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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헨리 데이비드 소라 Jan 26. 2022

조용한 혁명

반찬가게 용기내_두 개의 목소리  

7억. 60살을 기준으로 20년간 검소하게 살아간다고 했을 때 필요한 최소한의 노후 금액이라고 한다. 100세 수명이라는데, 20년을 더 살게 되면 어쩌나? 나이 들면 병원비도 더 나올 텐데, 적어도 현금이 10억은 있어야 인간답게 늙을 수 있지 않을까? 10억을 모으려면 나는 얼마나 더 일해야 하는 거지? 이제 60살까지 25년이라는 남았다. 10억 나누기 25년. 1년에 4천만 원, 한 달에 300만 원, 하루에 11만 월을 쉬지 않고 모아야 한다. 숨이 턱턱 막힌다. 일하는 시간을 좀 줄이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쉽기 않겠다.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30대가 되었구나.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젊을 때 한 푼 더 벌어놔야 늙어서 덜 고생이지. 요즘 내 머릿속을 지배한 강력한 이데올로기다. 부모님의 경제적 파산 이후 그 강박은 내 내면 깊숙이 뿌리내렸다. '돈'이라는 방패막이가 더없이 필요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다행히 내가 하는 일은 생각보다 잘 풀렸지만 어딘지 가슴 한 구석을 찜찜하다. 내 시간을 일에 모조리 빼앗겼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일을 늘리기로 한 것은 내 선택이니 그러려니 하고 산다. 하지만 저녁식사를 요리할 시간을 내는 건 어림도 없고, 이미 다 만들어 놓은 반찬을 사러 갈 짬조차 없는 현실에서 '현타'를 좀 느낀다. 


이런 바쁜 일상에서 제로 웨이스트 신념을 지키기란 참 고되다. 한 번은 반찬 할 시간이 도저히 나지 않아 반찬가게를 가려던 참이었다. 대부분의 반찬가게는 플라스틱 용기 안에 미리 반찬을 소분해 담아둔다. 전시용으로도 좋지만 아마 위생적으로도 그게 더 좋으니 그렇게 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로 한 나는 미리 세척해 놓은 스테인리스 용기와 유리 용기를 챙겨가 사장님께 반찬을 담아 갈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았다. 사장님은 흔쾌히 응해 주셨다.


플라스틱 용기에 소분하기 전에 가야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창 조리 중인 아침 시간에 찾아가 용기를 미리 건네준 뒤에 반찬을 찾아올 생각이었다. 그날 오후 여유가 있었던 남편이 대신 반찬을 찾아왔다. 남편은 식탁에 반찬을 내려놓고 한참을 망설이다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앞으로 용기는 안 가져갔으면 좋겠어.’ 

‘왜?’

‘우리 반찬 용기를 둘 곳이 없어서 진열장에 넣어두셨더라고. 새로운 음식들 옆에 우리 반찬 용기가 있는 것도 좀 그렇고, 앞으로 용기를 가져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보관 장소 때문에 사장님이 곤란해질 거야.’


내 첫 마음의 소리는 ‘저게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야’였지만, 나는 남편의 의견에 귀 기울여 보았다. 플라스틱을 줄이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이라면 하고 싶지 않다는 게 요지였다. 일리는 있었다. #용기내 프로젝트가 방송이나 라디오, sns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반찬가게에 용기를 가져가면 사장님이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을 수 있다. 특히나 대부분의 반찬가게는 공간이 협소하다. 


내 반격은 이러했다. 


‘물론 그런 문제가 추후에 생길 수도 있어. 당신의 말도 이해해. 하지만 지금은 용기에 담아주시는 일이 큰 무리가 아니니 해주시는 것 아닐까?’


재반격이 이어졌다. 


‘그건 우리가 고객이니까 그렇지. 동네 장사하시는데, 게다가 플라스틱 줄이는 좋은 일 하겠다는 고객의 요구를 어떻게 거절해? 자기가 주인이라면 그럴 수 있겠어?’ 


‘물론 그런 부분도 있겠지. 하지만 어차피 진열장은 반찬을 보관하는 곳이고, 거기에 우리 반찬을 잠깐 보관해 두는 게 왜 문제가 되는 거야? 내가 다른 고객이라면 굉장히 멋지다고 생각할 거야.’ 


‘그건 자기 생각이지. 다른 집의 반찬 용기가 진열대에 함께 있다면 위생적으로 찝찝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 그러면 그 가게에 덜 가게 될 거라고 봐.’


한동안의 침묵이 이어졌다. 답답함과 서운함에 눈물이 차올랐다. 잠시 뒤돌아 마음을 가다듬었다. 합의 지점을 찾아야 했다. 이대로 내 주장을 굽히면 반찬가게 용기 내 프로젝트는 고꾸라진다. 동시에 함께 사는 남편의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용기 내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다른 제로 웨이스트 움직임에도 비협조적일 수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나는 남편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에 남편의 주장에도 귀담아 들어야 할 부분이 있다고 항상 믿는다. 한참의 설전 끝에 우리는 다음 사항에 동의했다.  


1. 조리 시간에 맞춰 방문해 바로 용기에 음식을 받아올 것. 
2. 조리 시간에 맞춰 갈 수 없는 경우에는 플라스틱 용기에 소분된 반찬을 구입할 것.
3. 그리하여 보관의 부담을 사장님께 전가하지 말 것. 
4. 여유가 있는 주말에는 음식을 직접 요리해 플라스틱 용기 사용을 줄일 것.


서로의 합의 사항에 만족한 뒤 우리는 각자의 일터로 다시 돌아갔다. 

사무실 의자에 털썩 앉는 데 불현듯 드는 생각. 


‘직접 해 먹을 수 있다면 이런 문제는 자연히 해소될 텐데. 하루 일과 중 내가 먹을 음식을 요리할 시간이 없는 게 정말 좋은 삶일까…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지금 상황에서는 이게 최선의 상황이야’라고 마무리 지으며 다시 일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버린다.


나는 제로 웨이스트라는 신념을 언제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 경제적 불안이 해소되고 나면 나는 내 시간을 찾을 수 있을까? 부모님 노후도 걱정되고 나와 내 남편 노후도 준비해야 하는데… 이렇게 계속 일만 하며 살아야 할까? 다른 삶의 방식은 없을까?


자꾸 조급함만 앞선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마음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우리 모두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한다. 중요한 것은 현실 속 불안과 욕망에 파묻혀 자신의 이상을 놓지 않는 것 아닐까. 내가 할 수 있는 여건 속에서 부단하게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며 그 지향점으로 함께 나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조용한 혁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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