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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by 안나
요가, 출처:amandaoleander

이냐시오! 요가를 한지 벌써 11년째다.

처음 시작은 한 주에 5회, 지금은 한 주에 2회면 족하다. 요가가 참 좋은 수련인데, 다른 운동을 하느라 요가 수업은 뒷전으로 물러났구나.


11년이면 엄청난 동작들을 할 수 있을 것 이라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여전히 나는 비기너이다. 사실, 몸을 과하게 스트레치 하는 것도 너무 귀찮고, 뭔가 온 정성을 쏟아 찬란히 발전되는 것을 극하게 귀찮아 하는 성향(?)이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누구나 그렇듯 머리가 빠지도록 고민해야 하는 일들을 너무 빈번히 하면, 요가나 다른 운동 만큼이라도 스트레스 안 받고 물 흐르듯 편안하고 천천히 꾸준히 하고 싶다.


최근에, 수련을 하러 갔다가 누군가 그러더라.

“참 오래 다니셨는데 다른 분에 비해 많이 느리시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들었는데 사실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그리고 나서 머릿속에 갑자기 “1) 내가 왜 너로 부터 평가를 받아야 하냐? 2) 오래 다닌 것과 능력의 상관성? 3) 나도 남과 나를 비교 안하는데, 왜 네가 나를 남과 비교하나? 4) 내가 경쟁하려고 여기에 와있나?” …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나도 정말 유치하지? 사실 유치한 줄 알면서도 내 마음이 단단히 서운했나보다. 사실을 말 한 것일텐데, 왜 항상 사실은 받아드리기가 힘든 걸까?

명상, 출처: amandaoleander

요가를 하는 궁극적 이유는 명상이다.

예전 같으면 명상도 매일 했다. 그런데, 지금은 명상도 잘 안한다. 내가 걷는 일상이 명상이라고 우기면서 말이다. 명상을 하면 사실 몸도 마음도 많이 가벼워 진다. 오래전 프랑스에서 틱낙한 스님을 알게 된 후 mindfulness 명상을 하였다.

소록도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방 출처: 네이버 검색

몇년 전, 나는 소록도로 가야만 했다.

가는 길이 너무 멀어 운전을 하면서도 숨이 넘어갈 지경이였다. 그런데 소록도에 가까워질 수록, 너무도 그 곳에 머물고 싶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할머니가 계셨던 곳으로 나도 가고 싶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할머니, 출처: 네이버 검색

모든 사람들은 나를 위로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소록도에 남아계신 한센병을 앓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내 마음을 알아줄 것 같았다. 그래서 인지, 그들을 보고만 있어도 감당할 수 없는 서러움이 복받쳤다. 미사를 같이 드리고, 성시간에는 함께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체찬미가를 읽었다.


성 토마스의 성체 찬미가

엎디어 절하나이다.

눈으로 보아 알 수 없는 하느님,

두 가지 형상 안에 분명히 계시오나,

우러러 뵈올수록 전혀 알 길 없삽기에

제 마음은 오직 믿을 뿐이옵니다.

보고 맛보고 만져봐도 알 길 없고,

다만 들음으로써 믿음 든든해지오니,

믿나이다. 천주 성자 말씀하신 모든 것을.

주님의 말씀보다 더 참된 진리 없나이다.

십자가 위에선 신성을 감추시고,

여기서는 인성마저 아니 보이시나,

저는 신성, 인성을 둘 다 믿어 고백하며,

뉘우치던 저 강도의 기도 올리나이다.

토마스처럼 그 상처를 보지는 못하여도,

저의 하느님이심을 믿어 의심 않사오니,

더욱 더 믿고 바라고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성사여,

사람에게 생명 주는 살아 있는 빵이여,

제 영혼 당신으로 살아가고,

언제나 그 단맛을 느끼게 하소서.

사랑 깊은 펠리칸, 주 예수님,

더러운 저, 당신 피로 씻어 주소서.

그 한방울만으로도 온 세상을

모든 죄악에서 구해 내시리이다.

예수님, 지금은 가려져 계시오나

이렇듯 애타게 간구하오니,

언젠가 드러내실 주님 얼굴 마주 뵙고,

주님 영광 바라보며 기뻐하게 하소서.

아멘.

마리안느와 마가렛 할머니의 글, 출처: 네이버

오직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아무것도 없이 오스트리아에서 소록도를 찾아온 두 명의 소녀가 할머니가 되도록 그 곳에서 살았다. 부모로부터 격리된 아이들에게 직접 우유를 만들어 먹이고, 아침마다 성호경을 그어주며 아이들의 안전과 행복을 빌었다. 전염이 될 것이라고 환자들을 격리시키던 시절, 할머니들은 직접 맨손으로 환자들을 몸과 마음을 모두 치료했다. 자신들의 몸이 쇄약해지자, 사람들에게 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마리안느와 마가렛 할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조용히 가방 하나만 들고 소록도를 떠났다. 그 날은 소록도 전체가 모두 울었다.

소록도에 다녀온 후, 몸도 마음도 많이 편안해 졌다. 소록도 주임 신부님께도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천사의 섬 소록도였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하신 말씀이 오늘 따라 더 생각이 많이 난다.


당신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당신만 울고, 당신의 주위의 모든 사람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당신 혼자 미소 짓고,

당신 주위의 모든 사람이 울도록 그런 인생을 사십시오.​ -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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