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드라마] tvN 주연_김고은, 안보현, 박지영
질문을 하고 싶다. "평소에 카톡 프로필을 잘 바꾸는 편이신가요?"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과 상태 메시지는 가장 은밀하지만 가장 공개적으로 나의 상태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다. 카톡이라 함은 자고로 오랫동안 연락 안 한 친구의 결혼 소식을, 연애가 막 끝난 친구의 실연을, 회사로 스트레스를 받는 친구의 분노를, 여행을 추억하고 싶은 마음을, SNS라는 걸 귀찮아하는 사람의 성향을 알 수 있는 곳. 아무리 SNS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카톡은 하니까.
소식을 전하고, 감정을 표출하는 이런 멀티 플레이어 카톡에서 요즘 나의 상태를 나타내고 있는 사진은 것은 다름 아닌 세포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의 세포들. '유미의 세포들'은 유미라는 사람의 상황, 감정, 행동 등 뇌가 하는 기능을 살아있는 세포들이 대신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배고플 때 출연하는 출출세포부터 일할 때 열심히 맷돌을 굴려주는 이성세포 등 상태와 행동을 결정하는 세포들. 옷을 고르는 패션세포, 팩을 하고 싶어 하는 세수세포처럼 상황을 나타내는 세포들. 안 좋은 일이 일어날까 싶어 걱정하는 불안세포, 사람의 모든 감정을 느끼는 감성세포처럼 심리적인 부분을 결정하는 세포들까지. 매우 세분화 돼 있다. 이런 다양한 세포들 중에서도 사람마다 가장 특화된 세포가 있는데 이런 세포를 프라임 세포라고 부른다. 유미의 경우 프라임 세포는 사랑세포다.
사실 '유미의 세포들'은 이미 유명한 웹툰이고, 많은 굿즈와 제품, 오프라인 전시회까지 열었고 OSMU(one source multi-use) 끝판왕으로 이번에 드라마화 됐다. 웹툰을 잘 안 보던 나조차도 재밌게 봤던 웹툰인데 드라마화가 된다고 했을 때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다. '킬링 포인트인 세포를 짜치게 만들면 어쩌지'라는 마음에 걱정했다. 김고은, 안보현의 캐스팅 소식과 싱크로율 200%로 같은 스틸 컷을 봐도 여전히 불안했다. 배우들은 연기 잘하겠지. 그런데 우리 세포님들은!! 2D의 만화영화를 만들려나, 어린 배우들 쫄쫄이 입혀 크로마키 딸려나, 어색한 3D로 이도저도 안되게 만들면 어떡하지.
하지만 이런 걱정은 첫 하이라이트를 보고 사라졌다. 너무나 잘 구현된 세포마을에 한 번 놀라고, 세포들을 찰떡으로 표현해줄 기라성 같은 성우들의 총집합. 나중에 드라마가 시작된 후에는 배우들의 연기 파트가 아니라 세포 마을을 더 사랑하게 됐고, 세포들이 나와 내 마음의 소리를 대신해 줄 때마다 화면 녹화를 하며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바꾸고 있다. 예를 들어 명상세포의 "될 대로 돼라", 집안일세포의 "오늘도 하기 싫다" 같은.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한 세포는 이성세포다. 어쩌면 ESTJ인 극한의 계획, 이성형인 성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유미를 소개하는 내레이터이자 유미가 잠에서 깬 순간부터 잠들기 전까지 가장 많은 일을 하는 세포. 나는 이성 세포를 aka. 일중독세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미의 프라임 세포인 사랑세포가 실연으로 인한 혼수상태일 때 세포 마을을 지탱해준 세포가 바로 이성 세포다. 이런 이성세포의 책임감, 명철함, 판단력이 어쩌면 부러워서 더 마음이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런 사람이 되는 걸 동경해서 원하는 걸지도.
하지만 이런 이성세포도 머리에 꽃을 달 때가 있다. 소이 우리가 말하는 이성의 끈을 놓은 상태. 뭔가 심각하게 망한 상황에서 이성세포는 머리에 꽃을 달고, "망했네, 망했어"라며 웃으면서 다닌다. 사실 이 상태가 가장 좋다. 열심히 일하던 사람의 허점을 본, 인간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포인트 같은 부분이라서 친근하다. 그리고 망한 이성세포의 짤은 드라마가 끝난 지금도 꽤 긴 시간 내 카톡 프로필을 차지하고 있다.
정말 좋아하는 작품을 망칠까 봐 노심초사 걱정했던 포인트에서 그 어떤 드라마에서도 느낄 수 없는 매력을 느끼다니. 하지만 이 매력은 나만 느꼈는지 화제성에 비해 생각보다 낮은 시청률로 '유미의 세포들' 기존 팬덤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모여서 '유미의 세포들' 이야기 밖에 안 한다. 구웅의 심쿵함과 각자의 최애세포를 공유하고 죽었을 것만 같은 세포를 이야기하며 즐거워한다. 그리고 나는 요즘 만나는 사람들 중 '유미의 세포들'을 본다면 꼭 이렇게 묻는다. "네가 생각하기에 너의 프라임 세포는 뭐 일 것 같아?"라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는 없어. 하지만 눈으로 볼 수는 있잖아. <유미의 세포들 4화. 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