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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헨리 데이비드 소라 Jan 26. 2022

떡볶이도, 용기도 포기할 수 없어

용기 내미는 용기 가지기 

한 단어를 생각하면 고구마 줄기처럼 함께 튀어나오는 다른 단어들이 있다. 커피를 생각하면, 디저트-크로와상-크로플이 떠오르고, 자동차를 떠올리면 세차-엔진오일-기름값이 함께 머릿속에 자리 잡는다. 그러면 떡볶이는 어떨까? 튀김, 순대, 완벽한 조화 그리고 사랑. 


하지만 30년간 지켜온 '떡볶이=사랑'이라는 공식이 위기를 맞았다. 전투적으로 떡튀순을 흡입한 뒤 빵빵해진 배를 부여잡으며 벽에 기대면 그제야 내 눈에 들어오는 일회용 용기들. 떡볶이 국물과 튀김 자국으로 뒤범벅된 종이용기과 플라스틱 용기를 대충 구겨서 종량제 봉투에 구겨 넣곤 했다. 


예전에는 그저 버리기 바빴던 용기들을 찬찬히 살펴본다. 빛깔 고운 떡볶이를 담은 종이 용기. 이 종이 용기는 잘 씻어 말리면 재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 믿었는데 코팅된 종이는 일반 쓰레기로 취급된다. 그 종이 용기를 수차례 감싼 비닐랩도 씻어서 비닐로 분리배출할 수 있지 않을까…싶었는데 대부분 영업용 비닐랩의 재질인 pvc(가정용과 달리 좀 더 끄적하고 얇아 그릇에 착하고 잘 달라 붇는다)는 분리수거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비닐은 보통 폐기물 고형연료, 그러니까 한꺼번에 태우는 방법으로 재활용을 하는데 pvc 안에는 소금 성분이 들어있어 연료로 사용되면 보일러나 발전 시설을 망가뜨리기 때문이라고.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름다운 황금빛 자태를 뽐내던 튀김과 윤기 나는 순대. 그 음식들을 담아두었던 플라스틱 용기는 함께 딸려온 플라스틱 미니 칼로만 포장을 뜯을 수 있게 열 포장되어 있다. 음식물이 배달 중에 쏟아지지 않게 하려는 가게 사장님의 배려. 하지만 용기 테두리에 붙은 비닐을 깔끔하게 제거하기가 어렵다. 플라스틱과 비닐 접합 부분에는 기름과 떡볶이 국물이 스며들어 잘 씻겨지지도 않는다. 이러면 재활용이 또 힘들겠는데…


‘떡볶이=뒤처리 곤란=번거로움’이라는 새로운 공식이 생기게 될 즈음 생각보다 쉽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다회용이 가능한 유리나 스테인리스 용기를 가져가 음식을 포장해오면 되는 것. 처음에는 머릿속 고민만 한가득이었다. 


‘사장님께서 더 번거로우시려나?’ 

‘날 까다롭다고 보시려나?’ 등등등. 


그런데 내 예상보다 흔쾌히 응해주는 식당이 많았다. 정중하게 가져온 용기에 포장해주실 것을 요청드리니 되려 어떻게 이걸 가져올 생각을 했냐며 물으신다. 용기를 한번 쓰고 버리는 게 아까워서 가져왔다 답하니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리고는 서비스로 떡볶이 한 국자를 더 퍼주신다. 


뭐든지 다 처음이 어렵다. 용기(bowl)를 가져가서 좋은 피드백을 얻으니 용기(brave)도 함께 커진다. 처음에는 쭈뼛했는데 이제는 더 자신감 있게 물어보게 된다. 이후에 일이지만 동네 식빵 가게 사장님도, 반찬가게 사장님도 내가 가져온 용기를 환대로 맞아주셨다. 우리 모두는 어쩌면 자원이 선순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누군가가 만들어주길 원하는 건 아닐까? 일회용 용기나 비닐 포장을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 하는 사장님들도 한번 쓰고 버려질 포장재들을 아까워하셨다. 용기를 직접 가져가서 음식을 포장해 오는#용기 내 프로젝트는 판매자에게도 소비자에게도 좋은 아이디어다. 


생각해보면 배달 음식은 간편하지 않다. 손가락 하나로 주문할 수 있지만, 그 뒤에는 재활용이 어려운(그래서 소각 쓰레기가 될 가능성이 큰) 음식물 용기에 대한 책임과 비용이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오게 되니까 말이다. 나는 앞으로도 일회용 용기 배출을 줄이기 위해 더 자주 용기를 낼 예정이다. 떡볶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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