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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토 May 14. 2024

오후 3시, 책 읽어주는 아줌마를 기다린다!

마을어린이도서관만들기 기록 15. 

2007년 6월 5일(화)


"재미있는 책을 먼저 읽을까요, 분위기 있는 책을 먼저 읽어 줄까요?"

"재미있는 책이요~"


 

                                          어른들도 재미있어하는 그림책읽어주기.



강영미씨가 책 <똥떡>과 <프레드릭> 두 권을 손에 들고 모여있는 반디들에게 물었다. 반디들은 모두 어린아이같은 마음으로 재미있는 책읽기를 기대했다. 
어린이도서관에 온 아이들 마음이 바로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강영미씨가 책을 읽자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앞으로 모였다.

                                                 이야기 속으로 쏙 들어가게 해요.



유성구 전민동 모퉁이 어린이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대전동화읽는 어른모임에서도 활동하는 강영미씨는 집에서 내 아이에게 책 읽어주기를 하다가 용기를 냈다. 도서관에서는 아이들이 책읽어주는 ‘선생님'으로 부른다는데, 아무리 ‘아줌마'라고 알려줘도 아이들은 한사코 선생님이라고 부른단다.



책읽어주기를 처음으로 했던 2004년부터 ‘모퉁이' 공간을 활용하며 책읽어주기를 시작했던 2004년부터 그녀는 계획과 진행을 도맡았다. 책 읽어주기는 처음 엄마들 4명이 의기투합하면서 준비모임이 꾸려졌다. 그 과정에서 ‘제 발등을 제가 찍었다'는 말로 어려움과 보람을 같이 느꼈다. 공부가 안 된 상태에서 도서목록을 선정하고 우리나라 그림책과 외국 그림책을 각각 50권씩 골랐다. 그러면서 외국 그림책의 다양한 종류와 양이 많은데 비해 우리나라 그림책은 그다지 많지 않아 선정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책읽어주기 엄마모임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오후 3시가 되면 아이들이 모이든, 모이지 않든 자리를 지켰다. 그러면서 진행하는 과정을 낱낱이 기록했다. 지금 살펴보면 어떤 일들을 거쳐왔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자료화된 기록을 보면서 계획한다고 한다. 기록이 귀중한 보물이 된 것이다.



‘책읽어주기 활동기록부'에는 날짜와 시간, 책읽은 사람, 대상과 인원, 그날에 읽은 책과 아이들 반응, 책읽은 사람의 느낌이나 어떤 말이던지 하고싶은 말 따위를 책을 읽어준 엄마들이 쓰게 했다. ‘하고싶은 말'에는 아이들 반응을 보면서 "책을 재미없게 읽어줬나보다."라는 말로 책읽어주는 엄마의 의기소침한 모습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단골로 오는 어린아이가 팔에 깁스를 하고 나타나 놀랍고 반가웠지만 안타까웠다."고 엄마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강영미씨는 ‘그림책을 읽다가 눈물을 흘렸던 일은 나에게도 놀라운 일이었다'고 한다. 요즘은 책읽어주기가 도서관에서 뿐만 아니라 시설이나 병원에서도 유행처럼 번지는 것 같다.



책읽어주기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도 필요하다. 두꺼운 책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처음에만 읽어주고 아이로부터 시도하게 할 수도 있다. 책읽어주기의 원칙이 있다면, 책을 읽어주는 엄마들이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건 도서관에 와서는 아이들을 웃는 얼굴로 대하고 아이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다. 아이들은 집에서 있었던 얘기들을 많이 하고 싶어 한다.


수단이나 교훈으로 활용하는 책의 강요는 지루하고 재미없으니 하지 말아야 한다. 독후활동은 자연스럽게 하며 ‘이벤트'식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굳이 지적해서 알려주지 않는다. 아이들을 오랫동안 지켜보겠다는 생각이 책읽어주는 엄마들에게 필요하다. 아이들을 만나기 전, 준비를 할 수록 자신감이 생긴다는 말도 덧붙였다.



책읽어주기 엄마모임이 지금까지 그만두지 않고 올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을까? ‘선생님 책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엔 내가 갖고 오는 책을 꼭 읽어주세요.' 아이들의 이런 말은 책읽어주기 엄마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기운을 북돋게 한다. 책을 읽어주는 사람의 상황에서 내 스스로 재미나 관심이 없어도 듣는 어린이들은 자기 관심사이기 때문에 잘 새겨듣는다.




            <프레드릭>을 읽는 강영미씨의 맑고 편안한 목소리가 듣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집중시켰다.



‘······자 눈을 감아봐 햇살 따뜻한

눈송이는 누가 뿌릴까? 날을 저물게 하는 건 누구일까?

프레드릭 넌 시인이야

나도 알아······'


이 책을 다 읽어주자 한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와,정말 감동적이다."


책을 읽어주는 ‘아줌마'와 아이가 서로 눈을 맟추고 바라보는 그림이 절로 떠오른다.



                                                 '전래놀이'로 몸을 풀어요!



강영미씨가 준비해 온 책들은 반디들이 돌아가면서 살펴보고, 단순하지만 할수록 재미를 더하는 전래놀이를 했다. 둘이 손을 마주잡고 노래를 같이 부른다. ‘도깨비야~, 왜불러~, 어디가~니, 조~기(저기), 뭐하러~, 씨름하러~, 어떻게, 요렇~게.' 노래는 한 발씩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리듬을 타며 부르다가 끝 부분의 ‘요렇~게'가 끝나면 머리를 똑같이 숙이면서 한바퀴도는 것이다. 한 번씩 할 때마다 찌뿌드한 몸이 말끔해지는 기분, 아이들도 어른도 신난다.

                                                      강영미씨가 준비해 온 그림책들



<소설처럼>의 한 부분을 읽으면서 강영미씨의 강의가 마무리 되었다. 글은 내내 반디들의 마음에 크게 울렸다.


"책을 읽어주는 것은 선물과도 같다.

읽어주고 그저 기다리는 것이다.

호기심을 우격다짐으로 강요하기보다는, 일깨워주어야 한다.

읽고 또 읽어주면서, 아이들의 눈이 열리고 아이들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차리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머잖아 곧 의문이 생겨나고, 그 의문이 또다른 의문을 불러오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말아야 한다."

<소설처럼> 다니엘페나크 글/문학과지성사 가운데서.



*욕구조사 보완과 모둠토론


                                                           다함께 체조.



‘함께 나누는 기쁨과 슬픔 함께 느끼는 희망과 공포 이제야 비로소 우리는 알았네 작고 작은 이 세상 산이 높고 험해도 바다 넓고 깊어도 우리 사는 이 세상 아주 작고 작은 곳'


김성훈 반디의 진행으로 ‘작은세상' 노래를 부르고, 체조와 서로 주물러주기로 몸을 풀면서 잠시 명상에 잠기는 시간도 가졌다. 그는 <희망의 교육학> 파울로 프레이리,(원래의 책 제목은 <페다고지>)를 반디들에게 권하며 ‘이런 철학에 근거하여 도서관 사업도 할 것'임을 말했다.



                                                          진행하는 김성훈 반디.



우리는 지난번 마을어린이도서관 주민욕구조사 발표 이후, 어떤 내용을 더 보완하고 고쳐나가야 할지를 모둠별로 모여 토론했다. 설문을 만들어서 주민들에게 다가가며 나누었던 얘기들이 모였다.



설문의 내용은 ‘방과후 아이들의 노는 시간을 어떻게 지내는지'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을 이용하는지, 이용한다면 얼마나 자주 이용을 하는지 또 없다면 어떤 이유에서 이용하지 않는지' ‘마을에 어린이도서관이 생긴다면 어떤 것을 기대하는지' ‘우리동네에 살면서 불편하거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이었다. 주민들은 설문내용을 읽어가며 일일이 자기 생각을 써야하는 ‘불편'이 있었고, 주민들이 어린이도서관에 관심을 보이며 되 물어오는 질문들을 정리해보았다.



주민들이 당장 궁금해 하는 것은, 도서관을 만드는데 필요한 ‘돈은 어떻게 구하는지(마련하는지), 도서관이 있는데 또 무슨 도서관을 만들려고 하는지'를 묻기도 했다. 찾아간 반디들에게 ‘어디에서 온 사람들(소속이 어딘지)일까' 등도 궁금해하는 관심거리였다.


   
주민들이 생각하고 써야하는 주관식 설문에서 객관식 설문이 될 경우, 문항자체에 내가 원하는 것이 없을 때는 난감하다. 그리고 마을어린이도서관에서 나오고 있는 소식지를 홍보지로 쓸 때, ‘이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한다. 주민을 만나기 전, 질문의 답을 몰라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지역에 대한 조사를 먼저 해야한다. 주민욕구조사를 하면서 우리가 만들었던 설문의 내용보다는 주민들에게 먼저 물어봐야할 내용들을 잘 알 수 있었다.



                                                          주민욕구조사 모둠토론.





김성훈 반디는 다시 ‘파울로 프레이리'의 <희망의 교육학>을 얘기하면서 ‘은행예금식 교육'과 ‘대화식 교육'에 대해 말했다. 은행예금식 교육은 교육을 받기 전에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 방식은 암기를 위주로 한 주입식교육으로 일방적이고 수동적이다. 교육의 획일화와 종속상태의 교육으로 교사의 가치관과 교사역할에 중점이 이루어져 있다. 브라질은 이렇게 주입식의 미국 교육을 따오면서 바보가 되고 있다는 이론이 나오고 있다. 이점에서 기존의 교육관과 달리 프레이리의 교육은 ‘희망'을 찾는 교육관이다.



대화식교육에는 교육을 받는 학생들 의외의 대답을 통해 교사가 새롭게 변하고, 서로 평등·변화 발전되는 방식의 교육이다. 학생들의 의견을 자주 묻고 무엇이 다르고 달라져야 하는지, 끊임없이 대화를 지속시키는 과정에서 학생과 교사 두 의견이 만나 상승 발전되는 교육이다.



어린이도서관 만들기에는 나도 재밌고 너도 재밌는 방식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 욕구조사는 내용적으로 주민에게 더 깊이 들어가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교육자>교육>나>주민>'에서 ‘주민>나>교육>교육자>'가 되어야 한다. 주민들과 대화할 때는 있는 그대로 듣고 말하며 경청하고 신뢰를 주어야 하며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질문해야 한다. 내가 모르기 때문에 ‘모른다'라는 서로의 느낌을 나눈다는 것이 관계를 더 가깝게 한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언쟁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 생각을 강요하게 되면 언쟁으로 번지거나 불필요한 논쟁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만들려고 하는 마을어린이도서관은 형식이나 틀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주민들과 대화하겠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솔직하고 편안하게 의견을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는체 하거나 설득하는 일은 삼가하고 내 의견이 그렇게 크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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