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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공대생 Jun 11. 2019

저녁의 구애

편혜영 단편소설

 죽음은 멀고도 가깝다. 첫 문장부터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냐 하겠지만, 솔직히 지금으로선 이 표현이 죽음이라는 단어에 대해 서술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표현이라 생각한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 또는 타인에게 늘 발생할 가능성을 두고 있으며, 그 확률은 측정 불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당장 내일 발생할 수도 있지만, 당장 내일 발생할 것 같으면서도 수십 년 후에도 발생하지 않는 모종의 사건과도 같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늘 목격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고, 점점 죽음에 대한 비중은 걸어온 시간만큼 비례해서 줄어든다고 느낀다. 그 순간, 이런 질문을 예기치 않게 들어보자. 만약, 당신이 10년 뒤에, 1년 뒤에, 아니 10분 후에 당장 죽는다는 선고를 받게 된다면, 그때 당신은 어떤 행동을 선택할 건가?


편혜영 작가는 위와 같은 질문을 소설 '저녁의 구애'를 통해 우리에게 묻고 있다. 주인공 김 군은 꽃집을 운영한다. 그는 친구로부터 예전에 자주 찾아뵙던 어르신이 곧 숨을 거두신다는 연락을 받은 후 장례식 화환을 주문받는다. 그는 화환을 싣고 380km의 먼 길을 가지만 도중에 친구가 아직 숨을 거두시지 않았고, 40분 정도 연명할 수 있을 거라고 병원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게 된다. 그는 죽음을 보고 싶지 않아서 근처 시장가로 간다. 도중에 잠시 김에 대해 한 가지만 더 설명하자면, 김은 짧은 기간 동안 연락을 주고받은 여자가 있다. 하지만 요즘 들어 그녀에 대해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상태였고, 곧 그녀와의 만남을 접을 준비를 트럭을 몰며 머릿속에서 하고 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김은 그 시장 특산물인 어묵 통조림을 사려고 하나, 어딜 가도 팔지 않았다. 그렇게 시장가에서 시간을 보낸 후, 장례식장에 도착한다. 그때, 김의 곁을 지나가는 한 명의 마라토너가 보였다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곧이어 김의 곁을 지나가던, 김이 몰던 트럭과 정말 똑같이 생긴 트럭이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불이 타오르는 광경을 목격한다. 이 모든 것은 갑작스럽게 일어났으며, 김은 느닷없이 연락을 하던 그녀에게 전화해서 구애를 한다. 그렇게 이야기는 끝난다.


 처음 읽었을 때, 본인은 김의 행동이 인간이란 존재가 극한의 상황에 치닫았을 때 숨겨진 본능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고 여겼다. 멀기만 느껴졌던 생의 끝이 갑자기 눈 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목격했을 때, 김은 분명 두려웠을 것이다. 40분의 생명줄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고, 어묵 통조림조차 팔지 않을 정도로 이상 없던 그의 전선에 찰나의 순간 불쑥 쳐들어온 그 미지의 오류. 그 낯섦이 그에겐 인간의 본능, 즉 구애의 본능으로 귀결된 건 아니었을까.


하지만 다시 읽어 보니, 마냥 인간의 본능만으로 행동하기에는 찜찜한 면이 없잖아 있다. 그저 죽음을 바라봤기 때문에 느닷없이 튀어나온 본능이라기엔 질문거리가 많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본능들이 많을 텐데 굳이 구애로 귀결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대상이 왜 하필 그가 헤어지고자 한 그녀였던 건가? 선문답이 계속 반복되며 이어진 것을 확인한 뒤, 위와 같은 판단이 오류가 있음을 깨달았다. 이 소설은, 그저 묻고 싶었던 것이다. 당신이 정말 삶과 죽음, 그 경계의 거의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에 대해 묻고 싶었던 것이다. 삶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마라톤, 그리고 한 순간에 생의 방향을 달리할 수 있는 트럭 폭발. 김 군은 죽음이라는 개념에 대해 무뎌지고 무뎌져서 자신의 전선에는 흔하게 일어날 법한 사건으로만 여겼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전선 앞에는 나타나지 않을 사건이라 무의식 중에 여겼다. 하지만 그는 목격했다. 끝까지 호흡을 놓치지 않고 밤까지 달리고 있는 마라토너를. 그리고 자신을 꼭 닮은 트럭을 몰던 운전수가 휘파람을 불며 지나가는 도중, 가드레일에 부딪쳐서 불타 없어지고 만 광경을. 그 삶과 죽음의 경계 속에서 김 군이 마지막으로 택한 행동은 그가 헤어지기로 마음먹었던 이에게 구애하는 거였다.  죽기 일보 직전의 광경을 체감한 순간 마지막으로 택한 행동이 이거였다니, 이 소설은 결국 김 군이 얼마나 로맨틱한 인간이었는가를 깨닫게 해 준 소설, 그 이상 그 이하 무엇도 아니었다.


자문해보자. 만약, 정말 우리가 10분 뒤에 당장 죽는다는 선고를 받게 되면, 우리는 김 군처럼 행동하게 될까? 아니면, 어떤 행동을 함으로써, 우리가 그토록 바라왔던 소망을 이루고 생을 마감하게 될까? 다시금 어떤 자세로 우리들 앞의 삶을 임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이 소설을 읽게 된다면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좋은 소설은 절대 우리에게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우리가 자문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며,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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