃은 것은 분명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소를 아쉬워하는 것이 아니라, 튼튼한 외양간을 지어서 이후에 발생할 손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에필로그를 좋아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