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어린이도서관만들기 기록 11.
2007년 5월 30일(수)
안찬수 선생
안찬수(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의 사무처장) 선생이 왔다. 깨어있는 시민, 성찰하는 인간, 생각하는 사회를 강조하며 ‘좋은 사회'를 만들려는 시민운동을 하는 단체소개가 잠깐 있었다. ‘기적의 도서관'을 지어 오고 있는 ’책읽는사회‘는 2003년부터 지금까지 순천, 제천, 진해, 제주 등, 총 9개 기적의 도서관을 건립했다. 첫 회는 불우이웃 돕기를 하고, 두 번째부터 도서관짓기를 시작했다. 기적의 도서관은 민관협력의 새로운 모델로 현재는 정읍에 만들어지는 중이라고 한다.
책읽는사회는 또 영유아를 위한 북스타트 사업을 벌이고 있다. 책읽는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고 지역도서관의 이용률을 증가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있으며, 독서문화를 확대하기 위한 각종 토론회, 정책포럼, 교육지원, 프로그램 제작과 홍보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엄마들은 원래 가방이 2개였다. 한개는 일터가방, 또 하나는 기저귀가방이다. 기저귀가방이 커지면서 엄마의 가방은 1개로 줄어들었다.' 엄마의 육아 부담이 일터 가방을 내려놓게 한 것이다. 책읽기(Reading Book)와 책나눔(Sharing Book)은 아이들을 키우는 지혜를 사회적으로 나누고, 이곳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한다.
안찬수 선생이 가방 속에서 책 한권을 꺼냈다. 붉은 점 하나가 그려져 있는 작은 그림책이다. 그 점 안에는 정말 ‘점'이라는 글씨가 써 있다. 책장을 넘기고 천천히 그림책을 읽는 안선생에게 반디들의 몸과 마음이 집중됐다.
그림책 <점>을 반디들에게 읽어주는 안찬수 선생
*그림책 <점>
<<미술 시간은 벌써 끝났지만
베티는 꼼짝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있었어요.
도화지는 하얀색 그대로였지요.
미술 선생님은 한참 동안
하얀 도화지를 들여다보더니 말씀하셨어요.
"와! 눈보라 속에 있는 북극곰을 그렸네."
"놀리지 마세요! 전 아무것도 못 그리겠어요!"
베티가 대답했어요.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셨어요.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한번 시작해 보렴.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봐."
베티는 연필을 잡았어요.
그리고 도화지 위에 힘껏 내리 꽂았어요.
"여기요!"
선생님은 도화지를 들고
한참을 살펴보셨어요.
"음······."
그리고 도화지를 베티 앞에 내려놓으며
조용히 말씀하셨지요.
"자! 이제 네 이름을 쓰렴."
베티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어요.
"그러죠, 뭐. 그림은 못 그리지만,
내 이름 정도는 쓸 수 있다고요!"
일주일 뒤 미술 시간,
베티는 선생님 책상 위에 걸린
액자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번쩍거리는 금테 액자 안에는
작은 점 하나만 있었거든요.
베티가 내리꽂았던 바로 그 점 말이에요.>>
우리나라 부모나 선생님이 그림책에 나오는 미술선생님처럼 아이가 아무것도 그려내지 못한 하얀 도화지를 얼마나 ‘한참 동안' 들여다볼 수 있을까?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한번 시작해보라'고 말하기 전에 마음은 불편해지면서 잔소리를 하거나 화를 내지 않을까 싶다.
미술선생의 부드러운 말에도 베티는 ‘도화지 위에 힘껏 내리꽂'는 폭력의 반응을 보인다. 선생님 책상 위에 걸린 ‘액자'가 상징하는 건 존중감의 표현이다. 아이를 올려다보기, 즉 존중감이다. 아무것도 못 그리겠다던 베티의 마음이 여기서 움직인다. 물론 ‘한참동안'의 기다림이 아이에게는 힘든 고통의 순간일 수도 있다.
<<"흥!
저것보다 훨씬 멋진 점을
그릴 수 있어!"
베티는 이제껏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
수채화 물감을 꺼냈어요.
그리고 점들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베티는 그리고 또 그렸어요.
노란 점.
초록 점.
빨간 점.
파란 점.
베티는 파란색과 빨간색을 섞어 보았어요.
이제 보라색 점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베티는 쉬지 않고 여러 가지 색깔로
작은 점들을 아주 많이 그렸어요.
"작은 점을 그릴 수 있으니까
아주 커다란 점도 그릴 수 있을 거야."
베티는 넓은 도화지에 큰 붓으로
여러 가지 색을 섞어 커다란 점을 그렸어요.
심지어는 색칠을 하지 않고서도
커다란 점을 만들었지요.
얼마 후, 학교에서 미술 전시회가 열렸어요.
베티가 그린 점들은 인기가 대단했어요.
전시장에서 한 아이가
베티를 계속 쳐다봤어요.
"누난 정말 굉장해!"
나도 누나처럼 잘 그렸으면 좋겠어."
"너도 할 수 있어."
베티가 말했어요.
"내가? 아니야, 난 정말 못 그려.
자를 대고도 선을 똑바로 못 그리는 걸."
베티는 빙그레 웃었어요.
그리고 하얀 도화지를 그 아이에게 건넸어요.
"한번 그려 봐."
선을 긋는 아이의 연필이 흔들렸어요.
베티는 그 아이가 그린 비뚤비뚤한 선을
한참 바라보더니 말했어요.
"자! 이제 여기 네 이름을 쓰렴." >>
베티는 이제껏 한 번도 써 본적 없는 ‘수채화물감'으로 점들을 ‘그리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갖고 있는 기본재료, 주인공 베티가 물감을 찾아내듯이, 그것이 언어든 물감이든 무엇이든지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기 발견을 하는 순간이다. 이렇게 될 때까지 교사와 학부모는 기다려줘야 할 것이다.
‘나도 누나처럼 ~ 너도 할 수 있어.' 여기서부터는 아이들 세계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소통을 만들어 내고 성장해가는 모습이다. 베티는 벌써 스승이다. 아이들끼리 스승이 되고 제자가 된 것이다. 책읽는사회는 바로 이러한 광경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목표일 것이다.
‘우리는 도서관을 슈퍼마켓 가듯이 갈 수 있어야 한다.' 국립미술관이나 박물관에는 돈을 내고 들어간다. 이미 우리가 낸 세금으로 운영하고 있긴 하지만. 도서관은 문턱이 없다. 돈이 없다고 책을 못 읽거나 교육을 못 받는다면 잘못된 사회이다. 정보와 지식의 평등에 써비스를 하는 곳도 도서관이다.
우리나라는 주로 산꼭대기 공기 좋고 조용한 곳, 주차장 시설이 준비된 곳에 도서관이 있다. 그곳엔 누가 가는가? 도서관은 시내 건물이 들어선 곳, 주민들의 발길이 잦은 곳에 주민의 서재로 쓰여 져야 한다. 도서관 건립은 시민들의 당연한 권리이다.
문화관광부 2005년 8월 보도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국민 1인당 공공도서관의 장서는 한권도 안 되는 0.56권(2001년 기준)으로 다른 나라의 평균 2.8권에 견줄 때 아프리카와 비슷한 부끄러운 수준이다.
미국 한인타운에는 사람들은 많은데 도서관 이용률은 아주 저조하다. 그래서 예산이 적게 배분될 수밖에 없다. 미국 시애틀에는 3가지 자랑이 있다고 한다. 보잉사와 스타벅스 1호점이 있다는 것, 그리고 도서관이다. 씨애틀 중앙도서관은 관광상품으로 도시 한 복판에 있으며 아이들에게 자기발견을 할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곳이다.
도서관을 산꼭대기로 올려 보내는 일이 없도록 정치인들의 정책에 관심을 갖고, 도서관 건립의 정당한 권리의 인식이 필요하다. 마을을 만들 때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초등학교와 병원, 도서관이다. 도서관, 하면 시험공부나 고시공부로 모여드는 곳이 아니라 <점>의 베티처럼 관계를 만들어가야 할 곳이다.
* 나누기
강의를 듣고 반디들의 나누기가 있었다.
- 책 읽는 문화를 늘려나가야 하고, 주민욕구조사를 하면서 다양하고 깊이 있는 것 들을 사람들에게 물어볼 수 있겠다.
- 산꼭대기에 올라가는 도서관은 주민들의 생활과 현실과 거리가 멀고 우리 주거와 거리가 가까운 데 있어야 한다.
- 공동육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도서관이 아쉽다. 저소득층과 생활보호대상자들이 많이 사는 우리 동네는 지역적으로 문화적인 욕구가 아쉽다.
- 기적의 도서관이 주민의 발로 뛰며 있는 건물을 활용하는 어린이도서관에 비교해서 건물을 다시 세워야 하는 부담이 있는 것 같다. 그게 옳은가?
- 우리 스스로 하지 못하고 외적인 조건에 내가 들어갈 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 어린이도서관 설립과정과 일맥상통한 점은 있지만, 공공도서관을 내세우면서 민간도서관 설립이 무척 어렵다는 말에 우리는 큰 부담을 느낀다.
(*)‘반딧불터 생활규범'을 함께 읽고 각자 헤어졌다. 오늘따라 우리의 생활규범을 읽는 목소리에 마을도서관 설립의 현실여건이 쉽지 않다는 말과 이에 더불어 긴장감도 따라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