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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Mar 12. 2024

3월 4일

<만들어진 예수 참시람 예수>를 읽고 또 권하며

신이 있어야 세상이 설명된다는 생각에서 창조주와 심판의 주를 인정하겠다고 3년을 생각한 뒤, <성경은 사실이다>라는 책을 읽고서야 교회에 발을 들여놓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에 대해, 신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지’라는 생각으로 의문을 덮었다. 그리고 나야말로 성경을 문자 그대로 옳다고 믿었고 교회에서도 그렇게 가르쳤다. 

그런 내가 성경의 문자와 교회의 가르침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파악할 수 없음을 부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순진하고 무지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게다가 심리학을 접하고, 인간의 변화가 기도 아닌 이해와 관계 안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경험하면서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오직 기도하는 사람을 변화시키며, 성경은 유일한 진리가 아니며, 다른 여러 학문과의 관계 안에서 그 의미가 발견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2008년 IVP가 발행한 톰 라이트의 <악의 문제와 하나님의 정의>를 읽으며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다만 대속을 위한 죽음만은 아니다’라는 내용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과감하게 예수의 죽음이 대속의 죽음이 아니라고 정리했다. 대다수의 교회와 교우들이 믿는 예수의 대속적 죽음을 부인하게 된 것이다. 일단 ‘대속의 죽음’이 낳는 폐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예수는 스스로 옳게 여기는 대로 살았고, 그 결과로 다가온 십자가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나는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예수가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의 아들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평범한 인간이지만 세상이 받아들이는 관념에 따라 살지 않고, 자연을 향해, 더 큰 존재를 향해, 초월을 향해 개방된 마음에 들려오는 양심에 따라 옳게 사는 참사람답게 살아낸 참사람이라고. 그렇기에 우리도 평범했으나 높은 경지에 오른 그분을 따를 수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우리의 신앙은 가능하다고. 만약 예수가 신의 아들로, 신이기에 복음서에 나타난 삶을 살아내셨다면, 우리는 당연히 그분처럼 살 수 없고, 당연히 그분의 죽음 뒤에 숨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게 된다. 그러니 내게는 보통 사람 예수의 삶이 더 의미 있는 삶인 것이다.




이후 위드에서 출판한 로이드 C 더글라스의 <갈릴리 큰 어부> 1, 2, 3을 읽었고, 비로소 부활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그를 본 사람이라면 그분을 절대로 잊을 수 없다. 그래서 그를 본 사람이라면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분은 그를 만난 이들의 가슴에 살아남아 그들을 움직이게 한다. 예수가 살아낸 그 삶을 따르게 된다. 예수는 그들의 마음에 살아계신다. 그러므로 나는 성경이 기록한 육체의 부활을 의심한다. 따라서 문자주의와 교회의 교리들을 부정하고 인간 예수와 아직 제대로 알 수 없는 초월을 향해 생각과 마음을 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성경은 신화로 덮여있다는 걸 알면서도 어느 부분이, 어느 만큼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에 나타난 예수의 불일치도 해결할 수 없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이가 문자주의를 거부하면서도 성경에 기록된 많은 부분을 여전히 사실이라고 믿을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 전후를 중심으로 한 예수의 행로, 예루살렘 입성과 노상에서의 무화과나무 저주사건, 성전 정화사건, 은 30과 가룟 유다의 배신, 예수의 옷 제비뽑기, 로마 백부장의 고백, 갈라진 성전 휘장, 돌무덤, 부활과 승천, 그리고 동정녀 탄생을 비롯한 다양한 기적들. 




<만들어진 예수 참사람 예수>가 지적하고 설명해주는 부분들을 읽으며 내가 아는 부분과 몰랐던 부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비록 1세기의 세계관에 의해 기록되었지만, 예수처럼 살아내고도 결국은 십자가에 처형당한 스승을 해석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 제자들. 구약의 예언서에 연결 지어 구약의 성취라는 해석과 회당 예배 안에서 지켜지는 절기 안에 예수의 삶과 죽음을 안치시켜 모든 절기의 예수로 만든 제자들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예수에게서 본 것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 능력>

_   존 쉘비 스퐁


그를 보라!

그의 신성을 보지 말고, 

오히려 그의 자유를 보라.

그의 능력에 대해 부풀린 이야기를 보지 말고,

오히려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그의 무한한 능력을 보라.

그를 에워싼 1세기 신화를 보지말고,

오히려 그의 존재와 용기, 그의 삶과 능력 그리고

그의 사랑의 감화력을 보라.

당신은 그 광신적 탐구를 중단하라!

잠잠하고 이것이 하나님임을 알게 하라.

이 사랑, 

이 자유,

이 생명,

이 존재,

그리고

당신이 받아들여질 때 당신 자신을 받아들이라

당신이 용서받을 때 자신을 용서하라

당신이 사랑받을 때 당신 자신을 사랑하라

그 그리스도 능력을 붙잡으라.

그리고 담대하게 당신 자신이 되라!

나느 이것이 하나님, 곧 내가 그 심오한 인간 예수에게서 만난 

하나님으로 향하는 좁은 길이라고 믿는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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