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이 ‘베토벤’이 된 결정적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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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Op.1
세 곡의 피아노 3중주,
이것은 베토벤의 ‘처음’,
베토벤이 ‘베토벤’이기로 한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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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작품들은
베토벤이 처음 쓴 것도,
처음으로 출판된 작품도,
(첫 출판작품은 아마도
“드레슬러의 행진곡 주제에 의한
9개의 변주곡 c단조”, WoO 63인 듯하다)
심지어 Op.1이 붙어 출판된
첫 작품도 아니다.
(베토벤이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전해지지만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중
‘백작님이 춤을 추시겠다면’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초판에
Op.1이 붙은 채 출판되었고,
출판된 이후 목록에서 삭제해
지금은 WoO.40으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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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다시 정리한다,
리히노프스키 후작의 궁에서 초연된 후
1795년 세 곡을 묶어 출판한 베토벤의 Op.1은
베토벤이 ‘베토벤’이 되기로 한 처음,
바로 여기에서부터
그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기 위한
의지의 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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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들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세 곡의 피아노 3중주는
베토벤의 작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물론 어딘가에서는 하이든스러움과,
또다른 어딘가에선 모차르트스러움이
어쩔 수 없이 묻어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Op.1은
이미 충분히 ‘베토벤스러운’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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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 Eb장조, 2번 G장조, 3번 c단조.
그의 세 번째 교향곡(‘영웅’)과
다섯 번째 피아노협주곡(‘황제’)의
Eb장조와,
피아노 소나타 Op.13 ‘비창’,
피아노 협주곡 3번 Op.37,
마지막 소나타인 32번 Op.111과
나아가 교향곡 5번 Op.67 <운명>의
바로 그 c단조,
이 두 개의 나란한 조 관계로
운명적으로 얽힌 조성을 이미,
베토벤의 Op.1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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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매력이 돋보이는
이 세 곡 중에서도,
특히 3번 c단조는 주목할 만하다.
c단조,
베토벤 이전에는 그리 대중적이지 않았던,
빈 고전파 시절까지는
아주 특이한 조성 취급을 받았던 조성.
아마도 모차르트의 c단조 대미사곡과
피아노 협주곡 24번 K.491과 같은 작품에서나
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인데,
(실제로 베토벤은 특히 후자인
c단조 협주곡을 매우 높이 평가했다고 전해진다)
베토벤은 젊은 시절부터,
그러니까 훗날 브람스에 의해 ‘발견’되고 초연된
“황제 요제프 2세의 서거에 바치는 칸타타”
WoO 87 (1791년)에서부터
이 글에서 다루는 Op.1-3을 비롯해
그의 생애 전반에 걸쳐
c단조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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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3중주 3번의
1악장을 좀 더 들여다보면,
악장의 지시어는 Allegro con brio,
교향곡 5번 ‘운명’의 1악장의 그 지시어다.
C - Eb - C로 시작하는 느릿한 주제의 제시에 이어
곧바로 짧은 3연음(8분음표 스타카토)에 이은
4분음표(+8분음표)의 음형을 확인할 수 있는데,
1악장 내내 이 리듬은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어떤 면에서는 훗날의 교향곡 5번,
이른바 ‘운명의 동기’인 따따따 따–, 를
연상시킨다.
듣기에 따라 제1주제보다도
훨씬 선명하게 다가오는 이 음형은,
사실 피아노 3중주 1번의
스케르초 악장에서도 인지할 수 있다.
이 음표들이 훗날 c단조 교향곡의
그 유명한 모티프들로 연결됐을 지로 모른다고
상상하는 것은 지나친 추측일테지만,
적어도 이 리듬이 베토벤의 작품세계에
초기부터 늘 머물러 있었고
때로 발전하고 변형되어
여러 작품에 등장한다고 보는 것이
지나친 억지는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이 음형이 사용된 또다른 대표적인 사례는
교향곡 1번의 4악장, 그리고
교향곡 3번 Eb장조 ‘영웅’의
‘장송행진곡’ 악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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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베토벤의 스승이었던 하이든은
Op.1으로 묶인 세 곡 중에서 특히 3번이
피아노 3중주의 전통에서 너무 벗어나
대중들이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고,
그래서 베토벤의 작곡가로서의 경력에
흠이 될 것이라 생각해 출판을 말렸다고 하며,
이를 두고 베토벤은 스승이 시기한다고 생각해
사제의 관계가 한동안 틀어졌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비평적으로도 상업적으로
매우 큰 성공을 거두게 되지만.
반면 에드먼드 모리스는 그의 책
“인간으로서의 베토벤”(프시케의 숲, 2020)에서
Op.1이 출판될 당시
하이든은 런던에 체류 중이어서
이 일화가 시기상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아마도 Op.2의 피아노 소나타 세 곡에 대한
후일담이 아닐까 추정하기도 한다.
(실제로 피아노 소나타 3번은
피아노 3중주 3번만큼이나 혁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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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사실의 여부를 떠나
이런 후일담이 생겨난 것이야 말로,
‘베토벤’이라는 전설적인 음악가의
첫 시작에 적합하지 않은가.
스승을 뛰어넘으려면
스승과 맞서야 한다, 당연하게도.
그럼으로써 낡은 시대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나가는,
헤르만 헤세 식으로 말하자면
알을 깨고 나오는 새와도 같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거장의 탄생을 알리는
베토벤의 결정적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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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피아노 3중주 3번 c단조는
1817년 베토벤 본인에 의해 현악 5중주로 편곡돼
1819년 출판(Op.104)되기도 하는데,
꾸준한 대중적인 인기에 바탕해
아마추어 작곡가였던 카우프만이
두 대의 비올라를 포함한 5중주를 위해
자신이 편곡한 악보를 베토벤에게 보내자
이에 대한 응답으로 편곡에 착수했다고
알려져있다.
베토벤 스스로
이 곡에 대해 만족하지 않았다면
편곡 작업에 손대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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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자면,
지난해 나온 트리오 소라(Trio Sōra)의
<피아노3중주 전곡 음반>(naïve)을 듣기 전까지
피아노 3중주 제3번이
이렇게 매력적인 작품이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젊은 연주자들어서 더 그렇겠지만
베토벤의 ‘con brio’의 진수가 느껴지는,
아찔할 만큼 밀어붙이는 연주.
섬세함에서는 잘 알려진 대가들보다
좀 모자란 듯도 싶지만,
젊은 시절의 베토벤의 작품에
이렇게나 젋음으로 충만한 연주도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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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3중주 3번의
전곡을 듣고 싶은 분이라면,
보자르 트리오(Baeux Arts Trio)의
녹음을 링크한다.
(아쉽지만 라이브 동영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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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함과 과감함,
신선한 감각의 조화를 겸비한,
아마도 21세기에 이 곡을 해석하는 연주의
전범이라 할 만한 수프라폰 레이블(2020)에서 나온
스메타나 트리오(Smetana Trio)의 연주는,
아쉽게도 인터넷에서 찾을 수 없었다.
다만 https://www.supraphon.com/album/577799-beethoven-piano-trios 에서
맛보기로 그들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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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http://www.lifesci.sussex.ac.uk/home/Chris_Darwin/WebProgNotes/pdfs/BeethovenPianoTrioOp1no3.pdf
https://bis.se/orchestras-ensembles/sitkovetsky-trio/beethoven-piano-trios-vol1
https://www.hollywoodbowl.com/musicdb/pieces/2858/piano-trio-in-c-minor-op-1-no-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