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월 Aug 01. 2019

한일 무역 분쟁을 보며

포식자와 피식자

한일 무역 분쟁으로 갑작스레 온 국민이 반도체를 공부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반도체 생산 8대 공정을 구분하고 불화수소 가스의 순도와 쓰임새에 대해 열띠게 의견을 나눈다. 하지만 정작 일본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다. 매년 700만 명 이상의 한국인이 일본을 찾고 있지만 의외로 일본의 정치 역사 문화에 대해서는 다들 깜깜하다. 일본에 대한 지식이래야 기껏해야 일본의 정갈한 음식이나 관광지 정보 수준이다.

나 역시 너무나 일본에 대해 모르는 듯해서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일본회의의 정체]라는 책을 구입했다. 읽을수록 너무나 아베와 현재 일본 정치를 모르고 있었다는 당혹감이 든다. 예나 지금이나 그랬다. 벌써 30년이 넘은 과거지만 난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일본 정치 수업시간에 한국이 독립한 지 35년 이상 지났는데도 당시에도 일본에는 우리 정치인이나 재벌 등 한국 유력 인사들의 집안과 활동을 연구하는 학자가 200명이 넘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반면에 우리나라에는 일본의 정치 경제 인사들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며 개탄하던 교수님의 걱정이 기억난다.

난 그때 이를 전형적으로 포식자와 피식자의 문화 차이라고 이해했다. 사자는 평소 사냥할 얼룩말의 습성과 강약점을 열심히 연구한다. 얼룩말의 물먹는 시간, 달리는 습관, 후각과 시야의 범위 등등. 하지만 얼룩말은 제 발의 빠름만을 자신할 뿐 사자들의 사냥 특성과 강약점을 연구하지 않는다. 국가 간에도 똑같다. 제국의 역사를 가진 나라는 이웃 나라의 사정에 정통하기를 바라지만 약소국은 상대에 대해 눈과 귀를 막고 애써 무시하려고만 한다. 임진왜란(1592년) 전에 이미 일본은 조선의 지도를 만들어 침략을 준비했다. 하지만 조선이 스스로 전국지도인 대동여지도를 만든 것은 이로부터 250년이나 지난 1861년이다. 당연히 일본에 대한 지도는 조선 멸망 때까지 만들어진 적이 없다. 입으로만 일본 정벌을 떠벌였지 실제로 이를 준비했던 노력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제국주의가 엄습하는 급박한 국제 정세 속에서 기껏 대외 정책이래야 쇄국이었을 뿐이다. 마치 포식자를 피해 머리를 땅에 쳐 박는 타조 같은 태도였다.

우리는 주변에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에 둘러 싸여 있다. 이들 하나같이 모두 제국주의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당연히 포식자의 문화와 관점을 체득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평소 면밀히 상대를 관찰하고 정보를 모으는 일에 열심이다. 이는 우리가 포식자 사이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꼭 배워야 할 중요한 습성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국인 미국에서의 트럼프 당선을 예측 못한 것이나, 일본의 이런 무역 도발에 대해 사전 정보 파악을 못한 것은 아직도 우리가 피식자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평소 상대를 관찰 분석하지 않고 관념적으로 국제 관계를 해석하고 예상하는 것은 피식자들의 공통된 오류이다. 그중 최악은 힘의 논리가 압도하는 국제관계에서 스스로 자신의 얄팍한 지식과 이론의 포로가 되는 일이다. 최근 국제법 운운하며 오히려 일본의 입장을 두둔하고 그들 편에 서서 내부에서 매국적 언동을 일삼는 나약하고 어설픈 지식인들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작가의 이전글 밥하지 않는 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